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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한 골짜기'에서 리얼돌과 좀비가 축구를 하면

'uncanny valley'가 야기할 AI시대의 일상적 함정

by 안치용

5월 17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광주FC의 경기는 1대0 서울의 경기로 끝났다. 이 경기는 특별히 화제가 됐는데 경기 때문이 아니라 관중 때문이었다. 코로나19바이러스감염증 방역 모범국으로 불리는 한국은 무관중 중계방송 방식으로 스포츠 리그를 가동해 다시 한 번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날 경기 또한 코로나19로 인한 무관중 경기였는데 FC서울이 색다른 이벤트를 기획한답시고 관중석에다 ‘리얼(돌) 마네킹’을 설치하여 논란에 휩싸였다. 겉모습만 리얼돌일 뿐 아니라 언론보도로 전해진 바로는 서울 유니폼을 입은 마네킹 중 일부는 실제로 리얼돌이었다. 국내외 언론은 리얼돌 관중이 부적절했다고 일제히 비판했다.


어느 스포츠 전문지는 리얼돌 관중의 선정성 뿐 아니라 리얼 마네킹 자체가 공포와 혐오를 야기한다며 조금 다른 관점에서도 비판했다. 인간은 인간을 닮은 존재를 보면 호감을 느끼지만 사본의 닮음 정도가 원본에 아주 근접하면 오히려 불쾌함을 느끼게 된다는 심리적 반응, 즉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현상을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불쾌한 골짜기’는 구단의 마케팅에 관한 조언이기에 선정성이란 사회적 문제제기와는 약간 동떨어진 것이긴 했다.


‘불쾌한 골짜기’는 인간이 로봇 등 인간이 아닌 존재를 볼 때, 그것과 인간 사이의 유사성이 높을수록 더 많은 호감을 느끼게 되지만 유사성이 어느 수준에 다다르면 오히려 호감도가 하락한다는, 즉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는 이론이다. 1970년 일본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森政弘)가 소개한 개념인데, 여기서 ‘불쾌(uncanny)’는 독일의 정신과 의사 에른스트 옌치가 앞서 1906년에 제시한 ‘Das Unheimliche’의 영어번역이다. 이 ‘불쾌’는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존재가 정말로 살아 있는 게 맞는지, 아니면 살아 있지 않아 보이는 존재가 사실은 살아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심에서 비롯한 감정이다. 가장 비근한 예로 좀비를 떠올리면 되겠다.

불쾌한 골짜기 위키피디아.png

‘골짜기(valley)’는 호감도와 닮음정도를 변수로 한 그래프 모양 때문에 생겼다. 모리의 설명에 따르면 이 그래프 상의 곡선은 크게 3개 국면으로 구성된다. 인간은 로봇이 인간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을수록 호감을 느낀다. 하지만 비슷한 정도가 특정 수준에 다다르면 인간의 감정에 거부감이 생기면서 호감도가 하락하여 곡선 또한 상승에서 하강으로 돌아선다. ‘uncanny’ 혹은 ‘Das Unheimliche’의 개입이다. 하강곡선은 비슷한 정도가 훨씬 더 높아진 또 다른 특정 수준에 이르면 하강을 멈추고 다시 상승한다. 이렇게 급하강 후 급상승한 호감도 구간은 그래프 상의 곡선에서 깊은 골짜기 모양을 하게 돼 ‘골짜기’를 형성한다. ‘불쾌’와 ‘골짜기’를 결합하면 ‘불쾌한 골짜기’가 된다.


2019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에서 인간의 ‘불쾌한 골짜기’ 반응에 대한 실험결과를 볼 수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는 독일 아헨공대 휴먼테크놀로지센터와 공동 연구를 통해 “뇌의 전두엽에 위치한 시각피질의 활성화 정도를 통해 불쾌한 골짜기를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고 2019년 7월 1일 국제학술지 ‘신경과학’에 발표했다.(“Neural Mechanisms for Accepting and Rejecting Artificial Social Partners in the Uncanny Valley”, Journal of Neuroscience)


요약하면 실험참가자 21명을 대상으로 실제 사람과 마네킹, 안드로이드(사람과 구분이 어려운 인조인간)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산업용 기계로봇 등의 이미지를 보여주며 질문을 던졌고 그 반응을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촬영해 뇌의 어떤 영역이 활성화되는지 확인했다. 연구진은 “실험 결과 참가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전형적인 ‘불쾌한 골짜기’현상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실험결과가 ‘불쾌한 골짜기’ 용어를 설명하는 것의 반복이기 때문에 자세한 연구결과는 생략한다.


2011년 미국의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 대학교 세이진 교수 연구팀도 비슷한 실험을 했다. 연구팀은 세 가지 사례를 20명의 실험 참가자의 뇌 반응을 통해 살폈다. 첫 번째 사례는 실제 사람, 두 번째는 실제 사람과 아주 흡사한 인간형 로봇, 세 번째는 내부 뼈대가 그대로 드러난 로봇이었고 각각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영상을 보여줬다. 참가자들의 뇌를 MRI로 촬영한 결과, 첫 번째와 세 번째 사례에 대해서는 뇌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인간형 로봇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영상을 볼 때는 시각 중추와 감정 중추를 연결하는 연결부에서 격렬한 반응을 보이며 다른 두 사례와 다르게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2009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연구팀이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아직까지 ‘불쾌한 골짜기’는 가설이다. 인간 심리 반응에 관한 전혀 새로운 이론이기 때문에 더 많은 실험과 검증이 필요하다. 다만 성립 가능한 하나의 가설이라고 전제하고 논의를 이어가자면, 유사성 구현 정도의 특정 국면에서 불쾌한 골짜기를 생성하는 인간 심리는, 심리학이 아니라 인문학 견지에서 일종의 정체성 반응이라고 판단한다. 주체가 대상에게 동일률에 의거하여 감성적 반응을 수행할 때, 현저한 차별성을 전제한 채 많은 동일성을 확인한다면 호감은 주체의 확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데카르트 용어를 비유적으로 사용하면 '연장'이다. 그러나 차별성이 미미한 가운데 대상에게서 현저하게 많은 동일성만을 확인한다면 주체의 혼란(또는 분열)을 야기할 수 있어 정체성 사수를 위한 방어기제가 작동할 수 있다고 본다. 데카르트 용어를 비유적으로 사용하면 '사유'라고 하겠다. '사유'의 국면을 나는 ‘불쾌한 골짜기’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인체에 외부물질이 침입했을 때 면역세포가 작동하여 인체를 보호하며 고름을 만들어낸 것과 비슷한 풍경이지 싶다. 그렇다면 골짜기에서 탈출하는 국면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이 국면은 아직 인간세상에 등장한 적이 없다.

FC서울 리얼돌 관중.jpg

주체가 판단하기에 대상에게서 차별성이 식별되지 않을 때(말하자면 동일 주체?) 호감도가 다시 높아진다는 주장은 엄정하게 말하면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불쾌한 골짜기’의 현실 곡선은 그저 역 U자에 머물 수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며 골짜기에 탈출하는 국면이 도래한다고 하여도 문제는 남는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이다.


이 판단에서는 동일한 (주체의) 관점이 유지되어야 하기에, 상대가 실제 인간과 구분되지 않는 인조인간이어서 주체가 그를 그저 인간이라고 판단하여 동일한 호감 반응을 보인다면 그것은 주체의 관점에서 인간에 대한 반응으로 보아야지 인간이 아닌 것에 대한 반응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위에서 조망하는 실험자만 ‘골짜기’가 생긴 것을 알 수 있을 뿐 실험실의 인간은 골짜기를 전혀 지각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것은 존재하는 골짜기인가 존재하지 않는 골짜기인가.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제기한 문제의식과 동일하다.


장차 인간 앞에 아마도 실제로 등장하게 될 ‘골짜기’를, 현실 속의 인간은 사실상 지각할 수 없을 것이기에, 추락을 야기할 함정(골짜기)을 일상적으로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 함정을 만들고 깊이를 정하는 것 또한 인간이라는 역설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어서 아직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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