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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한의사 Aug 04. 2018

제주 도착

제주여행 2018년 6월 5일 - 6월 7일


제주 도착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깜깜한 밤이 되었다. 제주에는 비가 왔나 보다. 활주로가 젖어있고 공기가 마른오징어가 다시 통통해질 정도로 습하다. 날씨도 생각보다 쌀쌀해서 담요로 너를 꽁꽁 싸매고 유모차에 태웠다. 낯선 곳에 와서 그런지 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두리번거린다. 정신없이 공항을 빠져나와 셔틀버스 정류소로 향했다. 렌터카 센터까지 가는 마지막 셔틀버스라서 놓치면 큰일이 난다. 서두르자.


 셔틀버스를 타고 렌터카센터에 도착하니 벌써 9시 30분이 됐다. 차를 렌털 할 때는 되도록 메이저 회사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메이저라고 해도 고시된 요금을 다 받지는 않고 이것저것 할인을 해주기 때문에 생각만큼 비싸지 않다. 보험도 빵빵하게 들었다. 몇 만 원 저렴하게 빌렸다가 반납할 때 수리비, 청소비 등등 온갖 트집을 잡혀서 결국 할인된 것보다 더 뜯기는 경우가 제법 있단다. 늦은 시각이라 모바일로 미리 체크인을 해둬서 주차된 차를 그대로 타고 가면 된다. 카시트토 제휴업체를 통해서 미리 설치해뒀다. 차를 타고 호텔로 내비게이션을 찍었다. 


 제주 동남쪽에 있는 해비치 호텔. 대략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잠잘 시간은 이미 훌쩍 넘었다. 차도 카시트도 낯설어서 가는 길에 잘 재울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역시나 조금 잠이 든 듯하다가 이내 짜증을 내고 투정을 부린다. 엄마가 재우고 달래느라 애를 먹고 있는 중에 아빠도 마음이 급해져서 엑셀을 세게 밟았다. 제주도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내륙도로라 그런지 포장상태가 좋지 않다. 로터리랑 과속방지턱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속도를 줄이지 못해서 몇 번 덜컹덜컹하다가 엄마한테 1차 잔소리를 들었다. 제주에서 서귀포로 넘어가면서부터는 길이 더 험해지고 짙은 안개가 시야를 가렸다. 위험하다. 엄마 말을 안 듣고 계속 속도를 내다가 과속방지턱을 못 보고 차가 또 한 번 크게 ‘덜컹’ 했다. 엄마가 너를 재우는데 거의 성공했는데 놀라서 깨버렸다.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다. 딱 1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 이후로 엄마가 앞좌석으로 고개를 쑥 내밀고 2차 잔소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잔소리에 형상이 있다면 아마 엄마같이 생겼을 것이다. 엄마 말은 웬만하면 잘 듣는 게 좋다. 그렇게 잔소리를 하면서도 너를 재우는 데 기어이 성공했다. 대단하지 않니. 같은 이유로 끊임없이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사고를 내지 않고 운전을 한 아빠도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


 잔소리인지 꾸중인지를 들으면서 한참을 가다 보니 배가 고프다. 먹다 남은 후렌치 후라이와 콜라가 있어서 그거라도 먹어야겠다. 아빠는 운전 중이라 엄마가 뒤에서 주는 걸 받아먹었다. 후렌치 후라이는 소금을 발라놓은 무말랭이 같고 콜라는 미지근하고 김이 다 빠져서 목 넘김이 아주 부드러웠다.(고 생각을 하는 편이 좋겠다) 엄마가 뒷좌석에서 팔을 쭉 내밀어 후렌치 후라이를 주는데, 자꾸 이 후라이가 눈을 찌르고 귀를 찌르고, 후라이에 묻어 있는 소금이 볼을 막 긁어 댄다. 분명히 입으로 잘 들어갈 만한 거리와 각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아빠가 입이 좀 작긴 하지만 적당한 범위 안에 들어오면 그것도 못 받아먹을 정도는 아닌 데다가 눈, 코, 입은 생각보다 상당한 거리로 떨어져 있다. 아무리 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서 차가 흔들린다고 해도, 던져서 맞추기로 우리 집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엄마가 이렇게 까지 실력이 떨어질 리는 없다. 원인은 딱 하나밖에 없다. 너를 낳고 기르면서 엄마의 관절이 많이 상했고 근육의 힘이 빠져 협동 조정 능력이 떨어진 것이 분명하다. 출산과 육아가 이렇게 힘든 것이다. (그런데 과속방지턱 이후로 줄곧 화난 얼굴로 있었던 이유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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