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10년 다녀보니
회식이 끝나고 우연히 유명한 꼰대 부장님과 같이 택시를 타게 되었다. 너무나 어색해서 ‘빨리 잠이 들어라~’ 기도하고 있을 때, 부장님이 입을 여셨다.
“내가 유 과장님과 앞으로 몇 번 더 술을 마실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내가 이 회사에 입사한 10년 전에 이미 부장님 40대셨다. 그렇다면, 지금 확실한 나이는 모르지만 꼰대님은 50대라는 이야기고 어느덧, 회사와 작별하는 시기를 준비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희한하게 시간은 나이가 들수록 빨리 간다. 분명히 20대에도 40대에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24시간인데 시간이 갈수록 24시간이 모자라다.
내가 회사에서는 참 싫어하는 꼰대님이었는데 택시에서 단둘이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니 기분이 또 묘하다. 확실히 어둠과 고요는 서로의 대화를 더 밀도 있게 만드는 듯하다. 상황이 그래서였을까. 평소라면 큰 의미가 담겨있지 않을 법한 그 한 마디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다음 날 , 출근을 했다. 나도 내가 이럴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꼰대님에게 꿀물이라도 한잔 사드리고 싶었다. 나 스스로 아직 취해 있나 따귀를 때려보았는데 아팠다. 진심인 모양이다.
“부장님, 어제 과음하셨는데 꿀물 한잔 드세요.”
“어, 고마워요. 유 과장님.”
예전에는 못 느꼈는데 오늘 새삼 느끼게 된 점이 있다.
유 과장’님’.
처음부터 나보다 상사였고 나보다 나이도 많고 심지어 유명한 꼰대인데 그래도 단 한 번도 말을 놓지 않고 직함 뒤에 항상 ‘님’을 붙이는 예의 바른 꼰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날 따라 무슨 오지랖인지한 마디를 더 걸었다.
“근데 부장님은 항상 존칭을 사용해 주시네요. 다른 부장님들은 이제 10년 넘게 보니깐 다 말을 놓으시던데.”
어제까지만 해도 ‘저 개꼰대’라며 동료들과 욕을 했던 내가 이렇게 웃으면서 질문을 한다는 게 스스로 가식적이었지만 그래도 궁금했다.
“별게 다 궁금하네. 회사에서 존칭을 쓰는 것이 당연한 것을.”
이 꼰대…. 오늘따라 쿨하기까지 하다.
“유 과장님은 부부싸움하면서 존댓말을 사용해 본 적 있어요?"
“아니요, 그 X 같은 상황에서 아… 아니… 죄송합니다. 그 울화통이 터지는 상황에서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은 실로 성인군자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한번 해봐요. 말이 심하게 안 나와. 회사에서 아랫사람에게도 존대를 꾸준히 써봐요. 뾰족한 말이 나오다가도 들어가. 특히, 나 같은 꼰대는 그래서 더 높임말을 써야 해요.”
그래….
생각해보면 꼰대도 태어날 때부터 꼰대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왜 또 소름 돋게 존댓말로 화를 내! ’라고 생각했던 내가 꼰대를 만들 것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