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책에서 읽은 것처럼 혹은 누군가의 조언처럼 귀찮아도 3줄씩만 써야지 했던 것이 4줄이 되더니 할 말이 많아진 지금은 하루의 페이지를 꽉 채우고도 모자라 줄 밖의 여백을 채우기에 이르렀다.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가장 희열을 느낀 부분은 글의 처음을 '오늘은'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검사를 받는 일기를 쓰던 시절, '오늘은'으로 시작하는 일기는 잘못된 것이라던 선생님의 말씀이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 걸 보면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괴로워하던 한 아이의 스트레스는 꽤나 컸나 보다. 망설임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 마음껏 수십 번 수백 번의 '오늘은'으로 첫 줄을 완성한다.
솔직한 부분, 건조하게 쓴 부분도 있고 스스로를 속이며 거짓 괜찮은 척 검열을 한 부분도 있다. 꼭 언젠가는 들통나 버릴 걸 대비하여 일기장을 발견한 사람들의 반응까지 고려하여 써 내려간 그야말로 일기장 노트에 쓴 일기와 이야기다라고 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라도 써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건 '성공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일기를 썼다.' '부자가 되려면 일기부터 써야 한다.'와 같은 트렌드에는 뭔가 대단한 게 있을 것 만 같은 기대 때문이었다. 자기 계발의 일환으로 한 권의 기록을 만들어 놓고 보면 나 자신에게 엄청난 변화가 생길 거라고 내심 기대했다. 이것도 아니면 '그 과정 가운데서 깨닫는 게 있을 테지.' '꼭 발견하고야 말겠어.'라는 오기로 두꺼운 노트를 여행 때마다 챙겨가는 피곤함도 기꺼이 감수했다. 술에 취해 피곤한 날에도 다음날이면 전혀 알 수 없을 법한 글씨들을 노트에 휘갈겨 두는 그날의 "일"에 집착했다.
꼬박 1년이 지났다. 시간이 그렇게 지나가버렸는지 모를 정도로 매일을 비슷한 일상에 특별한 인생의 이벤트나 사건 없이 사계절을 스쳐왔다. 눕기 전 일기장을 들추어 보는 것이 양치하는 것처럼 당연한 일과가 되었다는 거 외에는 일상을 파고드는 명징한 깨달음 같은 건 없었다.
하루씩 비교하며 작년 이 시기에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했는지 그때의 나의 기분은 어땠는지를 분석하는 일을 했어야 할까? 그랬다면 무언가 더 달라져 있을까? 마치 핸드폰에 찍어둔 엄청나게 무수한 사진들을 일일이 다시 보지 않는 것처럼 앞에 걸어가는 사람이 자꾸 뒤돌아보며 자신의 길을 가지 않는 것처럼 지나간 일기장은 들추어지지 않았다. 그냥 한 권의 일기장으로 꽂혀 있는 것으로 족했다.
일기를 쓰는 순간 하루치의 억울함과 후회와 원망은 모두 해우된다. 아쉬움은 그날 저녁 오롯이 일기장에만 남겨진다. 오랜 시간 후에 우연히 다시 찾게 되는 일이 없을지라도 평생 그대로 묻힌다고 해도 아쉽지 않다. 과연 이게 성공하는 것과 부자 되는 것에 연관이 있을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