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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Mar 03. 2024

공기가 안 좋기로 세계 10위권인 도시에서 산다는 것

#치앙마이 일년살기

누군가 당신에게 화전 시즌에 치앙마이에 가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당신의 철천지 원수임에 틀림없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치앙마이의 화전 시즌이 드디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매년 시기가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2월에서 5월 사이의 태국 북부는 화생방 훈련을 방불케 하는 미세 먼지로 고통을 받는 시기이다. 주변의 산간지역 및 근접국인 미얀마, 캄보디아 등지에서 화전을 위해 산을 태워대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치앙마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공기의 질이 나쁜 도시 Top 10에 등극하게 된다. 


여기에 화전 시즌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치앙마이의 겨울이 끝나고 여름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라 이 시기의 치앙마이는 미세먼지와 더위의 이중고에 시달려야 한다. 오죽했으면 태국사람들도 만날 때마다 '오늘 덥지?'라고 나에게 묻는다. (태국은 겨울 다음 여름이다!!!!)


이 시기에 치앙마이에 오라고 꼬시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당신의 건강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철천지 원수 출신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bFvBwt6hBb0

치앙마이의 현 상황에 대해 매우 잘 설명해 주시는 외국인 아자씨...


태국 당국이라고 이 상황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단속도 하고 인공강우도 시도하는 등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는 있다. 산에 농사를 짓기 위해 가장 빠르고 저렴한 방법이 산을 태우는 화전이라 아무리 태국 당국이 단속해도 단속이 쉽지는 않다고 한다. 한국도 화전민 문제가 심각했었는데 우리의 경우는 이들에게 직업을 주어 산에서 이주시키는 방법을 택했었다고 알고 있다. 이런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화전 문제는 해결될 길이 멀어 보인다. 


화전으로 인한 미세먼지의 정도는 매년 달라지는데 올해는 그나마 작년보다는 나은 편이라고 한다. 치앙마이의 공기오염 척도는 가장 쉽게는 치앙마이를 둘러싼 도이수텝(수텝산)이 선명히 보이느냐 안 보이느냐로 기준을 잡는다. 벌써 3월 초인데 아직 도이수텝이 완전히 미세먼지에 가려서 보이지 않은 적은 없었다.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라 함께 어학원에 다니는 친구들은 부디 이 정도 선에서 올해의 화전시즌이 끝나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중이다. 


아직 도이수텝이 보이기는 한다! 미세 먼지가 심해지면 이 풍경에서 산이 사라진다


도이수텝 산이 살짝 흐리게 보이고, 종종 파란 하늘도 볼 수 있는 수준이라 아직 마스크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렇다고 방심은 금물이다. 밖에 나갔다 오기만 해도 눈이 따갑고 공기청정기를 풀파워로 돌리고 하루종일 집안에만 있어도 목에서 가래가 나온다. 몇몇 외국인 친구들은 벌써 병원에 다니며 약을 처방받아먹는다고도 했다. 


이런 상황에 흡연까지 하면 저승행 특급 익스프레스의 1등석 좌석을 끊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몇몇 사람들은 이 시기에는 치앙마이를 떠나 있기도 하고 극단적으로는 왔다가 다시 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나야 교육비자로 머물며 어학원 수업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라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지만 치앙마이에서의 시간이 나의 수명을 깎아 먹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근심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도 사실이다. 


화전 시즌만 없었다면 치앙마이는 연중 내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천국이었을 텐데, 화전 시즌이 존재하는 것은 치앙마이의 인구를 조절하기 위한 자연의 섭리(?)인 것일까.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불필요한 외출을 삼가는 것인데 그러다 보니 코로나 시기에 집에 갇혀있던 상황이 떠오른다. 그나마 그때는 6평짜리 작은 원룸에 갇혀(?) 있었는데 지금은 창 밖으로 푸른 나무가 보이는 10평 1 베드룸 숙소라서 빡침의 정도가 덜 하다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기는 하다. 


숙소에서 보이는 풍경, 그나마 한국에서 원룸에 갇혀 있을 때 보다는 낫다. 종종 새도 보이고 청설모도 보인다.


버티다 보면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이 시즌도 끝이 날 것이다. 그때까지 멍 때리고 집에 있기보다는 생산적으로 뭐라도 하고 싶은데 이 '생산적으로 뭐라도 하자'가 항상 성과에 쫓기는 한국인의 종특인 것인가 싶어서 또 괜히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이 글을 쓰고 오후에 무에타이 체육관에 가서 미세먼지에 대한 태국어 표현을 배워왔다. 


우선 '먼지'라는 단어는 태국어로 ฝุ่น fùn (한국어로 가장 가깝게 쓰면 '프우운'인데 p가 아니라 f로 발음해야 함)라고 한다. 오늘 fùn이 좀 있지 않냐고 하니 태국인 코치가 곧장 'pm?'이라고 하며 알아들었다. pm은 미세먼지의 측정 단위다. fùn 때문에 목이 아프다고 하니(เจ็บคอ 쨉 커어) 기침도 있냐(ไอ 아이)고 해서 기침은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알려준 표현은 다음과 같다. 


วันนี้มีฝุ่น 완니 미 푸우운(ㅍ아니라 f발음) : 오늘 미세먼지가 있습니다.

ฉันเจ็บคอแต่ไม่ไอ 샨 쨉 커 때 마이 아이 : 목이 아픈데 기침은 나지 않습니다.


여기서 ฉัน 샨은 여성이 자신을 지칭하는 말이고 남성이라면 '폼'이라고 말해야 한다. 모든 문장은 끝에 여성은 카, 남성은 크랍을 붙여야 공손한 문장이 된다.


치앙마이 현지인인 코치들이 혹시나 기분이 나쁠까봐 fùn(먼지)이 약간 있다(เล็กน้อย 닛 너이)고 했는데 다들 정색하면서 '아니, 많아'라고 나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


어떻게든 이 시기를 잘 넘어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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