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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boran Feb 07. 2024

<sound and scent> 파도와 반딧불


2023년은 유독 많은 반딧불을 본 해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도합이 두 번이 전부지만 다른 해에는 아예 반딧불을 본 적 조차 없기에 많다는 표현이 나에겐 충분하다. 번째 조우장소는 남해였고, 딱 한 마리였다. 살면서 얼마나 반딧불을 본 적이 없었으면 당시 나는 그 반딧불이 친구 휴대폰 키링에 들어있는 형광물질이라 생각했다. 꽤 지나서야 그것이 살아있는 생명체임을 알게 되었고, 한참을 가랑비에 옷 젖어가며 구경하다 숙소로 들어간 기억이 되었다. 그렇게 가까이에서 본 건 생애 처음이었다.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나타난 팅커벨. 캄캄한 하늘에 형광펜을 그어대는 것처럼 날아가던 반딧불. 아직 지구엔 아름다운 것들이 많이 남아있구나 싶었다. 두 번째는 남해에 다녀온 지 2주쯤 지나 떠난 여름 휴가지에서 만났다. 쿠알라룸푸르 외곽에 위치한 셀랑고르 지역에는 코타키나발루 못지않은 반딧불들이 모여있기로 유명하다. 


-저희는 중국인이랑 같이 안 탑니다! 한국인만 태울 거고요! 오늘 이 승차장에서 제~일 좋은 보트 탈 겁니다!


관광객 스무 명 중 그 누구도 묻지 않은 질문에 우렁차게 답하며 가이드는 우리를 보트로 인솔했다. 그러나 제일 좋은 보트인지 아닌지 판별도 불가능할 정도의 시꺼먼 매연이 그대로 얼굴을 덮친 건 배에 올라타고 고작 10분 만의 일이었다. 아주 낡고 조그마한 보트가 굉음을 내며 모터에 시동을 걸자마자 눈과 코와 귀가 터질 것만 같았다. 제일 좋은 보트 탈 거라면서요... 주변에 보이는 다른 업체의 보트를 물끄러미 보며 생각해 보니 지금 타고 있는 보트가 그 선착장에서 가장 좋은 건 사실인 것 같기도 했다. 별안간 더 괴로워지는 기분이었다. 특히 코가 제일 힘들었다. 살면서 이토록 심한 매연을 가습기처럼 앞에 두고 있는 건 정말이지 처음이었기에... 아마도 오늘 이 보트 위에서 내 수명이 적어도 이틀 정도는 줄겠구나 생각하며 나는 최선을 다해 숨을 참았다. 몸 안에 남은 숨이 코딱지만큼 남았을 때쯤, 다행히 매연은 조금씩 옅어져 갔고 보트는 빠른 속도로 노을 속을 향해 미끄러져갔다. 매연 때문인지 숨이 모자라서인지 어지러웠다. 


그렇게 뿅 가는 기분으로 둘러본 사방은 하늘과 물과 나무뿐이었는데 참말로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그 풍경은 분명 말레이시아껀데 이상하게도 베트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의 노래인지 모르겠지만 그 옛날 노래방 화면에서 보았던 한 뮤직비디오 때문이다. '논라'라 불리는 베트남의 삿갓모자를 쓴 여배우가 강가 건너편에 있던 남배우에게 배를 타고 가던 장면이 언뜻 스쳤다. 아마도 조성모의 노래였을까... 모르겠다. 그렇게 20분쯤 지났을 때부터는 어느덧 주위가 시꺼메졌다. 저 멀리 일렁이는 다른 보트의 전등만이 별처럼 반짝거렸다. 가이드님이 출발 전 모두에게 나누어주셨던 600원짜리 모기약을 잔뜩 바른 채 우리는 점점 더 조용한 강가로 향했다. 자연 속 크리스마스트리라 불리는 반딧불 공원이 나오자 매섭도록 시끄럽던 모터가 그제야 조용해졌다. 털털털- 틱 하는 소리와 함께 두 귀가 먹먹해졌다. 참을 수 없는 소음에 이어 우주 속에 떠도는듯한 침묵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때부터는 그 누구도 큰 움직임을 보이거나 휴대폰 플래시를 켜서는 안 된다. 이는 출발 전에 미리 고지받은 내용이었다. 사방에 강물이 튀고 굉음이 귀를 찔러 모든 이가 어수선했던 상황이 한순간에 멈췄다. 모터가 꺼지는 동시에 세상의 모든 빛과 소리가 사라진 것처럼 암흑이 된 것이다. 귀는 물론이고 눈코입이 동시에 사라진듯한  낯선 기분이 들었다. 팽팽하던 현악기의 줄이 툭 하고 끊어진 것처럼. 혹 시력과 청력을 동시에 잃으면 이런 깜깜한 기분일까.


-뒤를 돌아보세요!


가이드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돌렸다. 암흑 속에서 눈부신 트리가 등장했다. 그것도 한 그루가 아니라 끝도 없이 일렬로 늘어선 크리스마스트리였다. 까만 하늘을 꼬마전구처럼 밝히고 있었던 반딧불들. 나는 깜짝 놀랐다. 얘네는 어떤 이유로 이렇게 다 모여있는 것인가. 30년을 넘게 살면서 반딧불을 단 한 마리밖에 보지 못한 나에게 그 광경은 정말 애니메이션 같았다. 지구가 어지간히 더러워서 이곳에 와글와글 모여서 사는 걸까. 그나저나 살면서 이렇게 많은 반딧불을 볼 일이 또 있을까... 두서없이 달려드는 생각 끝에 나는 정환이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데려와줘서 고맙다.


아침까지만 해도 도시 외곽으로 나가는 투어는 딱히 반갑지 않았던 내가 늦게나마 건넨 사과이자 인사였다. 정환이는 대답 없이 잡고 있던 손을 한 번 더 꾹 잡아주었다. 마음이 울리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가장 좋았던 순간을 물으면 이때를 떠올리지는 않을 같다. 그 순간은 조금 희한한 타이밍이었는데, 바로 마지막으로 플랑크톤을 보러 가던 길에 찾아왔다. 보석 같던 플랑크톤을 뜰채로 건져낼 때가 아니라, 옆에 있던 정환이가 어딘지도 모를 시꺼먼 바다 한가운데서 내 손을 꼭 잡아주었을 때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 모두가 잔뜩 웅크린 채 격랑 속에서 물을 흠뻑 맞았을 때였다. 플랑크톤을 보러 가기 위해 시속 70킬로쯤으로 달리던 그 순간. 거친 속도로 파도를 헤치며 나아가는 보트 위로 장대비 같은 물이 쏟아지던 그때. 우리는 모든 전자기기를 넣고 각자의 무릎으로 얼굴을 파묻고 있어야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이 가장 깨끗하게 행복했다. 굳이 비슷한 기분을 찾자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머릿속에는 할 게 너무 많아 힘들었던 찰나에 반갑게도 정전이 찾아온듯한 그 느낌. 이름도 모르는 바다 한가운데서 눈에 보이는 것도 없이 깜깜한 하늘을 미친 속도로 헤쳐나가고 있지만 무서울 것도 없는 그 느낌. 최고조로 낯선 곳에 혼자 남겨진 느낌이 강하게 들면서도 사실 이 배 안에 수많은 동행이 함께 웅크리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그 느낌. 모두 함께 멈춰있는 그 시간이 나는 적당히 든든하고 제대로 행복했던 것 같다. 


그날 함께했던 사람들 중에서는 이번 투어가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며 불평하는 이도 있었다. 사실이다. 투어 내내 함께했던 모터 소리, 무서울 정도로 빨랐던 보트의 속력, 그리고 새까만 매연까지 누구 하나 반가워할 것들은 없었으니까. 그러나 나에게는 여전히 이 날이 가장 강렬한 액티비티로 남아있다. 이후로도 몇 번의 여행을 더 다녀온 지금이지만 아직까지는 이 순간을 이길만한 장면이 나에겐 없다. 어쩌면 그날 내가 누렸던 행복은 멈춤과 비움에서 왔던걸 지도 모른다. 성향상 매일매일 채울 수밖에 없었던 크고 작은 계획들. 그러나 좀처럼 움직일 줄 몰랐던 몸과 마음. 그 속에서 나는 무형의 계획에 조금씩 매몰되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나에게 이 날의 파도와 반딧불은 비움에서 오는 쾌감을 원 없이 누린 기억이다. 늘 갱신하고 처리하고 실행하며 행복을 찾았던 내가 멈춤의 미학을 배운 순간이다. 트리처럼 빛나던 반딧불과 그 속에서 숨죽이며 구경하는 사람들, 그리고 보트 사방을 진동하던 600원짜리 말레이시아산 모기약 냄새. 이 이색적인 앙상블은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아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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