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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Mar 05. 2024

이제는 무언가 이룰 때가 아닐까

#치앙마이 일년살기

열심히 살기와 게으르게 살기를 반복하고 있다.


아무래도 치앙마이에서의 생활은 '일'이 빠져있으니 나태해지기로 마음먹으면 끝도 없이 나태해질 수 있다.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술까지 마셨다면 치앙마이에서의 1년은 순식간에 삭제되었을 것만 같다.


치앙마이의 미세먼지 수준이 높아졌고 여기에 적응하느라 다소 게으른 시간을 보냈다. 갑자기 공기가 안 좋아지니 피곤함이 몰려왔고 '몸이 피곤하니까 누워있어야지'라는 선택에 타당성이 부여되었다. 일주일 정도는 태국어 수업과 무에타이 수업을 들을 때를 제외하고는 침대에 누워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치앙마이에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에 '이래서는 안 돼!'라며 정신 차리고 생산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한국에 있는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는데, 그렇다면 3개월, 그렇지 않고 정상적으로 어학원 1년 과정을 끝내면 6개월이 남았다. 두 케이스 모두 별로 시간이 여유롭게 남은 상황은 아니다.


뭘 이루려고 온 것은 아니었는데 여기서 아무것도 못 이루면 안 되지 않나?? 걱정이 된다. 역시 한국인은 나태지옥만큼은 빠질 수 없는 것일까?


지내고 있는 숙소에 작게 체육관이 딸려있는데 지난 6개월은 쳐다보지도 않다가 최근 들어서 체육관에서 아침 공복에 30분 정도 유산소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주 6회 무에타이 수업도 모자라서 오전 운동을 추가한 것이다.


오전 운동을 끝내고는 치앙마이 대학교 도서관에 와서 책도 보고 공부도 하고 글도 쓰는 중이다.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 사이에 앉아있으니 뭐라도 하게 된다.


대딩들 사이에서 태국어 기초과정 공부하기


하지만 또 드는 생각이 '나는 열심히 하는 것'에만 그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루틴을 만들어서 지키고, 열심히 공부하고, 이런 것들은 잘하는데 여기서 그치지 말고 뭔가를 이루어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지금 무엇을 이룬 사람인가?


그런데 또 당최 '이루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는 이미 꽤나 괜찮은 사람인데 내가 지금껏 이뤄온 것을 나 스스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은 아닐까?


어제는 태국인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나보다 18세가 어린 친구인데 다이어트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한다. 작년에는 집에서 혼자 유튜브를 보며 운동해도 8개월간 10kg를 뺐는데 지금은 7개월째 무에타이를 다녀도 살이 안 빠진다고 했다. 인스타나 페이스북에서는 거의 여신 st의 사진을 올리는 친구고 실제로 봐도 건강하고 아름다워 보이는데 정작 자기 자신은 그렇게 느끼지 못하나 보다. 주눅이 들어있다. 나는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너는 지금 살이 것이 아니다. 지금도 충분히 아름답다. 매일 거울보고 스스로 멋지다고 말해줘라.(사실 이건 나도 못함) 10kg가 덜 나가건 아니건 너는 똑같은 사람이다. 스트레스가 제일 나쁜 것이다. 몸을 만들고 싶다면 극단적으로 다이어트를 하지 말고 천천히 하나씩 해봐라. 매일 운동하는 것은 오히려 좋고 충분히 쉬어가면서 천천히 운동량을 늘려라. 먹는 것도 너무 줄이지 말고 조금씩 설탕이 들어간 음식을 줄이는 것에서 시작해라. 너는 할 수 있다.


올해 19세인 이 친구에게는 이 말이 맞다. 너무 어린 나이부터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면 건강만 상하고 금방 포기하고 요요현상만 겪게 될 것이다. 천천히 라이프 스타일을 변화시킨다는 생각으로 가는 것이 맞다.


하지만 나는 37세, 20대가 아니라 40대를 준비해야 하는 나이다. '여유'라는 측면에서 이 친구에게는 현저히 밀린다.


스스로를 너무 탄압(?)하고 싶지는 않은데 노력만 하는 것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성과라는 것이 남에게 잘 보이는 성과는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 친지, 직장 상사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나 자신을 인정할 수 있는 성과를 이뤄내고 싶다.


10대는 부모님, 특히 아빠에게 혼나지 않는 것이 내 인생의 성과의 전부였다.

20대는 아빠에 회사와 엄마가 더해졌다. 회사에서 인정받는 것과 엄마의 불안을 덜어주는 것이 내 인생의 성과인 것만 같았다.

30대 중반까지도 20대의 삶이 이어졌는데 37세가 된 이 시점에서야 부모님과 회사에서 나를 분리하고 내 삶을 찾고자 노력 중이다.


무엇이 진정한 내 삶의 성과일지 알아내기만 해도 치앙마이 생활은 성공이 아닐까.


치앙마이에서 나만치로 건전하게 일년살기를 하는 사람도 없을거야. 그런데 그게 전혀 아쉽지는 않다. 지금의 시간이 앞으로 내 인생의 20~30년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버릴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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