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이후
남편과 살던 타즈매니아를 떠나 멜번에서 혼자 살 집과 새로운 일을 구했다. 이제 이곳에서 내 사회적 위치는 다시 미혼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와 나는 이혼을 결정했고 그 배경엔 그와 나 사이 일어난 다양한 사건과 그걸 바라보는 다른 시각에 있었다.
어긋났던 일들을 돌아보면 어쩌면 그와 내가 결혼한 순간부터 이런 결말로 마무리되도록 결정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마치 태어나는 순간 내 죽음이 정해진 것처럼 어쩌면 그와의 관계도 이런 방식의 죽음이 예정된 건 아니었을까.
모든 변화에는 시간이 걸리듯 기혼에서 미혼의 신분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기까지도 그랬다. 종이 위 정의된 나의 신분은 하루아침에 수정이 가능해도 마음을 정리하는 일은 보이지도 않고 명확히 알아채기도 어려운 일이니까. 쓸쓸한 과정이다. 동시에 나는 내가 누구인지 자문하고 또 배우기도 한다.
이혼 결정 후 한국으로 돌아가려는 생각도 했지만, 꼭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찾아보니 마땅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오히려 두려움이 앞섰다. 혹시 실패감에 젖어 집에 숨어만 있지 않을까, 내 이혼을 다른 사람의 입에 오르지 않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다 지치지 않을까. 태어나고 자란 곳이기에 속속들이 잘 아는 사회에서 나는 왠지 발가 벗겨질 것 같은 불안함만 느껴졌다.
그에 비해 멜번은 아직 무한하게 새로운 곳이라 자동적으로 느껴지는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숨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있었다. (지극히 한국인이라 아직은 한국인의 시선에 신경을 더 쓰고, 여기 살고 있는 호주 현지인을 외국인이라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찾아온 감정은 무기력함이었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변함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참으로 이상했다. 나를 이전과 다른 사람으로 몰고 가는 이 절대적이 힘이 혼란스럽게 느껴졌다. 어떤 때는 너무 많은 생각이 한꺼번에 떠오르다가 또 어느 순간은 멍하게 돼서 해야 할 일을 놓치는 일이 번번이 일어났다. 앞뒤가 뒤죽박죽인 시간 속에서 살고 있는 듯했다.
새로 이사 온 집의 문 손잡이가 유독 익숙해지지 않았다. 어느 방향으로 돌려도 열리지 않아 화가 나기도 했다. 과거 며칠 동안은 분명히 나는 이 손잡이로 문을 여닫았던 것이 확실했지만 이상하게도 손잡이로 문을 열었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멜번 어디를 가든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나는 기억이 나질 않았고 상황과 환경은 절대적으로 견고했다.
이후로는 죄책감이 따라왔다. 틈만 나면 나는 나를 비난했다. 기억이 나지 않는 나를, 결혼 생활의 불행을 끝냈기에 행복해하는 나를. 나는 왠지 자신을 고통받아 마땅한 사람처럼 취급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