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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많은김자까 May 10. 2024

네가 예쁜 아이라는 걸  까맣게 잊은 나에게

엄마가 또 미안해

2014년생 막내. 2녀3남 중 막내인 5호가 요즘 어쩐지 못마땅하다.

공감능력이 떨어지다 못해, 아예 없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다.

엄마아빠 어른들이 중요한 얘길 할때, 어줍잖은 얘기로 툭툭 끼어드는 거며,

형님누나가 꾸중을 들을 때나, 언짢아 있을 때

눈치 없이 잘난척을 한다던가

저세상 딴나라 얘기로 분위기를 깨다가 핀잔을 듣기 일쑤다.

형누나들에게 죽고 못살도록 귀여운 막내지만, 때론 혹은 종종

"이렇게 공감능력이 없어서야...되겠니?"로 시작한 혀찬소리가

"몇번을 말해야 알아듣니? 몇번을 말해야 해?"라는 잔소리가 되고,

"너 그러다 사람들한테 왕따 당한다. 어쩌려고 그러니?" 막말까지 갈때도 있다.


그러던 중에, 어김없이 2024년 어버이날을 맞았고,

초딩4학년 5호에게 편지 한장을 받고서야....

'그래......넌 그런 아이었지..' 아릿한 반성과 그리움이 올라왔다.


오랜 나의 브런치 독자님들은 이미 알고들 계신 일화이자,

말로 지지않는 지금은 대딩 2호의 팬에서, 대거 5호 지지자로 돌아선 계기가 된 일화기도 하다.

5호가 여섯살때의 일이다.


8월말. 냉방기 없이는 아직 덥다 싶던 어느날

여섯살 5호가 냉동실에 소중하게 얼려두었던 얼음주머니를 가지고 내게 왔다.

(나는 당시 뭔가 마감으로 몹시 바빴다)

"엄마"

"왜?"

"이거 가져. 더우니까 이거 팔에 이렇게 대고 일해"

순간 너무 차가워서 화들짝 놀랐다. 얼음주머니였다.

뭣보다 다섯번의 출산, 냉방기에 노출되는 여름에는

산후풍 때문에 폭염에도 겨울팔토시를 끼고 지내는 게 일상이라,

얼음주머니의 촉감은 짜증스럽기도 하고,

게다가 바쁘기도 해서

나는 아이에게 얼음주머니만큼이나 차갑게 말했다.

"너나 가져가. 엄마는 됐어. 그리고 엄마 지금 바빠"

아이는 순간 무안해하는 것 같았지만, 난 달래줄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방에서 나가는 것 같다 싶더니만, 아이는 뒷걸음질로 돌아와서 나를 빼꼼 내다보고 다시 말했다.
"엄마. 엄마가 '됐다'는 건, 말만으로도 고맙다는 얘기지?"

이런......

그 예쁜 말에, 순간 얼굴이 뜨거우지고, 심장이 찌릿해졌다.

나의 차가운 태도에 무안했을 아이가

다시 돌아와 전하는 '예쁜말' 속에 담긴

아이의 수많은 고민과 생각들이 읽혔다.

내가 웃어주니,

그제서야 활짝 웃으며, "엄마 나 엄마 사랑 쪼금만 떼어가도 돼?"

"응"

아이는 신나 달려와서는 내 목을 끌어안고, 엄지와 검지로 뭔가를 떼어내는 시늉을 하더니.

"엄마 바쁜데 미안. 엄마 사랑 쪼금 뗐으니까. 이거 가져가서 엄마 일 끝날때까지 기다릴게"


그리고, 그즈음 여섯살 5호의 애기 때 일이다.


한창 글씨 익히기에 재미를 붙인 5호가 제 이름을 빨간색 볼펜으로 쓰다 2호에게 걸렸다.

2호는 답게 개구진 장난을 쳤다

"(호들갑을 떨며)5호야!!! 너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어떻게 해?!!!!"

"??왜? 형?"

"(운율까지 태우며) 큰일 났대요~~~큰일났대요~~5호가 빨간펜으로 이름 썼대요~~이름 썼대요"

"(울상이 돼서) 왜....형?"

울상이 돼버린 5호가 귀여운 나머지, 2호는 장난을 멈추지 않았고,

기어코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죽는다' 샤머니즘같지도 않은 헛소리로 5호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날 밤.

어두운 마루에서 중얼거리는 소리에 나가봤더니,

5호는 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예수님. (훌쩍) 제가 실수로 이름을 빨강색으로 쓰다가요. 큰형(2호)이 빨강색으로 이름을 쓰면 죽는대서요. 정말 '후'는 안썼거든요. 진짜거든요."

여기까지 듣고, 나는 '아이쿠 녀석... 형아 말을 정말 믿고, 죽을까봐 걱정이 됐구나...'라고 생각했는데,

5호의 뒷 기도말을 듣고, 심장이 폭격 당했다.

'예수님. 제가 '후'는 안썼는데, '이정'까지는 쓰고 말았어요ㅠㅜ.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이정'이란 친구가 죽지 않고 무사하게 해주세요"


옛날 브런치 글을 꺼내 읽어보다가...

가슴이 내려앉았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한건지.....이렇게 이쁜 아이에게

배려가 없다는 둥, 공감능력이 없다는 둥,

너 정말 안되겠다는 둥........


요즘 성당에서 첫영성체에 교리를 받는 5호는

손수 접어만든 편지 봉투 속에, 편지 한장을 넣어 건넸다.

봉투 겉엔 5호다운 귀여움 한방울.

'엄빠 귀하'

'당사자 이외 개봉금지'


"엄빠 귀하

엄마 아빠, 성당에서는 인간의 원죄가 교만이라고 했는데,

그게 아니라 태어날때 엄마 배아프게 한 게 원죄 같아요.

엄마아빠는 제가 고생하지 않고 얻은 유일한 행운이에요. 사랑해요.


2024. 5.7

엄마의 소중한 아들 올림"


아이는 그 편지봉투 위에, 며칠전 외삼촌에게 어린이날 선물로 받은 꼬깃한 5만원짜리를 함께 올려놨다.


난 오늘도 5호가 막 잠자리에 들기 전에,


왜 옷은 제자리에 두지 않으며,

기적의 계산법은 왜 풀지 않았으며,

장난감은 왜 치우지 않으며,

과일은 먹고 왜 바닥에 두었으며......


너 안되겠다. 내 아들 하지 말자....


아이의 마음에 대못을 박고, 글썽이는 아이에게

당장 들어가 자라며, 야멸차고 뾰족한 말을 던지고 말았다.


50대..... 열한살의 엄마가 되기엔 너무 늦은 나이이고,

다른 젊은 엄마보다 성숙하고 노련할 법도 한 나이에,

매번 실수해서 미안. 


내일 아침 일어나면,

사과할게. 아가.

그리고, 엄마가 면목이 없어서 안되겠다. 부디 오늘 꿈속에선 만나지 말자.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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