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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Apr 29. 2024

열대야

#치앙마이 일년살기

4월에서 5월로 넘어가는 지금은 태국의 '여름'에 해당하는 계절이며 연일 40도가 넘는 폭염이 이어지는 중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하루 종일 40도인 것은 아니고 하루에 3시간 정도만 40도를 넘는다는 것이랄까.


오전에는 28도 정도를 기록했다가 기온이 점점 올라 오후 5시 정도에 정점을 찍고 오후 7시 정도에 해가 지면 30도 초반대로 떨어진다. 하루에 기온의 앞자리가 세 번이나 바뀌는 정신 나간 날씨.


컨디션이 말이 아니다.


최대한 바깥 활동을 자제하고 물은 거의 3리터 정도 마시며 그럼에도 주에 4회 정도는 운동을 하면서 발악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몸과 마음이 훅훅 쳐진다.


이렇게 몸의 컨디션이 떨어지면 수면 아래에서 잠잠히 있는 듯 없는 듯 지내고 있던 우울이라는 감정이 더 쉽게 수면 위로 툭툭치고 나온다. 이런 상태에서 만약 술까지 마셨다면 더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겠지.


우울함의 이유는 여러 가지다.


가족과의 단절 (부모님 스트레스로 인한 자발적 선택)

회사생활 당시의 극심한 스트레스의 여파 (떨어진 자존감)

인생의 목표 없음 등등.


치앙마이 도착 후 5일 차가 되던 날 아주 강력한 공황발작을 경험했고, 이때 온라인으로나마 심리상담을 받아보려고 했었다. 결국 받지는 않았지만 상담사를 연결해 주는 플랫폼의 카테고리에 '해외'나 '유학생활'이 따로 분류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기 해외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극심해서 이로 인해 상담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혼자서 해외에서 장기로 생활한다는 것은 가족이나 국가라는 소속 없이 이 세상에 홀로 남은 상황에 대한 간접경험이 아닌가.


나의 경우는 가족과의 단절은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혼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숨이 막혔다.


한국에 있을 때도 가족을 믿고 의지하지는 않았어서 혼자라는 생각은 강했지만 그 공허함은 엄청난 격무로 메꾸곤 했는데 퇴사까지 해버리니 내 삶을 굴러가게 하던 엔진이 갑자기 멈춰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계속 술과 카페인을 쭉쭉 들이켰으니 공황발작이 온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금주를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아주 거지 같았던 기분은 많이 나아졌지만 불쑥불쑥 올라오는 혼자/소속감이 없다는 감정은 무서울 정도로 '죽음'이라는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내 인생은 다 끝났고 죽는 것만이 남았나?' 우울함이 올라오면 꼭 이런 생각을 했다.


아니, 왜 혼자라는 감정이 자꾸 죽음이라는 이미지와 연관이 되는 걸까?


모든 것을 생존을 목적으로 한 진화론적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인간 생명체는 혼자 고립되면 생존할 수 없으니 혼자라는 상태를 죽음이라는 공포의 감정과 연관시켜서 인간이 어떤 이유로든 고립을 선택하지 못하도록 설계된 것일까? 하긴 그래야 생존도 하고 혼자가 무서우니 가족도 만들고 자손을 번식시킬 테니 이게 말이 되긴 한다.


그럼에도 나는 홀로 고립되기를 선택한 것을 보면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만큼 힘들었구나.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가족도, 회사도 너무 힘들었는데 기댈 곳도 없었고, 위로받지도 못했다.


물론 이제는 그 위로는 타인이 아니라 나만 할 수 있는 것임을 충분히 인지한다. 오로지 나만이 나에게 충분한 위로를 해줄 수 있다. 나도 한 때는 타인에게 그 위로를 구했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고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렇지만 최근 국힙원탑 민희진 님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간접적으로나마 위로를 받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나는 어-어-어-어 하다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도태되는 입장이었는데 압도적인 실력을 지닌 사람은 그 반대를 할 수 있구나. 거대한 대리만족을 느꼈다.


오늘 글을 쓰면서 왜 자꾸 혼자라는 감정과 죽음이 연관검색어로 같이 떠오르는지 스스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나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의사의 의료행위와 비슷하다. 고통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일종의 의료 행위가 된다.


건강하지 못했던 때의 나는 고통을 술과 업무 과잉 활동으로 이겨내려고 했다. 치앙마이에 와서 이제 이 두 가지를 모두 안 하게 된 것은 긍정적인 일인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스스로를 다독이고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일까. 그건 좀 더 연구를 해봐야 할 것 같다.


어쨌거나 2024년, 태국 치앙마이에서 아주 무서울 정도로 무더운 열대야의 밤을 보내는 중이다.


그래도 오늘 카레 맛집을 찾았다. 맛있는 카레를 먹었으니 행복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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