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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한의사 Sep 30. 2019

아기코끼리 덤보

2019년 3월 25일

토요일. 퇴근하고 오니 낮잠을 자고 있다. 아빠는 갑자기 찾아온 꽃샘추위 때문에 오돌오돌 떨면서 집에 들어왔는데 따뜻한 방에서 푸지게 자고 있는 네 모습을 목도하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거실은 어질러져 있고 잠을 안 자려고 얼마나 괴롭혔는지 엄마는 녹초가 되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꿀밤을 한 대 때려 줄려다가 동글동글 재미나게 생긴 얼굴로 얼린 간고등어처럼 누워있는 게 너무 웃겨서 한 번 봐주기로 했다.

엄마는 저녁 약속이 있어서 나가고, 오후부터는 아빠랑 둘이서 놀아야 한다. 집 근처 메가박스에 갔다. 영화는 볼 수가 없으니, 구경만 하다가 아기 코끼리 덤보가 있길래 같이 사진 찍기 놀이를 했다. 열심히 뛰어놀다가 홈플러스로 갔다. 5리터짜리 쓰레기 봉투 두 묶음을 사고 '쇼핑하라 2019' 행사가 있어 과자 10봉다리랑 소다 한 병을 만원에 샀다. 엄마한테 혼이 날 테지만, 일단 유모차 가득 과자를 담으니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는 것 같았다. 가벼운 걸음으로 집으로 왔다.

저녁을 먹고 목욕을 하고 나니 잠이 솔솔 오는 것 같다. 엄마가 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큰일이다. 잘 놀다가도 잠들기 전에는 항상 엄마를 찾는다. 연기를 하는 것인지 목소리와 표정도 너무 슬프고 서러워서 옆에서 아빠가 지켜보기가 안쓰러울 정도다. 그러다가 20분 30분 넘어가면 아빠는 슬슬 성질이 나기 시작하고 네가 울든 말든 옆에서 자장가를 부르며 네가 먼저 안 자면 내 자장가 소리로 내가 먼저 잠들어버리겠다는 각오를 속으로 하는 것이다.

아빠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절박성 급똥에 처하면 하느님을 찾는다. 냉담 중이지만 정말 급할 때는 어쩔 수 없다. 최근에는 너처럼 바지에 똥을 싼 적이 없기 때문에 기도가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하느님은 참 너그럽다. 아빠는 종교는 그다지 필요 없다는 주의지만, 나중에 네가 혹시 종교를 갖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천주교를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길 바란다. 요즘에는 하느님을 찾는 횟수가 늘어서 아빠 혼자서 너를 재워야 할 때가 추가되었다. '오늘은 제발 강이가 무사히 잠들 수 있게 해 주세요.'

함께 누워 책을 보다가 연신 하품을 해대길래 '그럼 우리 별 볼까?' 하면서 방 안의 불을 껐다. 천장에 붙은 야광 스티커를 보면서 우주선 피융 피융 하다가 눈을 서서히 감는다. 그렇게 잠이 들기 직전, 갑자기 '엄마? 엄마?' 하면서 손가락으로 방문을 가리킨다. 달래서 다시 잠이 들려는 순간 또 '엄마? 엄마?' 한다. 그러기를 서너 차례. 무심코 '강아 내일 아빠랑 기차 보러 가자.'라고 했더니 '기차? 기차 기차..' 하면서 겨우 잠이 들었다. 요즘 기차에 관심이 많으니, 아무래도 내일은 기차를 보러 어딘가 나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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