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면 우리 손복란. 할머니다.
즉 전전 세기.. 18세기 사람이시다. 지금 글 쓰는 건 2017년. 와우.
할머니는 가끔 이상한 징조를 느끼거나 꿈자리가 시끄러우면
아침에 물 한 그릇 떠다가 기도를 하셨다.
물 한 그릇 떠놓고 손으로 빌면서
소원을 말하곤 하셨다.
참고로 할머니는 무녀도 아니고 소원을 위한 특별한 주문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가족의 안녕과 무탈함을 비는 것일 뿐이다.
살아보면 알겠지만,
가정의 안녕과 무탈함,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큰일이라는 것은 어른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기도는
우리끼리 이야기인데
정말 손바닥으로 삭삭 빌면서
찰지게 비비신다.
정말 지나가는 산신령이나 터줏대감 삼신할머니가 안 도와주고는 못 베길 정도로
삭삭 빈다.
자주 비신다.
그저 아침에 물 한 그릇 떠놓고 이상한 꿈을 꾸고 나시면 비신다.
종교적이거나 무속의 영험함 같은 게 아니다. 그냥 삶이다.
엄마 역시. 식민지와 전쟁, 가난, 풍파를 다 겪었으니 어찌 기도하지 않고 살겠는. 가.
할머니의 주문은 우리 손주들이 기억하는 것은 바로
남의 눈에 잎이 되고 꽃이 되게 해달라는 거다
정말 시적이다.
요사이
어머님은 그저 아침에 일어나 금강경을 읽고, 염주를 세며 마음을 다스린다.
누구에게 빌던 누구를 위하여 기도하던
기도만큼은 생각을 정리하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고
가족을 위하는 행위이다.
나 혼자 있는 시간이다. 기도만큼은.
그러니 어찌 마음이 맑아지지 않겠는 가.
우리 형제들도 남아있는 습관이 있다.
해외에 다녀오면, 거기에서. 사온 과자들은 일단 텔레비전 앞이나 위, 화장대 위에 접시에 담아둔다,
조상님이 먼저 드시라고, 잘 다녀왔다고 하는 것들이다.
물론 교회 다니는 누나는 다른 방식으로 하겠지.
종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아침마다 정성을 다하고 기도하는 것이
육체적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종교를 선택하는 것보다 기도를 습관화하는 것이 늙음을 풍요롭게 한다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정성스러운 기돗발로
내가 개차반 같은 인생을 살려다가 만 것으로도
조상의 음덕과 엄마의 기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잘 돼서
그저 내가 남의 눈에 잎이 되고 꽃이 되길
할머니의 기도처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