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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Mar 19. 2024

불안하면 먹을 게 땡겨

#치앙마이 일년살기

불현듯 불안함이 몰려왔다.


불안함의 감정은 어렴풋이 죽음에 대한 공포인 것 같았다. 숨이 조금 막혀오려는 차에 내 감정상태를 인지하고 오토바이를 몰고 근처 쇼핑몰로 향했다.


쇼핑몰에 가서는 아이스크림 하나와 음식 한 접시를 뚝딱 클리어.


사실 2시간 전에 이미 식사를 했기 때문에 배가 고프지 않은데 억지로 욱여넣었다.


아이스크림까지는 그래, 먹을 수 있지. 하지만 음식을 시켜서 먹을 때는 거의 불가항력에 이끌리는 느낌이었다. 한국에서 술을 마실 때 딱 이랬었다.


술을 마실 이유가 전혀 없고 너무 자주 마셔서 술을 마시고 싶은 기분도 아닐 때가 많았다. 하지만 아주 간단하게라도 불안함을 건드리는 일이 발생하면 머리로는 술을 마시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뭐에 홀린 듯 술을 사서 집으로 들어갔다. 항상 1차로 끝내지 못하고 술을 더 사러 집 앞 편의점으로 향해서 결국은 과음. 주에 많게는 6일을 이렇게 술을 마셨었다.


오늘 쇼핑몰에 가서 음식을 먹는데 술 마시던 시절 생각이 나서 쓴웃음을 지었다.


다행히 먹부림은 여기서 끝이 났다. 두 번째 먹은 음식이 꽤 양이 많았어서 배가 완전히 꽉 차버렸기 때문이다. 술은 거의 한도가 없이 들어가는데 (물론 그렇게까지 마시면 다음날 위액을 마주하게 되지만) 그래도 음식은 한도가 정해져 있다. 이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식단 관리 중이었는데 불안함 덕분에 잘(?) 먹었다...둘 다 맛은...있었어...


불안하면 먹는다.


그게 술이 되었건 음식이 되었건.


아마 먹는다는 행위가 불안을 감소시키는 행위와 연관이 있을 것 같다. 인간의 신체의 작동방식은 대부분 생존을 위해 진화한 것이니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굶으면 죽으니까. 먹는 행위를 하면서 만족하도록 진화했겠지.


좋아. 내가 오늘 불가항력에 이끌려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도 음식을 먹은 것은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갑자기 왜 불안함을 느낀 걸까?


최근에 원래 일정보다 한국으로 일찍 돌아가게 될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다. 또한 곧 다가올 4월이 어학원 방학인데 치앙마이의 공기오염도가 너무 높아서 4월 한 달 동안 어디를 다녀올까도 생각 중이다. 여기에 더해서 지금 지내고 있는 숙소에서 너무 일상이 반복되는 느낌이 있어서 숙소도 옮기고 싶다. 어느 경우건 이동하게 될 경우 일 년 살기를 하기 위해 가져온 짐과 오토바이를 어떻게 할지도 결정해야 한다. 이제 곧 지금 지내는 숙소의 한 달 만기일이 다가와서 1,2일 안에 고민은 끝내야 한다.


뇌에 과부하가 걸린 상황이 맞네.


어쨌거나 지금 상황은 '내가 머물 곳'에 대한 고민이 주가 되는 상황인데 여기에 더해 '내가 마음을 편히 놓을 수 있는 이 없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죽음이라는 이미지? 감정?으로 이어진 것 같다.


정말 꼬여있는 것이 나는 한 군데에 오래 머물러도, 오래 머물지 못해도 모두 불안함을 느낀다. 애착유형이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나는 길을 지나가다가 슬쩍 고개를 돌려 쳐다만 봐도 너무도 확실하게 '불안정 애착형'의 인간이다. 이래서 그런 건가.


정착해도 불안하고 정착하지 못해도 불안한 것. 내가 깊게 파고 들어봐야 할 부분이 이것인 것 같다.


그래도 몇 달간 나는 참 많이 성장했다는 기분이 든다. 치앙마이 도착 초기에는 공황발작이 와서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 호텔방에서 몇 시간을 울었고. 그 이후로도 거의 한 달을 밤마다 울었다. 그랬던 내가 감정 변화를 빠르게 캐치하고 그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어떤 행동(집 밖으로 나가기, 먹부림, 글쓰기)을 해낸 것이다. 그리고 글을 쓰다 보니 내가 나의 감정의 어느 부분을 더 상세히 살펴보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방향성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더더욱 고무적인 것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점이다. 술을 마실 때와 동일한 충동을 느꼈음에도 전혀 술 근처에도 가지 않고 간단한 음식으로 훌륭히 대처해 냈다.


불안한 감정이 올라와서 힘들었지만 그걸 잘 대처해서 조금은 위안이 된다.


이렇게까지 처절하게 술의 유혹을 이겨내는 중인데, 만약 한국의 직장생활환경에 돌아갔을 때 주위에서 내 의지를 가볍게 보고 '에이, 한 잔은 괜찮아요, 내가 따라 주는 건데 안 마실 거야?' 뭐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대 때리고 싶을 것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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