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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조커피 Jun 27. 2021

<이 구역의 미친 X>는
'내'가 아니라 '우리'야

드라마가 끝나고이상해 보이는건 세상이었다

이런 사람에게 추천합니다.

1. '내가 좀 이상한가'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

2. 오늘 왠지 좀 외로운 사람.

3. 무해한 젊은 콘텐츠가 보고 싶은 사람. 


최근 본 드라마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다.

(스포가 포함되어있습니다ㅠㅠ)

소재가 수도 없이 많다.

데이트 폭력, 정신과 질환, 마약 범죄, 이혼, 인터넷 바이럴 영상, 악플, 바람 등 상상 가능한 모든 소재들이 총출동한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이 소재들이 한데 잘 어우러져있다는 점이었다. 각각의 재료들이 따로 놀지 않고 하나의 스토리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시작은 정신과 상담을 받는 두 남녀로부터 시작된다. 분노 조절 장애를 겪는 휘오(정우)와 불안 장애를 겪는 민경(오연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악연으로 얽힌다. 계속해서 엇갈리고 서로를 오해한다. 비 오는 날엔 유독 분노가 쉽사리 차오르는 휘오를 민경은 자신을 미행하는 사람으로 오해했다. 민경이 휘두르는 우산으로 후드려 맞으며 그들은 첫인사를 나눈다. 이처럼 분노 조절 장애는 불안 장애를 겪는 민경에게 너무나 큰 위협으로 다가왔고, 휘오에게 민경은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극의 시작, 두 사람은 너무나 기이해 보인다. 

'왜 저렇게까지 화를 내는거지?' '왜 저렇게 심하게 불안해하는거지?'

그렇게까지 화낼 일은 아닌데 휘오(정우)는 틈만 나면 소리를 지른다. 민경(오연서)은 누군가 자신을 알아볼까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고 틈만 나면 누군가를 범죄자로 오해하기 일쑤. 


하지만 극이 전개되면서 그들의 마음이 이해되고, 상황이 이해되고, 어느 순간 '나였어도 그랬을 거야' 싶다.

그리고 극이 끝나는 순간, 그 둘보다 더욱 이상해 보이는 건 주변이었다. 휘오를 걱정하는 척 까내리는 휘오의 전 아내가 기이해 보이고, 너무나 평범해 보이던 동네 주민들이 기이해 보인다. 저 아줌마는 왜 저렇게 오지랖이 넓은 것일까, 저 경찰은 왜 저렇게까지 무신경한 걸까 주인공들에게서 주변으로 시선이 옮겨간다. 


그러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실 어쩌면 모두가 괜찮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파트 부녀회의 총무를 맡고 있는 주리(이연두)는 알고 보니 술에 의존해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압박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한 슬픔에 매일 술을 마셨다. 멀쩡한 게임 프로그래머처럼 보이던 상엽(안우연)은 알고 보니 여자 옷을 즐겨 입는 남자였다. 세상의 어떤 범주 안에도 들어가지 않는 정말 그냥 여자 옷이 좋은 그저 '사람'이었다. 수현(이수현)은 동네 알바를 혼자 다 하는 듯 동네 곳곳에 24시간 알바를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가난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며 누구에게도 마음을 내어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모두가 마음속에 불편한 구석 하나씩을 안은 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속에 우리 모두의 모습이 보인다. 바닥을 칠 때의 우리. 

회사에서 들은 별거 아닌 한 소리가 이상하게 마음속 깊이 박혀 몇 주를 가고, 연애할 때마다 타인에 대한 의심에 사로잡히기도 하는, 때로는 과할 정도로 부에 집착하기도 하며, 계속해서 부모님에 대한 원망을 가지고 살아가기도 하는 우리의 모습 말이다. 우리는 때론 누군가에게 필요 이상의 집착을 보이기도 하고, 아무런 이유 없이 잘 살아내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으로 하루를 망치기도 한다. 아등바등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애쓰며 겉으로는 '평범'해 보일지언정, 깊은 곳 어딘가에 우리는 모두 조금씩 '미친'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 사실은 자기 자신만이 알겠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모두가 괜찮지 않은 이 세상이 기이해 보이기도 한다.

작은 단서만으로 세상은 누군가를 '미친 사람'으로 만들기 일쑤였고, 법은 때때로 피해자보다도 가해자의 편에 서 있었다. 인터넷에서 본 타인의 비방글을 여기저기 퍼다 옮기고 '인터넷에서 봤기 때문에' 진실로 믿는다. 이미 믿어버린 진실을 깰 방법은 없다. 그저 그렇게 되어버린 사람으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데이트 폭력으로 신고된 사람 중에 구속된 사람은 4.3%, 하지만 처벌조차 제대로 이어진 경우도 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심지어 세상은 비싼 감형 패키지를 만들어 돈 많은 데이트 폭력을 저지른 이를 구제해준다. 반성문, 전문 대필 업체, 탄원서, 여성 단체 기부 내역서, 봉사활동 증명서, 장기 기증 증명서 등 수십 가지로 이뤄진 이 패키지는 피해자에게만 고통을 '몰아주기'한다. 민경이 처한 상황 안에서 민경은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다. 평범한 사람이 평범하게 리액션을 했을 뿐인데, 세상은 민경을 '불안 장애'로 명명한다.


하지만 결국 결론은 우린 모두 각자의 서사 안에서는 '정상'이라는 것이었다.

드라마의 결론은 결국 이것이었다. 휘오도, 민경도, 결국 모두가 정상이라는 것. 각자의 서사 안에서는 말이다. 제 3자의 눈에 비춘 그들이 과하고 이상해 보일지라도 그 삶을 직접 살아온 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서사였다데이트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었던 민경에게는 언젠가 전 남자친구가 보복을 할지 모른다는 사실이 어쩔 수 없는 일상을 위협하는 공포였을 것이다. 억울하게 자신이 사랑하던 직장을 잃은 휘오에게는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세상에 억하심정이 드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을 것이다. 드라마를 끝까지 보니 결국 타인의 삶에 대해 '옳다 그르다'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자기가 행복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까내리지 않거든'

자신을 까내리는 파혼한 전 와이프에게 휘오(정우)가 한 말이었다. 회계사와 결혼한다며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지 모르겠네, 오빠는 아직도 이러고 있는데'라며 이야기하자, 진정으로 너의 행복을 빈다며 휘오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가 행복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까내리지 않는다'라고 말이다. 이것이 드라마가 전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생각했다. 모두가 서로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SNS의 소위 '파놉티콘'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타인의 삶보다도 자기 자신의 행복을 먼저 돌볼 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젊은 콘텐츠라고 생각했다. 

'서로의 삶의 가치관에 터치하지 않는다' '타인의 가치관을 절대적으로 존중한다' 젊은 주제 의식을 한껏 가져와 어색하지 않게 꾸려낸 좋은 드라마였다. 이런 콘텐츠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삶에 쉽사리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쓸 수 있는 드라마. 사람이 한 명 한 명이 모두가 다르다는 게 단 몇 시간 내에 느껴지는 그런 콘텐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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