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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한의사 Sep 30. 2019

본전 생각

2019년 4월 9일

"강아 이제 그만 울자. 비가 와서 우리가 먼저 내린 거야. 엄마 차 대놓고 바로 올라올 거야. 그러니까 울지 말고 옷 갈아입고 엄마 기다리자. 엄마 금방 온다니까? 응? 이제 그만 울어라. 강아. 응? 엄마 바로 올라올 거야. 강이 비 맞을까 봐 아빠가 안고 바로 뛰어 들어온 거야. 응?"

어제까지는 날씨가 쨍-하더니 오늘은 갑자기 추워지고 비가 왔다. 아빠는 우산을 안 가져와서 퇴근길이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너랑 엄마가 근처에 있어서 데리러 온다고 했다. 차를 타고 무사히 집으로 왔다. 비는 계속 내리고,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아파트 현관에 차를 잠깐 세우고 아빠가 너를 달랑 안고 뛰어들어왔다. 엘리베이터를 잡고 기다리고 있는데 네가 펑펑 울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기도, 거울을 보고 이상한 표정을 지어도 자꾸 빗속으로 엄마를 찾으러 뛰쳐나가려고 한다. 겨우 집으로 들어와서 옷을 갈아입히는데도 울음을 그치질 않는다. 엄마가 좀 늦나 본데 아마 들어올 때까지 계속 울 심산인 것 같다.

엄마가 요즘에 하는 일이 생겨서 아빠랑 같이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아빠랑 같이 잠을 잘 때도 많아지고. 어린이집을 다녀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 최근에는 엄마랑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전에는 둘이서 잘 놀고 밥도 잘 먹고 배고프거나 잠들 때만 엄마를 잠깐씩 찾더니, 요즘은 한번 울기 시작하면 뭘 어떻게 해도 그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것까진 좋다 이거야. 그렇다고 아빠를 싫어할 것 까진 없잖아. 어느 순간부터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하고, 고개를 획 돌리고 쳐다도 못 보게 한다. 손도 뿌리치고 아빠 손을 발로 주 차고, 왜 그러는데.

오래전에 SBS 스페셜 <사교육 딜레마>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자식들 교육에 금전적으로 투자를 엄청 많이 하고 있는 한 아빠가 나와서 "내가 해준 게 있는데 나중에 (자식에게) 다 보상받아야죠."라고 아주 당연한 듯이 말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아빠는 그걸 보고 좀 충격을 먹었었다. 아니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저러니까 부모 자식 간에 문제가 생기고 아빠도 불행해지고 자식도 불행해지는 거지. 하면서 혀를 끌끌 찼다. 그런데 네가 이렇게 까지 울면서 아빠를 싫어하면 아빠도 이렇게 본전 생각이 안 날 수가 없다.

좋아하는 기차 책도 읽어주고, 미끄럼틀 놀이도 하고, 로켓 놀이도 하고, 탐험 놀이도 하고,  요리도 같이 만들고, 네가 터널 좋아한다고 해서 터널도 만들어주고 거기다 토마스 얼굴도 붙여주기까지 했는데, 그것뿐인 줄 알아? 쌀을 물에 담가서 빙빙 돌리는 하여간에 뭐 이상한 그런 놀이도 네가 좋아해서 다 해줬더니, 대체 왜 그러는데. 엄마를 더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아빠를 왜 싫어하는데. 네가 좋아하는 당근 반찬 알지? 그거 사실 아빠가 한 거다. 내가 이렇게 까지 했는데 말이다. 찔찔 우니까 너무 못생겼다. 아빠 닮아서 얼굴이 다 찌글 찌글. 못생긴 데다 그림도 못 그리는 바람에 완전 더 못생겼네.

한참 후에 엄마가 올라왔다. 아무렇지도 않게 생글생글 웃으면서 안긴다. 그러고는 아빠를 힐끔 쳐다본다. 니 딴에는 좀 미안한 건지. 아니면 그냥 약을 올리려고 그러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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