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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진 Aug 09. 2018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_5

엄마에겐 싱글일 때 꿈꾸었던 퇴사이후의 삶은 없었다

 10년을 다닌 첫 회사를 꽤 짭짤한 퇴직위로금을 받고 나왔을 때, 내 계획은 로스쿨이나 치전원에 진학하여 전문직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학원에 상담을 가서야 알게되었다 학원비나 가능성은 두번째 문제라는 것을. 가장 큰 문제는 어린 자식이 있는 엄마는 공부만 하는 전업 학생과 달리 잠자는 시간만 빼고 공부에 올인할 수는 없다는 현실이었다. 물론 주변에 보면 친정이나 시댁에 아이를 맡기고 전문의 과정을 수료한 분들도 계시긴 했다. 하지만 아이를 맡기고 공부를 하기엔 몇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일을 해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시엄마나 친정엄마가 내 공부 뒷바라지를 위해 풀타임으로 돌봄노동을 제공한다는 것이 유쾌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회사를 다닐 때야 시어머니께 출퇴근 조선족 이모님 정도의 수고비를 챙겨드렸기 때문에 아이를 맡기는 것에 어느정도 면피가 되었다지만 회사를 그만뒀는데 그 돈이 어디서 나온단 말인가. 거기다 친정엄마는 몸이 약하셔서 오히려 엄마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결국 어린이집에 애를 맡기고 그 시간동안만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래가지고 합격이 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했다. 

남자들은 유학가서도 와이프가 해주는 밥 먹고
자식도 와이프가 다 키워주고 공부만 하는데
왜 여자는, 왜 엄마는 공부할때 셀프 뒷바라지에
자식 돌봄까지 디폴트로 깔려있는 것인가.

 그렇게 전문직 준비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것을 깨달은 후 결국 다른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정말 기가 막힌 일들을 많이 겪었다. 좋게 돌려 말했으나 '그냥 궁금해서 한번 불러봤으니 이제 집에 가서 애 잘 봐라' 라고 하는 면접관들을 만나며 아 이게 현실이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몇차례의 어이없는 상황들을 만나다가 꽤 오랜 역사를 가진 중견 엔지니어링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고 아이는 다시 시댁에 맡겨졌다. 누군가가 전담으로 아이를 봐 주는 상황은 나에게 평일 저녁의 자유를 허가했으나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마음속에 짐이 있었다. 말을 제법 하기 시작하면서 아이는 아주 구체적으로 엄마랑 헤어지는 것이 싫다고 표현했다. 지나치게 깔끔한 시어머니의 양육스타일이 마냥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었다.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이가 스트레스받는것을 볼 때마다 내 마음은 더 편치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시작한 일이 좋거나 내가 원하는 커리어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일이었느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겉보기에는 별 문제 없는 것 같아 보였지만 속이 문드러지고 있었다.  폭음과 스트레스로 심신을 망쳐갔다. 운동만이 간신히 내 정신을 지탱해주고 있었다. 나는 결국 또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 회사를 마지막으로 나는 회사를 절대 다니지 않기로 나 자신과 결심했다. 하지만 무엇을 해야겠다는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다시는 돈 때문에 하기싫은 일을 하며 9-6제/주5일을 내걸고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근로계약서에 사인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결심만 있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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