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여솔. 보호자 최민영.
인숙은 아이와 보호자의 이름을 한번 더 확인한 후, 휴대폰의 잠금 화면을 풀었다. 지도 어플을 열어서는 아까 본 주소를 써넣었다. 영등포동 19가 82-1 2층. 지하철 역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대강 어디쯤인지 알 것 같았다. 청과시장 지나서 보물섬 노래방 골목으로 들어가서 세 번째 건물이네. 선크림을 발라 조금 밝아진 얼굴 위로 쓴 선캡을 살짝 만지며 고개를 들었다. 지상으로 올라온 지하철이 한강을 건너고 있었다. 인숙은 주소 확인을 재차 마친 후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를 크로스로 멘 가방 앞 주머니에 넣었다. 곧 휴대폰의 짧은 진동이 느껴졌다. 아마도 전미자에게 문자 메시지가 왔다는 알림이겠지.
재미나게 해~~!
그런 말이 반짝이는 네 잎 클로버 사진과 같이 왔을 것이다. 미자는 10년 차 아이 돌봄 선생님이다. 인숙에게 아이돌보미 일을 해보라고 몇 번이나 제안했었다. 이 일이 얼마나 보람차고 즐거운지 얼굴을 볼 때마다 얘기하며 꼬드겼다. 물론 인숙은 거절했다. 손주가 생기면 손주를 봐야지 무슨 돌보미냐고 손사래를 쳤다. 그런데 결국은 미자의 말대로 되었다. 인숙은 아이돌보미로 첫 출근하는 중이다.
돌봄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고 해서 미자가 다 만족한 건 아니었다. 겨우 다섯 시간만 근무해서는 돈이 안된다고 했다. 아이 돌봄 센터에서 연락이 왔다고 해서 따져보지도 않고 일을 덥석 받는 게 아니라, 인숙의 상황에 맞는 가정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라고 했다. 가능하면 조금 더 대기했다가 풀타임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할 집을 찾으라는 뜻이다. 인숙아, 다섯 시간이나 여덟 시간이나 똑같아, 해 보면 알아, 중간에 어린 아가들은 한두 시간 낮잠 자잖아. 미자는 그런 말을 하면서도 어차피 인숙이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하리란 걸 알았다. 그렇다. 인숙은 미자의 말이 맞겠지 생각하면서도 따르지는 않았다. 상냥하고 정확한 제안도 때가 맞지 않으면 뜬구름 잡는 말처럼 들리는 게다. 지금의 인숙에게는 하루 다섯 시간 근무가 딱 맞았다. 오전에는 집안도 돌보고 등산도 가고 장도 보고 은행도 가야지. 오후에 다섯 시간만 근무할 수 있다니! 그는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했다. 그동안은 너무 오래 일했잖아, 아이를 돌보는 것도 일로는 처음이니까, 천천히 시작하지 뭐.
*
토요일 아침 첫 손님은 늘 미자였다. 목욕탕 거울 앞에 서서 인숙이 머리를 싹 올려 고정을 하면 미자가 바로 뒤 편에 있는 옷장에 열쇠를 꽂아 문을 열며 인사했다. 그리고는 내내 하린이 이야기를 한다. 하린은 미자가 아이돌보미로 일하며 벌써 3년째 보살피는 아이 이름이다. 아이들은 당연하게도 다 귀엽지. 하지만 인숙은 자신과 상관도 없는 아이 이야기에 흥이 나지는 않았다. 그에 비해 미자는 무척 신이 나서 아이 자랑을 했다. 세신대에 누워 때를 밀다가도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휴대폰을 열어 아이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요즘 젊은 엄마들이 싹싹하고 정확하고 똑 부러진다고 덧붙였다. 인숙은 공감하지 못했다. 그건 미자야 네가 자기 자식 구박할까 봐 걱정돼서 그러는 거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미자야 너는 사람이 너무 긍정적이다. 이런 말을 이어가려다 실제로 하지는 않는다. 대신 뜨거운 물을 한 바가지 떠서 미자의 등에, 한번 더 떠서 엉덩이에 차례로 힘차게 뿌릴 뿐이다.
생각난 것을 다 얘기했다면, 오히려 속상한 마음에 대해 늘어놓았겠지. 인숙은 최근 몇 년째 관계가 소원해진 딸을 떠올리게 되니까. 인숙의 딸 보라는 어릴 적부터 자신은 독신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쯤이었던 것 같다. 독신이라는 말을 어디서 배워왔는지, 그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된 때부터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엄마, 나는 결혼 안 하고 엄마랑 살 거야 계속. 나이가 들면 마음이 바뀔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냥 흘려들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당연히 아이도 갖지 않을 것이라고 꽤나 진지하게 말했다. 그래도 때 되면 서로 좋다는 짝을 만나 이 집을 떠날 거라고 생각했기에 인숙은 다시금 흘려들었다. 문제는 속앳말을 뱉은 날이다. 유난히 피곤해 식은땀을 흘리며 집에 도착했는데 보라는 방에서 남자 친구와 한참 통화 중이었다. 씻고 나와 거실 소파에 앉았는데도 방에서는 남자 친구와 낄낄거리며 통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갑자기 가슴에 불이 확 붙은 듯 짜증이 타올랐다. 인숙은 그날, 속으로만 해야 할 말을 야멸차게 뱉어버렸다. 아이고, 남자를 그렇게 좋아하면서 독신 같은 소리 하고 있네가 시작이었다. 연애는 그렇게 하면서 결혼은 왜 안 해? 빨리 졸업하고 결혼이나 하라는 잔소리에 도달할 하면서 시작된 싸움의 결말은 하나의 짧은 선언이었다.
엄마, 나 정말 결혼 절대 안 해.
보라는 이젠 나가서 살겠다며 며칠간 짐을 챙기더니 학교 앞에 친구와 원룸을 구했다고 했다. 경기도 끄트머리에서 서울까지 통학이 오래 걸려 힘들어했던 걸 알기에 핑계는 충분했다. 인숙도 괜히 더 말을 붙이지 않기로 했다. 갈등을 더 파고들 필요는 없지. 시간이 필요하겠지. 괜한 잔소리는 하지 않는 건데. 처음에 인숙은 이 철없는 것이 쓸데없는 말로 큰 소리를 낸다고 생각했다가, 나중에는 자신이 언젠가 변할 수 있는 아이의 마음에 불을 질러 일말의 가능성까지 태워버린 것은 아닌가 후회했다. 뭘 하는데 그렇게 바빠? 집에 한번 안 와? 그런 말을 한 지도 이제 3년은 넘은 것 같다. 대화 자체가 없어졌다. 너 이렇게 니 맘대로 살다가 갑자기 임신했네 어쩌네 해도 나 절대 안 도와줘! 한 번은 싸우다가 그런 말을 했고, 생각해보니 그게 마지막 통화였던 것 같다.
전화를 한번 해볼까, 생각을 하면서 샤워볼에 비누거품을 냈다. 때를 모두 다 밀고 나면 샤워볼로 미자의 온몸을 박박 닦았다. 얇은 플라스틱 섬유로 만들어진 샤워볼은 영원히 거품을 내놓을 것처럼 보글댄다. 몸 곳곳을 문지르자 미자는 거품으로 만든 이불을 덮은 것처럼 평온하다. 그 거품에 싸여보면 알지. 눈에 보이지 않던 때를 씻어낸 후 거품을 덮은 때의 고요. 분명 맨몸인데도 안전한 철갑옷을 두른 느낌 있잖아.
어쩐지 40프로 정도 잠든 미자를 두고 인숙은 냉장고에서 오이를 꺼내 왔다. 손님이 없는 한가한 날이면 세 심대는 미자의 차지였다. 인숙은 믹서로 갈아 물기를 쫙 뺀 오이가 담긴 락앤락 통을 세신실 난간에 올려놓고 다시 한번 온몸에 물을 부어 거품을 씻어냈다. 오늘도 세신+마사지 50,000원을 선택한 미자에게는 서비스로 오이팩을 해줄 것이다. 이마에 으깨진 오이를 올려 문지르자, 분명 잠든 줄 알았던 미자의 수다가 다시 시작된다. 입 주변에 오이를 얹어 말을 할 수 없을 때까지 미자는 계속 말했다.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 그 애 엄마들이.
인숙은 통 안에 남은 오이를 싹싹 모아 미자의 이마와 콧등에 얹으며 생각했다. 아이가 감기에 걸리면 바이러스의 출처로 미자를 의심하겠지. 젊은 엄마들은 은근히 의심하고 따지고 딴 소리를 해. 내 자식 보는 것도 힘든데 남의 애를 뭣하러 키워. 나중에 손주나 돌봐야지. 인숙은 남의 말보다는 자신의 경험에 따라 판단하는 편이었다. 보라의 선언도 믿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 달 내에 연화탕은 폐업했다. 폐업을 알리는 공지가 붙자 소문을 들은 여자들이 탈의실 옷장 꼭대기에 올려 두고 다니던 목욕바구니를 찾으러 왔다. 아휴 이건 너무 갑작스럽잖아, 따위의 한탄이 나왔다. 하지만 급하게 결정된 일이라고 과연 예상도 못한 일은 아니었다. 동네마다 대중목욕탕이 있고 금요일이나 주말 아침마다 바구니를 들고 목욕탕을 찾는 사람들의 시대는 오래전에 끝났다.
다시 세신사 일을 구하려고 과거에 일하던 목욕탕이나 다른 동료 세신사들에게 안부를 물어봤지만, 다들 이제 쉬거나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같이 일하자는 제안이 있기는 했다. 마포구 빌라 지하 1층에 오픈했다는 마사지샵이었다. 여성 전용으로 깔끔하게 운영한다고 긴 설명을 들었지만 내키지 않았다. 나는 세신 사지 마사지사가 아니야. 세신사들 사이에서도 인숙의 마사지 실력은 알아주는 수준이다. 돈이 좀 급했다면 이렇게 단박에 거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짧은 근무 시간에 비해 임금도 높은 편이었다. 좀 고민을 해보고 연락드릴게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연락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나이가 들었구먼, 전화를 끊은 후 인숙은 중얼거렸다.
주말이면 때를 밀겠다는 사람이 종일 줄을 섰는데 말이야, 때를 밀고 있으면 나한테 돈을 보여주고 여기 놓고 간다고 손님이 나가고 또 누가 새로 와서는, 지금 때 밀고 싶은데 지금 앞에 몇 명이나 기다리고 있냐고 묻고, 나는 저기 사물함 열쇠가 놓인 순서를 읊지. 다들 자기 사물함 열쇠를 저기 난간에 두고 가면 그게 줄 서는 거야. 81번, 102번, 29번 불렀지, 목소리가 수증기 사이로 쩌렁쩌렁 울리고. 눈치를 봐가며 뜨거운 탕 속에서 때를 불리던 크고 작은 여자들이 와서 세신대에 누워. 나는 정신없이 때 밀면서도 자식들 안부를 묻고 주말 일정을 묻고, 그러다가 저녁이 되면 조용해진 탈의실에서 축축해진 현금을 말리는 게 일이었는데.
미자와 인숙은 인절미를 손으로 집어 그릇에 남은 콩가루를 싹싹 모아 먹으며 옛이야기를 했다. 좋은 시절이었다. 아니야, 인숙아, 아직 좋은 시절 다 안 끝났어.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목욕탕도 없어지는 판국에 옛날 타령만 하고 있지 말고, 너도 면접을 봐. 나는 지금이 좋은 시절이야. 미자는 또 휴대폰 속 하린이 사진을 꺼냈다.
<영등포구 아이돌보미 모집!>
때맞춰 공고가 올라와 있었다. 요즘 돌봄 선생님이 부족하다고 많이 뽑는다고 하더라. 인숙아 너 정도면 아주 에이급이야, 당장 합격이야. 당차게 엄지 손가락을 세워 보이는 미자 앞에서 인숙은 인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쉬었다.
에휴, 남의 집 애 보는 게 말이 쉽지.
그에게 이 말은 진심이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목욕탕으로 돌아가는 것도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건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미자가 등을 떠미니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부지불식간에 일단 지원서를 냈다. 미자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쓰는 줄도 몰랐겠다고, 이게 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맞냐고 하면서도, 단정하게 머리를 빗고 증명사진을 찍었다. 자기소개 칸에는 젊은 시절 동네 아이들을 챙겨 돌보던 이야기도 썼다. 면접을 보러 오라는 문자와 전화를 받았다.
쑥스럽게 무슨 면접인가 싶었지만, 슬슬 아이 돌보미 자리가 욕심났다. 아이를 돌보는 일이라면 내가 또 꽤 해본 일이고 잘하는 일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 목욕을 내가 얼마나 잘하겠나. 청결이 최고지. 그 분야라면 내가 장인이지. 보라가 당장 결혼할 일은 없을 것 같아도, 언젠가는 아이를 낳겠지. 나는 할머니가 될 테지. 그렇게 생각이 이어지자, 예비할머니로서 실력을 뽐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내 최종 합격 소식을 들은 날에 인숙은 무척 기분이 좋았다. 날아갈 듯 좋았다는 말이 정확하다. 입 꼬리가 내려갈 줄 몰랐다.
<합격>
아이돌보미 면접에서 최종 합격했다는 문자 메시지는 아주 길었다. 축하의 말과 오리엔테이션 일정, 제출해야 할 서류 등 안내 사항까지. 그 낯설고 복잡한 메시지 속에서 ‘합격’만이 또렷하게 보였다. 합격했다는 소식 같은 걸 생전 들어본 적이 있던가. 인숙은 없었다.
중학교를 겨우 졸업하자마자 부모님이 하던 칼국수집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건 집에 도움이 되었지만 돈이 되지 않았다. 집안의 벌이를 나눠 쓸 게 아니라 밖에 나가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빠의 친구가 소개해준 딸기 농장에서 일을 배웠다. 농장 주인이던 아주머니가 근처에 펜션 사업을 시작하자, 그것을 관리하는 일도 했다. 손님을 맞이하는 것부터 방을 치우고 이불을 빨고 마당 풀을 깎는 관리까지. 돈을 좀 모았지만 그 농장과 펜션에서 빠져나오기는 힘들었다. 인숙아, 너 없으면 우리가 일 못해 이제. 그렇게 나간다는 소리는 제발 하지 마라. 그런 말을 들으며 손님들이 더럽힌 방을 치웠고 몇 년이 지났다. 안 되겠다 싶어서 이제 독립하고 싶다고 얘기하고 관두자 배신자 소리를 들었다. 아빠가 소리를 지르며 내가 너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고 했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엄마는 칼국수집 주방에서 한숨을 쉬었다. 내가 뭘 그리 잘못했었던가. 딸기 농장에도 펜션에도 한 번 찾아온 적 없었으면서… 그 뒤로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주택과 주택 사이에 낀 틈에 천장을 올려 만든 것 같은 두 평짜리 가게 자리를 얻었다. 거기에 수선집을 차렸다. 농장과 펜션에서 온갖 것을 고쳐 입고 다듬었던 실력을 믿었지만, 실력만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수선집을 찾는 수요가 없는 동네였다. 일 년을 겨우 버티고 월세와 생활비로 돈을 축낸 후 세신사가 되었다. 얼마 없는 손님 가운데 목욕탕집 사장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연탕. 길 건너 골목 안에 있는 목욕탕인데, 세신사가 자꾸만 전날 술을 먹고 연락 두절로 펑크를 낸다고 했다. 주머니에 구멍이 난 코트를 들고 왔던 목욕탕 사장님의 하소연을 듣고, 땜빵으로 한 번 두 번 해준 게 시작이었다. 수선집을 정리하고 세신사로 들어앉자 남의 일자리 뺏은 년이라는 욕을 들었다.
그렇게 흘러 흘러 살았다. 어떤 직업을 간절히 바라거나 시험을 통과해 합격자로서 시작하는 건 애초에 없는 선택지였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 것일 뿐이라고? 그런 말은 선택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특권이라는 걸 알 리 없는 이들의 말일뿐이다. 고등학교가 아니라 칼국수집에서 야채를 다듬었던 일, 집을 나와서 딸기 농장에 들어간 일, 배신자 소리를 들으며 차린 수선집, 그리고 세신사. 인숙은 그것 또한 선택이라고, 원하는 걸 찾아 노력을 해보긴 했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뺨을 한 대 갈기고 싶을 것이다. 갈길 것이다. 언젠가 꿈에서 그런 사람을 향해 주먹질을 하다 깬 적이 있었던 것도 같다.
미자는 축하 파티를 열자며 지하철 역 앞 야채곱창볶음 집으로 인숙을 불러냈다. 맵고도 달큼한 기름 냄새가 퍼졌고 축하의 소주를 한 잔씩 따랐다. 우리가 애들 키우고 돈 벌고 했던 거 생각해봐,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아이들 예쁜 것도 모르고 지나갔다니까. 일 해보니까 그래. 아이들이 진짜 너무 귀하고 이뻐. 아주 깜찍해. 고거 쪼끄만 게 함 무니 함무니 웃는 거 보는 낙으로 살게 된다니까. 요즘 애들 엄마는 또 얼마나 야무진지 우리 때랑은 또 달라. 그리고 센터 담당자, 그래 너 합격 전화해준 주임님이 진짜 또 싹싹해.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오늘은 힘든 일 없으셨어요, 물어봐주는 거 말이야. 누가 우리한테 일 시키기나 했지 그런 거 물어봐줬냐. 술기운으로 눈 주변과 귀가 빨갛게 달아오른 미자는 본격적으로 자신이 아이돌보미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고백했다. 분명 언제나 미자가 해왔던 말인데, 인숙은 모든 게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오랜만에 술이 달게 목을 넘어갔다.
맞다. 그 센터 직원이 황인숙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앞에서 그랬다면 옆에 다른 누구를 부르는 것인가 두리번거렸을지도 모른다. 황인숙 선생님. 어린 시절 인숙의 꿈이 선생님이었다는 게… 그제야 생각났다. 그랬지. 단정하게 치마와 블라우스를 입고 싶었지, 팬티와 브라 바람으로 때를 미는 게 아니고. 인숙은 이젠 입지 않는 보라색과 자주색과 까만색 레이스 속옷을 생각했다. 목욕탕에서 입는 나름의 유니폼이었다. 젖어도 무겁거나 철퍽이지 않고 무엇보다 좀 야한 게 마음에 들어 같은 디자인을 여러 벌 샀다. 이제는 가장 안쪽 서랍에 고이 모셔져 있다.
지난 며칠간 인숙은 영등포구청 별관 강당에서 진행되는 돌봄 교사 오리엔테이션과 교육에 참석했다. 구청 건물 입구는 담장을 타고 뻗어나가는 새빨간 장미꽃 넝쿨로 향기롭고 뜨거웠다. 여름이 다가오는 게 느껴지는 열기 사이로 사람들로 북적였다. 오리엔테이션을 받던 첫날, 여기가 맞는가, 의심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작은 안내판에 강당은 복도를 가로질러 뒷 건물에 있다는 문구가 보였다. 민원실 주변의 번잡한 소리가 서서히 멀어지고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복도 끝에 유리문이 보였다. 거기 흰 에이포 용지에 한 글자씩 출력해 붙여놓은 인사말이 붙어있었다.
아 이 돌 봄 교 사 여 러 분 ! 환 영 합 니 다 !
인숙은 한 글 자 한 글 자 천 천 히 그것을 읽었다. 쑥스러운 마음과 자랑스러운 마음이 동시에 피어나는 것을 느끼며 눈으로 주변을 살피는데, 손은 가방 속에 넣어둔 휴대전화를 더듬으며 찾고 있었다. 일찍 도착한 탓인지 아직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찰칵. 인숙의 휴대전화에 그것이 남겨졌다. 강당이라기보다는 넓은 세미나실 정도로 보이는 곳에 사람들이 띄엄띄엄 앉아 있었다. 강당 한편에는 버터와플, 빈츠, 마가렛트, 쿠쿠다스, 사브레 같은 과자들이 일회용 접시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서비스라서 그런지, 아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라서 그런지 무슨 과정과 연수도 많았다. 인숙은 그것조차 좋았다. 가능하면 더 오래 많이 배우고 싶었다. 어린 강사가 하는 말을 열심히 들었다. 요즘은 아이들한테 옛날 공주 이야기만 읽어주면 안 된디야. 미자가 그런 말을 할 때 인숙은 잘 이해를 못 했는데 이제 알게 되었다. 그런 걸 성평등 보육이라고 했는데, 아주 근사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이거 봐봐, 재밌지?
슬금슬금 웃음이 늘어나는 인숙에게 얼굴을 쑥 내밀며 미자가 물었다. 불향이 나는 양배추가 입안에서 달콤하게 씹혔다.
*
영등포동 19가 82-1 2층. 집 앞에 도착하긴 했는데, 주소는 맞는데, 여기가 맞는지 의심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미자는 에어컨 잘 나오는 아파트에서 일하는데 어째서 나는 이 허름한 빌라일까. 순식간에 미자가 했던 충고들이 떠올랐다. 휴대폰을 꺼내 주소를 거듭 확인하며 실망했다. 미자가 주 5일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일하는 2살 오하린의 집은 지하철 역 바로 앞에 있는 대단지 아파트의 18층이다. 창 밖으로 한강이 보인다고 했다.
선생님, 아이랑 선생님이 더우시니까 에어컨은 계속 틀어두세요, 중간에 환기만 20분씩 꼭 해주시고요, 하린이 밥이랑 간식은 여기요, 두 번째 칸에 넣어뒀어요, 선생님 식사는 저기 국이랑 이쪽 반찬 꺼내서 드시면 돼요, 제가 커피랑 과자랑 여기 서랍에 사다 놨는데, 여기 물 채운 후에 이거 캡슐을 여기에 넣으시고 이 버튼을 누르시면 예열이 되다가, 이렇게, 네, 커피가 나와요, 네, 편하게 쓰세요, 아 그리고, 하린이 목욕은 이걸로 제가 헷갈리실까 봐 오하린 여기 이름 써놨거든요, 이거 쓰시고, 로션은 이거요. 수건도 여기가 하린이 거예요. 하린이가 피부가 예민해서 물기 닦을 때는 꼭 이 수건으로 쓰셔야 해요. 궁금하신 거나 생기시면 아무 때나 전화 주세요.
우리 예쁜 하린이. 미자의 입에 붙어서 아주 귀가 아프게 들은 예쁜 하린이. 하린이를 위해 늘 영어 동요도 틀어놓는다고, 미자가 자랑했었지. 나는 무슨 말인지 몰라도 하린이는 알겠지,라고 미자가 말했었지. 한국말도 아직 못하는 아기한테 무슨 영어냐고 하자, 이제 압빠, 엄마, 무(물), 따기(딸기), 압(밥), 우유 같은 말도 곧잘 한다고 했다. 듣기가 중요하다고, 말도 많이 해주고 노래도 틀어주고 해야 한다고.
그런데 여기는 노래도 틀 수 없겠다. 인숙이 현관 앞에 서있을 뿐인데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그려지도록 잘 들렸다. 빨래가 돌아간다. 세탁기의 덜덜거림까지 전해지는 기분이다. 동요가 흘러나오는 와중에 다른 동요가 겹친다. 아마도 장난감을 여러 개 가지고 놀고 있나 보다. 저거 유재석이가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 아니 비타민 광고, 아니 YTN 뉴스 소리가 들린다. 바뀌던 채널의 종착지는 뉴스였구나. 벨을 눌러야 하는데, 벨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다. 찾을 수 없는 게 아니라 그냥 없는 거군. 쾅콰왕. 인숙은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세게 치지도 않았는데 얇은 알루미늄 문이 아주 시끄럽다. 끼익. 누가 잡아당긴 것처럼 문이 열렸는데, 문 앞에는 아무도 없고 저기 멀리 아이가 앉아 있었다. 예상대로 노래가 나오는 장난감 두 개다.
할머니.
아이 몸집보다 큰 선풍기가 달달달 돌아가고 있었다. 세탁기가 아니라 선풍기였구나. 에어컨은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
아이가 조금 더 크게 외치자, 왼편 안쪽 어딘가에서 들리던 물소리가 멈췄다. 손을 옷에 닦으며 나오는 여자는 할머니라고 하기에는 너무 젊다.
여기가 여솔이 집인가요?
질문인 듯 인사인 듯. 인숙이 최대한 다정하게 말을 붙이지만 대꾸는 없었다. 앉은자리에서 아이가 고개를, 아직 남은 물방울이 맺힌 손을 맞잡은 젊은 할머니가 고개를 길게 두 번 끄덕였다. 다시 텔레비전의 채널이 바뀌고 있었다. 아마도 저기 오른편 안쪽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