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겪어봤을 <밝은 밤>, 그 모순 속에서
오랜만에 정말 좋은 소설을 읽었다.
처음 책장을 피고서 4시간 동안 책을 내려놓지 못하고 새벽이 되도록 읽었다.
분명 일제 강점기부터 내려오는 나와는 거리가 멀어야만 하는 이야기임에도
너무도 내 얘기 같았고, 어디선가 들어본 내 친구 얘기 같기도 해서 책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최은영 작가님의 <밝은 밤>.
증조모로부터 할머니, 엄마, 그리고 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 상처의 행렬을 읽다 나도 모르게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결혼, 엄마, 그리고 딸.
이 세 단어가 주고받는 엄청난 감정의 시너지를 최근에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엄마 나 남자 친구를 올해 날씨 좀 풀리면 소개해주고 싶어"
이 말 한마디가 불러올 파장을 그때는 예상하지 못했다.
"네가 너무 아깝지 않니? 잘 심사숙고한 거야? 아니.. 엄마는 아무리 그래도.. 싫다"
이 말을 듣는 사람이 사랑에 빠진 당사자라는 것을 잊은 양
무작정 아쉬운 말을 쏟아내는 엄마를 나는 마냥 지켜보고 있었다.
상처받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너무도 막막했기에 하염없이 눈물이 나던 순간들이었다.
내가 엄마에게서 PTSD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을 깨달은 건 소설을 다 읽은 후였다.
(이후 책에 대한 약간의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소설 속의 '나'는 이혼했다.
남편의 100% 귀책사유로 이혼을 했음에도
엄마는 '나'에게 남들이 보기에 평범한 삶을 위해 조금 더 노력하지 않았음을 질책한다.
더 이상 엄마의 전시품으로 사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나'는 엄마에게 최대한 멀리 떠나기로 작정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의 엄마의 엄마. 할머니를 20년 만에 마주한다.
이후 소설은 할머니가 전해주는 증조모의 이야기, 그리고 할머니의 이야기, 엄마의 이야기로 이어지며
왜 엄마가 그토록 평범한 삶을 갈구했는지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20년 동안 서로 연락을 주고받지 않은 할머니와 엄마 사이에 그 나름의 해답이 있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생존 전략은 딸에게 결핍이 되었고,
그 결핍은 대를 이어 또다시 상처가 됐다.
그리고 그 상처는 삶의 선택을 어렵게 했다.
엄마는 일평생 내게 기대하고 실망했다. 너 정도로 똑똑하고 너 정도로 배운 사람이라면 응당 자신은 꿈도 꿔보지 못한 삶을 사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 엄마의 주장이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가진 것 별로 없는 그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엄마는 내게 크게 실망했지만, 내가 결혼을 하고 정상가족을 꾸린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하는 것으로 마음을 돌렸다. 엄마는 사위를 살뜰히 챙겼다. 우리가 우리의 가족을 잘 굴려나가서 남들 보기에 그럴듯한 모습으로 살기를 기대했다.
나는 엄마의 그 작은 기대마저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엄마를 철저히 실망시켰다. 엄마에게 인정받기를 기대하고 번번이 상처받기보다는 내 일에서 인정받고 친구들에게 지지를 받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머리로는 아는 일을 내 가슴은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식은 엄마가 전시할 기념품이 아니야.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소리치면서도, 엄마의 바람이 단지 사람들에게 딸을 전시하고 싶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이 아팠다"
- 최은영, <밝은 밤> 중
자기보다 잘난 자신의 딸이 자기 자신보다는 더 잘살기를 바라는 마음.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으면
자기가 겪었던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말과 행동이
서로에게 상처가 된다.
우리 엄마가 겪었던 독박 육아는
출장이 잦은 남자 친구의 직업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게 했다.
우리 엄마가 겪었던 시어머니와의 갈등은
사주 속 조그맣게 들어가 있는 '어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들'이라는 설명 하나에도 기겁하게 했다.
우리 엄마가 겪었던 경력단절은
한창 열심히 일하고 있는 딸의 결혼이라는 자체를 결사반대하게 만들었다.
"결혼이라는 건 도박 같은 거야. 아무리 네가 똑똑해서 100가지를 다 계산했다고 해도 식장 들어간 이후에 옆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될지 절대 알 수 없어."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각자의 사정은 대물림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물며 대물림된다고 하더라도 성인이 된 시점부터 누구도 서로의 인생을 책임져 줄 수 없지 않을까.
자수성가한 똑 부러지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
열이 39도로 끓어도 학원을 갔던,
집 앞 계단에서 굴러 온 군데 멍이 들어도 집보단 학교 보건실을 택했던,
내 앞에 닥친 어떤 어려움도 '배부른 소리'로 치부되었던 나의 유년을 엄마는 알지 못하니까.
엄마한테 자랑스러운 것만 보여주고 싶어 많은 것을 뒤로 감췄던 그 시간을 엄마는 알지 못하니까.
책을 읽고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은 시간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 누구도 악인이 아닌 이 갈등 속에서 서로가 최대한 상처받지 않을 방법은 시간뿐인 것 같다.
엄마의 상처를 더 깊이 생각하고, 나의 상처를 생각하는 시간.
생각한다고 바뀌는 것은 없겠지만 적어도 말로 서로 상처를 '적당히'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시간.
그 시간을 이제 가져보려고 한다.
이 시간의 끝에 어떤 선택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의 상처가 나의 상처가 되지 않기 위해서,
조금 더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