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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한의사 Aug 06. 2018

호텔

2018년 6월 5일 - 6월 7일


호텔

밤늦은 시각이라 호텔 주차장도 만차다. 엄마가 먼저 내려서 체크인을 하기로 했다. 주변을 돌고 돌아서 지하주차장에 겨우 차를 대고 짐을 내리면서 엄마를 기다렸다. 긴 여정에 지친 엄마 아빠는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왜 이렇게 체크인이 늦었냐, 차를 왜 이렇게 멀리 댔냐, 너를 유모차에 태워갈 거냐, 아기띠를 해서 갈 거냐, 호텔에 부탁해서 짐을 옮겨 달라고 하자, 아니다 그냥 빨리 들고 올라가자 같이 사소한 문제에서부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생겼냐, 몸에서 맥주효모 냄새가 난다, 발톱은 깎았냐, 집에서 나올 때 서랍은 다 닫고 나왔냐 같은 중요한 문제까지 모든 사안에서 의견 충돌을 했다. 너는 누구 아들인지 또 절묘한 타이밍에 잠에서 깼다. 어쩜 이렇게 엄마 아빠 마음을 잘 아는지. 고얀 놈, 아주 그냥 귀여워 죽겠다. 빨리 룸으로 올라가서 쉬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주차장에서 호텔로 진입하는 곳에는 유리로 된 큰 여닫이 문이 있었다. 보통 유모차를 동반한 2인조가 여닫이 문을 진입하는 순서는, 누군가 한 사람이 문을 밀거나 당겨서 연 다음(미는 것이 더 좋다) 안쪽에서 문이 다시 닫히지 않도록 잡아주고(통로를 막고서 문을 잡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엄마가 가끔 이렇게 한다. 일부러는 아니겠지), 다른 사람이 유모차를 밀고 들어가는 것이다(사람 - 유모차 - 사람 순서). 이것은 게임의 룰 같은 것이라서, 이 순서를 지키지 못하게 되면 땅콩, 꿀밤을 맞는 것처럼 유모차와 함께 문에 끼이는 벌칙을 받게 된다. 그런데 너무 피곤하고 지쳐서 순간적으로 지능이 떨어졌는지 아빠가 실수를 하고 말았다. 한 손으로 문을 열고 급하게 먼저 진입하는 바람에 (유모차 - 아빠 - 엄마 순서) 유모차와 함께 문에 끼어버린 것이다. 다친 곳은 없지만 우스꽝스러운 꼴을 보여 기분이 나빴다. 엄마 얼굴에서 반사적으로 고소해하는 표정이 비쳤고 아빠는 심리적으로 타격을 입었다. 엄마와의 기싸움에서 약간 우위를 점하고 있었는데 이 사건으로 전세가 역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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