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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맨과 but맨의 결정적 차이

3. 팔로워의 품격

by 유키

2019년, 대한항공 조원태 회장이 취임 후 첫 임원 회의를 열었다.

"앞으로 우리 회사의 문제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세요. 쓴소리도 좋습니다."

한 시간 동안 침묵이 흘렀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조 회장이 답답해서 한 임원을 지목했다.

"김 전무, 우리 회사의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김 전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회장님의 생각이 옳으십니다. 저희는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조 회장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다음 임원을 지목했다. 답은 똑같았다.

"회장님 뜻대로 하겠습니다."

"회장님이 잘 아십니다."

"저희는 실행만 하겠습니다."

이것이 한국 대기업의 현실이었다. 수십 년간 이어진 수직적 문화가 만든 '예스맨'들의 왕국.

그런데 무거운 침묵을 깨고 막내 임원인 박 상무가 손을 들었다.

"회장님, 죄송하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회의실이 얼어붙었다. 다들 박 상무를 쳐다봤다. '저 사람 미쳤나?' 하는 눈빛이었다.

박 상무가 계속했다.

"회장님께서 추진하시는 방향은 맞습니다. 하지만(Yes, but) 현실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노조의 반발이 예상됩니다. 둘째, 비용이 예상보다 30% 더 들 것 같습니다. 셋째, 경쟁사가 먼저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안드립니다. 속도는 조금 늦추되,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면 어떨까요?"

조 회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자세히 말해보세요."

이것이 '예스맨'과 '예스, 버트맨'의 차이다.

예스맨은 무조건 "네, 알겠습니다"만 한다.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는다. 상사가 틀려도 지적하지 않는다. 상사가 절벽으로 가도 따라간다. 그들의 목표는 단순하다. 상사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 안전하게 자리를 보전하는 것.

예스, 버트맨은 다르다. 기본적으로 상사를 존중한다. 상사의 의도를 이해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으면 말한다.

"네, 방향은 맞습니다. 하지만(but)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LG전자의 한 임원은 이렇게 설명한다.

"예스맨은 상사를 망치는 사람입니다. 당장은 편하게 해주는 것 같지만, 결국 잘못된 결정을 하게 만들죠. 반면 예스, 버트맨은 상사를 살리는 사람입니다. 때로는 불편하게 하지만, 올바른 결정을 하도록 돕습니다."

실제로 성공한 CEO들 곁에는 항상 예스, 버트맨이 있었다.

삼성 이재용 회장 곁에는 최지성 부회장이 있다. 최 부회장은 '삼성의 브레인'으로 불린다. 이 회장의 아이디어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며, 대안을 제시한다. 한 관계자는 "최 부회장이 'GM(Good Morning)' 대신 'BM(But, Mr. Lee)'이라고 불릴 정도로 반대 의견을 많이 낸다"고 전했다.

현대차 정의선 회장 곁에는 장재훈 사장이 있다. 장 사장은 정 회장의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현실성을 입힌다.

"회장님 아이디어는 훌륭합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 기술로는 3년이 걸립니다. 대신 이렇게 단계적으로 접근하면 어떨까요?"

예스, 버트맨이 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첫째, 상사의 의도를 먼저 이해하라.

무작정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회장님께서 이것을 추진하시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매출 증대와 시장 선점이 목표이시죠?" 이렇게 상사의 의도를 먼저 확인하고 공감을 표현한다.

둘째,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라.

"기분이 안 좋아서" "왠지 불안해서"가 아니라 데이터와 사실에 기반한 근거를 제시한다. "작년 A사가 비슷한 시도를 했다가 이런 문제로 실패했습니다" "시장 조사 결과 고객의 70%가 부정적입니다"

셋째, 대안을 함께 제시하라.

문제만 지적하면 '불평쟁이'가 된다. "이런 문제가 있으니 하지 맙시다"가 아니라 "이런 문제가 있으니 이렇게 수정하면 어떨까요?"라고 대안을 제시한다.

넷째, 타이밍을 잘 잡아라.

공개적인 자리에서 반대하면 상사의 체면을 깎는다. 가능하면 개별 면담에서, 또는 소규모 회의에서 의견을 제시한다. 그리고 한 번 결정된 후에는 "그때 말씀드렸어야 했는데"라고 하지 않는다.

다섯째, 실행에는 전력을 다하라.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일단 결정되면 최선을 다해 실행한다. 그리고 "제가 맞았죠?"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네요"라고 인정한다.

한 스타트업 COO의 경험담이 인상적이다.

"저희 대표님이 갑자기 미국 진출하자고 했어요. 너무 성급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말했어요. '대표님, 미국 진출 자체는 좋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위험합니다. 국내 기반도 아직 약하고, 자금도 부족합니다. 대신 6개월 후 이런 조건이 갖춰지면 진출하는 게 어떨까요?' 대표님이 고민하다가 제 의견을 받아들였어요. 6개월 후 준비를 마치고 진출했는데, 성공했습니다. 만약 그때 무작정 진출했다면 망했을 거예요."

예스맨과 예스, 버트맨의 차이는 결과로 나타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예스맨이 많은 조직은 단기적으로는 화목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 잘못된 결정을 아무도 바로잡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예스, 버트맨이 많은 조직은 때로는 갈등이 있지만 더 나은 결정을 내리고 지속적으로 성장한다.

구글의 에릭 슈미트 전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은 나에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No' 뒤에는 항상 'Because'와 'Instead'가 따라온다."

No, because(이래서 안 됩니다). Instead(대신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이것이 예스, 버트맨의 공식이다.

당신은 예스맨인가, 예스, 버트맨인가?

만약 지난 1년간 상사에게 단 한 번도 "하지만"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면?

상사도 사람이다. 실수하고, 놓치고, 착각한다. 그것을 바로잡아주는 것이 진정한 팔로워의 역할이다.

물론 쉽지 않다. 한국의 수직적 문화에서 상사에게 반대 의견을 내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기억할 것은, 진정으로 상사를 위하는 길은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아니다. 상사가 성공하도록 돕는 것이다. 때로는 쓴소리를 해서라도.

조원태 회장은 그날 회의 후 박 상무를 따로 불렀고. 2년 후, 박 상무는 최연소 전무가 됐다.

예스맨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예스, 버트맨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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