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송당 Mar 20. 2024

태국인들의 안전불감증

#치앙마이 일년살기

글의 제목은 안전불감증인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거의 두 달 만에 치앙마이에 비가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창문으로 보이는 나무가 격하게 흔들리길래 '이게 뭐지?' 싶었는데 기어이 비가 내린다. 2월부터 3월 말인 지금까지, 내내 뜨거운 날씨와 미세먼지에 시달리고 있었고 '혹시라도 이 상태가 영원하면 어쩌지?'라는 아주 약간의 걱정도 하던 참이었다.


비가 내릴 뿐인데 이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진 기분이다. 원래 이 시기에 비가 내리는 게 맞는 건가? 태국 정부가 인공강우를 시도 중이라는 뉴스를 봤는데 정말 성공한 건가? 이유야 어쨌건 행복하다. 어제는 고민이 많아서 새벽 3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그 기분이 이렇게 금세 사라진 것을 느끼면서 감정은 바꿀 수 있는 거고 감정에 너무 휘둘리지 말자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아침에도 어제의 우울함의 여파가 다소 이어졌지만 바쁘게 보냈다. 아침부터 혼다 정비소를 찾아 오토바이의 엔진오일을 교체했다. 오토바이를 구매한 지 4개월 정도만에 3000km를 돌파했고 이번이 두 번째 엔진오일 교환이다. 그 이후에는 여유롭게 커피를 한 잔 마신 후 미세먼지에 시달린 오토바이에게 목욕재계 선사. 치앙마이 시내 곳곳에는 셀프 세차장이 있어서 40바트, 우리 돈 1600원 정도면 세차를 할 수 있다. 원래도 종종 하던 세차지만 미세먼지 시즌이 된 이후의 오토바이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어서 세차의 비포 애프터가 더 극적이다.


아주 속이 시원함

숙소에 돌아와서는 주방을 정리했는데, 그것까지 끝내고 나니 오후 5시 반, 쉬지도 못하고 무에타이 수업을 들으러 집을 나섰다. 지금의 치앙마이는 여름이고, 고작 2개월 전인 겨울과 지금의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겨울에는 운동을 해도 땀이 이렇게까지 흐른다는 기분은 아니었는데 여름인 지금은 온몸이 흠뻑 젖는다. 특히 오늘은 운동량이 많았는데 운동까지 끝내고 나니 기분은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 어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을 때는 하필 운동도 나가지 않았단 말이지. 운동이 정신건강에 필수적인 요소구나, 다시금 깨달았다.


운동이 끝나고 코치들을 보니 삼삼오오 모여서 맥주를 마시러 가는 것 같았다. 평소 같으면 그려려니 했겠지만 오늘은 상황이 다르다. 술을 마시러 가자고 주동한 코치 두 명은 지난주 주말 오토바이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로 몸이 성치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가볍게 다친 것이 아니라 한 명은 광대뼈 쪽이 함몰되었고 한 명은 오른쪽 팔이 그대로 쓸려서 보기만 해도 끔찍한 상처가 생겼다. 그게 고작 얼마 전 일인데 벌써 술을 마시러 간다. 그리고 보나 마나 또 음주운전을 할 것이고.


태국인들의 안전불감증이 꽤나 심하다고 알고 있는데 이 정도인가 싶어서 흠칫 놀랬다. 여기서 더 대박?! 인 것은 그렇게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맥주를 마시며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사람을 보았다는 것이다. (!!!!!)


태국에서는 오토바이 한쪽에 수레 같은 것을 붙여서 노점을 하거나 물건을 옮기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렇게 개조된 오토바이에 한가득 물건을 싣고 운전하던 운전자가 신호 대기 중에 태국 맥주인 '창' 맥주 큰 병 하나를 꺼내 들고 병나발을 부는 것이 아니겠는가.  광경을 라이브로 목격하며 내 두 눈을 의심했다. 이거 실화냐??


얼척이 없어서 사진을 찍어두었다, 바구니에 실린게 맥주고 왼손으로 시원허이 마시는 중


태국인들은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향을 갖고 있는데(이걸 크랭짜이라고 한다) 신기하게 자신의 안전에는 무감각하다. 오토바이 헬맷도 쓰라고 쓰라고 그 난리를 쳐도 결코 쓰지 않는 사람들이 많고 무면허 운전은 허다하다. 그런데 음주운전은 너 혼자 지는 것이 아니라 타인도 같이 데리고 세상을 뜰 수 있으니 민폐의 끝판왕 아닌가? 타인에게 폐 끼치기 싫으면 음주운전도 하지 말아야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로직이다.


태국인들과 친해져 볼까?라는 생각에 의욕적으로 대화를 나누다가도 이렇게 아예 사고방식 자체가 다른 지점을 발견하면 뭐랄까 갑자기 누가 나를 쑤욱 잡아당겨서 원래의 출발점으로 원위치시키는 기분이다.


그래도 두 달 만에 내리는 비를 보며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한다. 두 달 동안 온탕에서 못 빠져나오다가 두 달 만에 냉탕에 들어간 심정이라고 하면 글을 통해 나의 이 기쁨이 전달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불안하면 먹을 게 땡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