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학창 시절 때는 ‘10000시간의 법칙’이라는 것이 흥했다.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는 데 필요한 시간이 10000시간이라는 의미다. 10000시간은 온전히 하루 24시간 동안 그 분야에 몰입했을 때, 416일이 걸리고 하루에 8시간 몰입했다고 한다면 1250일이 걸린다. 이러한 10000시간을 쏟아부으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한 노력의 성과에 관한 이야기가 서점가에서 사라진 지는 꽤 된 이야기다. 서점에 가서 자기 계발서, 에세이를 보면 ‘너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열심히 살지 말라’라는 이야기들이 더 많다. ‘10000시간을 채워 전문가가 되어 그 분야에서 성공해라!’라는 교훈은 어쩌면 한물간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이따금 서점의 책들을 보며 왜 이렇게 변화했을까를 떠올린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생각은,
‘그 10000시간이라는 노력에 배신당한 사람이 많구나.’라는 것이었다.
더불어 이제는 전문가로서의 성공도 중요하지만,
개인이 원하는 성공이 더 중요한 시대다.
자신이 개인적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를 성취하는 것이 성공한 삶이 된 것이다.
성공의 기준이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곳을 떠올리자면,
‘우리나라의 입시 문화’ 일 것이다.
10000시간의 노력, 사실 엄청 귀한 가치다.
그 시간을 버텨온 것, 그 시간을 몰입한 것, 그것을 절대로 무시할 수가 없다.
그런데 진심 가득 담아 그렇게 10000시간을 노력해왔는데,
배신당한다는 건, 더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노력이 배신했을 때의 해답을 우리는 아직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고3 때, 그 감정을 느껴봤다.
이 이야기를 1월에 올리는 이유는 하나다.
지금이 정시 발표 시기이자, 입시가 마무리되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입시에 실패하거나,
탈락한 그 아이들에게 탈락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할 수만 있다면 이 글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셈이다.
어른이 되어서야 ‘대학이 다가 아니다.’라는 말을 이해했다.
그런데, 그 입시를 망쳤던 나에게는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 말이었다.
3년 내내 보았던 모의고사들 중에서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던 점수의 수능 성적표를 손에 들었던 날,
참 암담했다.
나의 망친 입시 과정에 대해 잠시 소개하자면,
나는 3년 동안 논술을 준비해왔었기 때문에,
수시 6개 모두 논술로 지원했다.
그리고 수시 논술에는 수능 최저 등급이 있었다.
나의 수능 날, 나는 한 번도 모의고사에서 받아본 적 없는 등급을 받았고,수시로 지원한 6개의 대학 모두 수능 최저 등급을 맞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꾸역꾸역 논술 시험장에 갔다.
합격이 안 될 것을 알면서도, 원서 값이 아깝다는 핑계로
모든 논술 시험장에 참석했다.
중간중간 듬성듬성 비어있는 책상들이 있었다.
나 역시 어쩌면 그렇게 책상을 비워두는 편이 맞았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입시의 그 과정들, 그 결말을 완벽히 마무리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3년 동안 내가 해온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던 것 같다.
무조건 불합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열심히 논술 문제를 풀었다.
모든 논술 문제에 답안을 꼼꼼하게 채웠다. 그것이 내가 나의 입시를 마무리하는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