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왕관을 쓰지 않는 왕
강남의 한 호텔 컨퍼런스룸에서 있었던 일이다.
국내 최대 유통기업의 전국 임원 200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신임 CEO 취임식이었다. 무대 뒤편에서 대기하던 43살의 젊은 여성 CEO는 깊은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보통 이런 자리에서 신임 CEO들은 어떻게 할까? 강력한 비전을 제시하고, 도전적인 목표를 던지며,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임원들을 압도하려 한다. "내가 이 회사를 이끌 사람이다"라는 메시지를 각인시키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무대에 올라가서 한 첫 마디는 전혀 달랐다.
"여러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 지금 무서워요."
회장석에 앉아있던 회장이 놀라서 그녀를 쳐다봤다. 임원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신임 CEO가 첫 자리에서 무섭다고 고백하다니.
그녀는 계속했다. "43살에 CEO가 됐습니다. 여기 계신 많은 분들이 저보다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으시죠. 제가 여러분보다 뛰어나서 이 자리에 선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부탁드립니다. 저를 가르쳐 주세요. 여러분의 경험과 지혜를 나눠주세요. 함께 배워가고 싶습니다."
그리고는 준비한 연설문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무대에서 내려와 임원들이 앉아있는 테이블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고 악수를 나누기 시작했다.
"김철수 전무님이시죠? 물류 쪽은 전무님이 전문가라고 들었습니다. 조만간 찾아뵙고 자세히 배우고 싶습니다."
"박영희 상무님, 얼굴이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데 괜찮으세요? 요즘 신규 매장 오픈 준비로 고생이 많으시다고 들었어요. 건강이 먼저예요."
"이민호 상무님, 작년에 제안하신 디지털 전환 프로젝트 자료 잘 봤습니다. 왜 그동안 진행이 안 됐는지 알아보고 다시 논의하면 좋겠어요."
2시간 동안 그녀는 모든 임원과 대화를 나눴다. 이름을 불러가며, 각자의 상황을 언급하며, 진심으로 경청했다.
3년이 지난 후, 이 회사는 업계 부동의 1위가 됐다. 매출은 30% 성장했고, 영업이익은 50% 늘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직원 만족도였다.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특히 임원진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
"그동안 카리스마 있는 CEO는 많이 봤습니다. 목소리 크고, 추진력 있고, 결단력 있는 분들이요. 하지만 진심으로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고, 우리를 인정해주는 CEO는 처음이었죠. 그게 더 큰 힘이 됐습니다." 당시 참석했던 한 임원의 회고다.
이것이 21세기 리더십의 모습이다. 카리스마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된다. 하지만 공감력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카리스마 리더십의 황금기, 그리고 몰락
20세기를 대표하는 경영자들을 떠올려보자.
GE의 잭 웰치는 '중성자탄 잭'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건물은 그대로 두고 사람만 날려버린다는 의미였다. 그는 매년 하위 10%의 직원을 해고하는 강압적 시스템으로 유명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새벽 3시에 임원들을 불러 회의를 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발언은 그의 카리스마를 상징하는 어록이 됐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완벽주의적 독재자였다. 직원들 앞에서 "이런 쓰레기를 만들었냐"고 소리치는 것은 일상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압도적인 카리스마였다. 그들이 방에 들어오면 공기가 바뀌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명령이었고, 반론은 허용되지 않았다.
한동안 이런 리더십은 잘 통했다. 실제로 놀라운 성과를 냈다. GE는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됐고, 삼성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으며, 애플은 혁신의 아이콘이 됐다.
그런데 왜 더 이상 통하지 않을까?
첫째, 시대가 바뀌었다. 20세기는 산업화 시대였다. 대량생산, 효율성, 표준화가 중요했다. 정답이 비교적 명확했고, 그 정답을 아는 리더가 강력하게 이끌면 됐다. 정보는 제한적이었고, 리더가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위계질서는 당연했고, 명령과 복종의 문화가 자연스러웠다.
둘째, 일의 성격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단순 반복 작업이 많았다. 창의성보다는 성실성이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지식 노동이 중심이고, 창의성과 혁신이 핵심이다. 정답이 없는 문제를 풀어야 하고, 협업과 소통이 필수다.
셋째, 사람이 바뀌었다. 특히 MZ세대는 완전히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왜?"라고 묻는다. 납득이 안 되면 움직이지 않는다.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수평적 관계를 원한다. 돈보다 의미를 추구하고, 성장보다 균형을 중시한다.
MZ세대가 바꾼 리더십 공식, 그 구체적인 모습
한 대기업 부장의 경험담이다.
"회의 시간에 신입사원이 손을 들더라고요. '부장님, 이렇게 하는 이유가 뭔가요? 이해가 안 돼서요.' 순간 당황했죠. 10년 전이었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니까요. 그때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했거든요."
그 부장은 순간 화가 났다고 한다. '요즘 것들은 버릇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신입사원의 질문이 맞았다. 관행적으로 해오던 일이었는데, 정작 왜 하는지는 설명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했어요.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같이 한번 생각해보자.' 그랬더니 오히려 신입사원이 더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더라고요. 결국 그 프로세스를 개선해서 업무 시간을 30% 단축했습니다."
MZ세대가 원하는 리더십은 명확하다.
첫째, 이유를 설명하는 리더다.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우리의 목표가 무엇인지",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까라면 까"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둘째, 실수를 인정하는 리더다. 완벽한 척하지 않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고, 틀렸으면 틀렸다고 인정하는 리더를 원한다. 인간적인 면을 보이는 것이 오히려 신뢰를 얻는다.
셋째, 함께 고민하는 리더다.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생각해?" "네 의견을 듣고 싶어" 하며 소통하는 리더를 원한다.
넷째, 성장을 지원하는 리더다. 단순히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해주는 리더를 원한다.
한 스타트업 대표의 고백이 인상적이다.
"처음엔 MZ세대 직원들이 너무 힘들었어요. 일일이 설명해야 하고, 의견 들어야 하고, 피드백 줘야 하고... 그런데 생각을 바꾸니까 오히려 좋더라고요. 그들의 질문 덕분에 저도 더 깊이 생각하게 됐고, 우리 회사가 왜 이 일을 하는지 더 명확해졌어요. 일방적으로 지시했을 때보다 성과도 더 좋아졌고요."
공감력이 만든 기적들, 그 생생한 현장
토스의 이승건 대표는 독특한 리더십으로 유명하다.
매주 금요일 오후, 전 직원이 참여할 수 있는 'Ask Me Anything' 시간을 갖는다. 익명으로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질문들이 가히 충격적이다.
"대표님, 우리 팀은 왜 다른 팀보다 연봉이 적나요?"
"화장실이 너무 더러워요. 청소 좀 제대로 해주세요."
"솔직히 경쟁사로 이직하고 싶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대표님도 회사 생활 힘드신가요?"
다른 회사였다면 이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했다가는 찍힐 것이 뻔하니까. 하지만 토스에서는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다. 더 놀라운 것은 이승건 대표의 답변이다.
"연봉 차이는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시면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 검토해보겠습니다."
"화장실 청소 주기를 늘리겠습니다. 다른 불편한 점도 알려주세요."
"이직하고 싶은 마음 이해합니다. 어떤 점 때문인지 듣고 싶어요. 우리가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노력하겠습니다."
"네, 저도 힘들 때가 많아요. 특히 여러분께 좋은 환경을 만들어드리지 못할 때 가장 힘듭니다."
한 토스 직원은 이렇게 말한다. "대표님이 완벽한 답을 주려고 하지 않아요. 그냥 진심으로 듣고, 진심으로 답해요. 때로는 '잘 모르겠다'고도 하고, '같이 고민해보자'고도 해요. 그게 오히려 믿음이 가요."
이런 소통의 결과는 숫자로 나타났다. 토스의 개발자 이직률은 업계 최저 수준이다. 직원 추천으로 입사하는 비율이 70%가 넘는다. 회사 가치는 10조 원을 돌파했다.
마켓컬리의 김슬아 대표는 또 다른 방식으로 공감력을 보여준다.
그녀는 한 달에 한 번 새벽 3시에 출근한다. 새벽 배송 직원들과 함께 일하기 위해서다. 직접 상품을 분류하고, 포장하고, 트럭에 싣는다. 때로는 직접 배송을 나가기도 한다.
"책상에서는 절대 모르는 게 있어요. 새벽에 아파트 현관 비밀번호가 안 먹힐 때의 막막함을 아세요?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20층까지 걸어 올라가야 할 때의 절망감을 아세요? 무거운 박스를 들고 있는데 고객이 문을 안 열어줄 때의 서러움을 아세요? 직접 겪어봐야 알죠."
배송 직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대표님이 우리 고충을 진짜로 아시니까 달라요. 건의하면 바로바로 개선돼요. 카트 바퀴 하나가 고장 나도 바로 교체되고, 장갑이 낡으면 바로 새 걸로 바꿔주고. 작은 것 같지만 현장에서는 그게 제일 중요하거든요."
실제로 김슬아 대표가 현장 경험을 한 후 개선된 사항들이다. 배송 차량에 온열 시트 설치, 겨울용 방한 장갑 지급, 아파트 단지별 최적 동선 지도 제작, 배송 기사 전용 휴게 공간 마련 등. 모두 현장에서 직접 일해보지 않았다면 생각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카리스마 vs 공감력, 데이터로 보는 진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가 2023년에 발표한 연구 결과가 흥미롭다. 전 세계 1000개 기업의 CEO를 대상으로 리더십 유형과 기업 성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카리스마형 리더가 이끄는 기업의 특징은 이랬다. 단기 성과는 높았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 빠른 의사결정과 강력한 추진력으로 단기간에 성과를 냈다. 하지만 장기 성과는 낮았다. 3년 이상의 장기 성과를 보면 정체되거나 하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직원 이직률은 높았다. 특히 핵심 인재의 이직이 잦았다. 혁신성은 낮았다. 직원들이 리더의 눈치를 보느라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았다. 조직 문화는 경직됐다.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문화가 형성됐다.
반면 공감형 리더가 이끄는 기업은 달랐다. 단기 성과는 보통이었다. 폭발적인 성장보다는 안정적인 성장을 보였다. 하지만 장기 성과는 높았다. 5년, 10년 장기 성과를 보면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직원 이직률은 낮았다. 특히 핵심 인재들이 오래 머물렀다. 혁신성은 높았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했다. 조직 문화는 유연했다.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문화가 형성됐다.
연구를 주도한 교수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카리스마는 단거리 달리기에 유리하고, 공감력은 마라톤에 유리합니다. 기업 경영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입니다."
국내 데이터도 비슷하다. 한국생산성본부가 2024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공감형 리더십을 도입한 기업들의 1년 후 성과는 이랬다.
A사는 매출이 23% 증가했고 이직률은 45% 감소했다. B사는 고객 만족도가 38% 상승했고 직원 몰입도는 52% 향상됐다. C사는 혁신 아이디어가 3배 증가했고 품질 불량률은 60% 감소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직원들의 코멘트였다.
"리더가 바뀌니 회사가 바뀌었어요. 출근이 즐거워졌습니다."
"내 의견이 반영되니까 더 열심히 하게 돼요."
"실수해도 혼나지 않으니 더 과감하게 도전하게 됩니다."
공감력이 오해받는 이유와 진실
"공감력이 중요하다고? 그럼 직원들이 하자는 대로 다 들어줘야 하나? 호구 되는 거 아냐?"
많은 리더들이 갖는 오해다. 공감력을 나약함으로, 우유부단함으로, 원칙 없음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이는 공감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첫째, 공감은 동의가 아니다.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과 상대방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다르다.
예를 들어보자. 직원이 "야근이 너무 힘들어서 프로젝트에서 빠지고 싶다"고 한다면?
공감 없는 대답 : "그게 무슨 소리야? 다들 힘든데 너만 빠지겠다고?"
가짜 공감 : "그래, 힘들면 빠져. 건강이 우선이지."
진짜 공감 : "정말 힘들었구나. 어떤 점이 가장 힘든지 구체적으로 말해줄래? 같이 해결 방법을 찾아보자. 프로젝트는 중요하니까 빠질 수는 없지만, 부담을 줄일 방법을 찾아보자."
둘째, 공감은 약함이 아니다. 오히려 더 강한 리더십이다.
넷플릭스는 '자비로운 해고' 문화로 유명하다. 성과가 낮은 직원을 해고할 때도 공감력을 발휘한다.
"당신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건 안다. 당신만의 강점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우리 회사가 필요로 하는 역량과는 맞지 않는 것 같다. 당신은 다른 곳에서 더 빛날 수 있을 거다. 새로운 곳을 찾는 동안 충분한 시간과 지원을 제공하겠다."
단호하지만 인간적이다. 차갑지만 따뜻하다. 이것이 진정한 공감형 리더십이다.
셋째, 공감은 우유부단이 아니다. 충분히 듣고 빠르게 결정한다.
한 중견기업 대표의 사례다. 신규 사업 진출을 두고 임원진 의견이 갈렸다. 그는 일주일 동안 모든 임원을 개별적으로 만났다. 각자의 의견을 충분히 들었다. 찬성하는 이유, 반대하는 이유를 깊이 있게 들었다.
일주일 후 그는 결정을 발표했다. "여러분의 의견을 다 들었습니다. 신중히 검토한 결과 신규 사업에 진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반대하신 분들의 우려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동의하지 않으실 수 있지만, 이해는 해주시길 바랍니다."
경청 후 결단. 이것이 공감형 리더십의 의사결정 방식이다.
한국 기업의 공감력 실험, 그 변화의 현장
삼성전자도 변하고 있다. 2020년부터 '소통하는 리더십' 교육을 대폭 강화했다.
임원 대상 '경청 스킬' 교육이 필수가 됐다.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를 배운다. 상대방의 말을 끊지 않기, 고개 끄덕이며 호응하기, 핵심을 요약해서 확인하기 등 구체적인 스킬을 훈련한다.
'칭찬 일기' 작성이 의무화됐다. 매일 부하직원 중 한 명의 장점을 찾아 기록해야 한다. 처음엔 어색해하던 임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변했다.
한 부장의 경험담이다. "처음엔 정말 어색했어요. 40년 넘게 '수고했어', '고마워' 이런 말을 안 하고 살았는데, 갑자기 하려니 입이 안 떨어지더라고요. 억지로라도 했죠. 그런데 3개월쯤 지나니까 자연스러워졌어요. 더 놀라운 건 팀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는 거예요. 회의 시간에 아이디어가 막 쏟아져 나와요. 예전엔 제가 묻기 전엔 아무도 말 안 했는데."
부하직원 피드백이 인사 평가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상사가 부하를 평가하듯, 부하도 상사를 평가한다. 그것이 승진과 보상에 영향을 미친다.
"처음엔 부담스러웠죠. 부하직원 눈치를 봐야 하나 싶었고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도움이 많이 됐어요. 제가 모르던 제 모습을 알게 됐거든요. '회의 시간에 특정 사람 의견만 듣는다', '표정이 너무 딱딱해서 말 걸기 어렵다' 이런 피드백을 받았어요. 고치려고 노력하니까 관계가 훨씬 좋아졌습니다."
SK는 '행복 경영'이라는 독특한 철학을 도입했다. 구성원의 행복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는 것이다.
매월 '행복 설문'을 실시한다. 직원들의 행복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단순히 "행복하십니까?"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묻는다. 업무 만족도, 동료와의 관계, 상사와의 관계, 성장 가능성, 일과 삶의 균형 등을 세세하게 측정한다.
행복도가 낮은 팀은 집중 지원을 받는다. 왜 행복도가 낮은지 분석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한다. 때로는 리더를 교체하기도 한다.
리더 평가에 '구성원 행복도'가 반영된다. 아무리 성과가 좋아도 팀원들이 불행하다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SK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익도 중요하지만 구성원이 불행한 조직은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행복한 직원이 좋은 성과를 내고, 좋은 성과가 회사를 성장시킵니다. 행복이 먼저입니다."
실제로 SK의 '행복 경영' 도입 이후 성과는 놀라웠다. 직원 이직률이 30% 감소했고, 생산성은 25% 향상됐다. 고객 만족도도 20% 상승했다.
공감력 기르는 구체적 방법, 오늘부터 실천하기
공감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훈련으로 기를 수 있다.
첫째, 적극적 경청을 연습하라. 경청은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다. 온 마음을 다해 듣는 것이다.
잘못된 경청의 예를 보자. "아, 그래? 그런데 나는..." 이렇게 바로 자기 이야기로 넘어가는 것. 또는 휴대폰을 보면서 "응, 응" 하고 대충 듣는 것. 아니면 상대방 말을 끊고 "그거 아니고..." 하면서 반박하는 것.
올바른 경청은 이렇다. 먼저 자세부터 바꾼다. 상대방을 향해 몸을 돌리고, 눈을 맞춘다. 휴대폰은 뒤집어 놓는다.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한다.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처럼 상대방이 더 말하고 싶게 만드는 반응을 보인다.
상대방이 말을 마치면 바로 대답하지 않는다. 3초의 침묵을 가진다. 그 침묵이 상대방에게 "당신의 말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리고 요약해서 확인한다. "그러니까 네가 힘든 이유는 업무량도 많지만, 무엇보다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 때문이라는 거지?" 이렇게 확인하면 상대방은 '이 사람이 내 말을 정말 들었구나' 하고 느낀다.
둘째, 감정 일기를 써라. 많은 리더들이 자신의 감정조차 잘 모른다. 자신의 감정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타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매일 밤 5분만 투자하면 된다. 오늘 하루 느꼈던 감정들을 적는다.
"오전 회의 때 짜증났다. 왜? 김 과장이 준비를 제대로 안 해왔기 때문이다."
"오후에 기분이 좋았다. 왜? 고객사로부터 감사 메일을 받았기 때문이다."
"퇴근할 때 우울했다. 왜? 집에 가도 혼자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처음엔 '화났다', '좋았다' 정도로 단순하게 쓸 것이다. 하지만 계속하다 보면 감정의 뉘앙스를 구분하게 된다. '화났다'가 아니라 '실망했다', '배신감을 느꼈다', '무시당한 기분이었다'처럼 구체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자신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아는 것이 공감의 시작이다. 자신의 감정을 알아야 타인의 감정도 알아차릴 수 있다.
셋째, 역지사지 훈련을 하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연습이다.
예를 들어 직원이 지각했다고 하자. 즉각적인 반응은 "또 지각이야? 시간 관념이 없네"일 것이다. 하지만 잠시 멈추고 생각해보자. '왜 지각했을까? 무슨 사정이 있었을까? 내가 저 나이였을 때는 어땠나?'
한 팀장의 경험이다. "막내 직원이 일주일에 두 번씩 지각을 했어요. 처음엔 그냥 나태한 줄 알았죠. 나중에 우연히 알게 됐는데, 새벽에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더라고요. 학자금 대출 갚느라... 그걸 알고 나니 지각이 다르게 보였어요. 근무 시간을 조정해줬더니 지각이 사라졌고, 오히려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넷째, 신체 언어를 읽는 연습을 하라. 사람들은 말로는 30%만 표현한다. 나머지 70%는 표정, 자세, 목소리 톤으로 표현한다.
팔짱을 끼고 있다면? 방어적이거나 부정적인 신호다. 몸을 뒤로 기대고 있다면? 관심이 없거나 지루하다는 신호다. 자주 시계를 본다면? 시간에 쫓기거나 빨리 끝내고 싶다는 신호다.
반대로 몸을 앞으로 숙이고 있다면? 관심이 있고 더 듣고 싶다는 신호다. 고개를 갸웃거린다면? 이해가 안 된다는 신호다. 눈을 반짝인다면? 흥미롭다는 신호다.
이런 신호들을 읽으면서 대화 방식을 조정해야 한다. 상대방이 팔짱을 끼면 "혹시 제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시나요?"라고 물어볼 수 있다. 지루해하면 "제가 너무 길게 설명했나요? 핵심만 말씀드릴게요"라고 조정할 수 있다.
다섯째, 칭찬 근육을 키워라. 한국인은 칭찬에 인색하다. 특히 리더들은 더하다. "잘하는 건 당연한 거 아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칭찬은 공감의 가장 쉬운 표현이다. 상대방의 장점을 발견하고 인정한다는 것은 그만큼 관심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
효과적인 칭찬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잘했어"보다는 "어제 프레젠테이션에서 데이터를 시각화한 방법이 정말 인상적이었어. 복잡한 내용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더라"가 훨씬 효과적이다.
즉시성도 중요하다. 일주일 후에 칭찬하면 효과가 떨어진다. 좋은 행동을 발견하면 즉시 칭찬하라.
공개적으로 하면 더 좋다. 회의 시간에,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 칭찬하면 효과가 배가된다. 단, 비판은 개별적으로 해야 한다.
공감력의 그림자, 번아웃과 경계 설정
하지만 공감력에도 어두운 면이 있다. 과도한 공감은 리더를 지치게 만든다.
한 스타트업 대표의 고백이다. "처음엔 모든 직원의 고민을 다 들어주려고 했어요. 업무 고민뿐 아니라 개인 고민까지. 새벽 2시에 '대표님, 상담 좀 해주세요'라는 메시지가 와도 다 받아줬죠. 1년쯤 지나니까 제가 먼저 쓰러지더라고요. 우울증 진단을 받았어요. 공감 피로라는 게 정말 있더라고요."
공감 피로(Empathy Fatigue)는 실제로 존재하는 현상이다. 타인의 감정을 너무 많이 흡수하면 자신의 감정 에너지가 고갈된다. 특히 공감력이 높은 리더일수록 이런 위험이 크다.
어떻게 균형을 잡을까?
첫째, 경계를 설정하라. 공감과 동정은 다르다. 공감은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고, 동정은 상대방의 감정에 빠져드는 것이다.
"당신의 어려움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당신이 해결해야 합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은 이것입니다"라고 명확히 선을 긋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시간을 정하라. 상담 시간을 무제한으로 열어두면 안 된다. "매주 금요일 오후 3-5시는 누구든 와서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 외 시간에는 긴급한 경우가 아니면 업무에 집중하겠습니다"라고 공지하라.
셋째, 자기 돌봄을 우선하라. 비행기에서 산소마스크가 떨어지면 먼저 자신에게 씌우라고 한다. 자신이 숨을 쉴 수 있어야 옆 사람도 도울 수 있다.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건강해야 팀원들도 돌볼 수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의 방법이 인상적이다. "저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7시까지는 온전히 제 시간으로 씁니다. 운동하고, 명상하고, 책 읽고. 그 시간에는 절대 휴대폰을 보지 않아요. 그렇게 제 마음의 컵을 채운 다음에 출근합니다. 그래야 하루 종일 팀원들에게 나눠줄 수 있거든요."
상황별 리더십, 현명한 전환의 기술
모든 상황에 공감력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카리스마가 필요하다.
위기 상황을 생각해보자. 회사가 망할 위기에 처했다.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이때 "여러분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함께 고민해봅시다"라고만 하면 될까? 아니다. 이때는 단호한 결단과 명확한 방향 제시가 필요하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가 그랬다. 평소 직원들을 '파트너'라고 부르며 공감형 리더십을 발휘했던 그는 위기 상황에서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지금은 생존이 걸린 순간입니다.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600개 매장을 폐쇄하고, 불필요한 비용을 모두 삭감하겠습니다. 이것은 논의 사항이 아닙니다. 결정 사항입니다."
단호했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적이었다. "이 결정으로 일자리를 잃는 파트너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최대한 지원하겠습니다. 살아남은 우리는 그들의 몫까지 열심히 해서 회사를 회복시켜야 합니다."
갈등 중재 상황도 카리스마가 필요하다. 두 팀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서로 자기 주장만 한다. 이때 "모두의 입장을 이해해요"라고만 하면 갈등은 해결되지 않는다.
"충분히 들었습니다. 이제 제가 결정하겠습니다. A팀의 의견을 70%, B팀의 의견을 30% 반영하겠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결과로 증명하겠습니다."
명확한 방향 제시가 필요할 때도 카리스마가 필요하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때, 큰 변화를 시작할 때는 강력한 메시지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제 글로벌 시장으로 나갑니다. 쉽지 않을 겁니다.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도전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습니다. 저를 믿고 따라와 주십시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전환의 기술이다. 평소에는 공감형 리더십을 발휘하되, 필요한 순간에는 카리스마를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공감형으로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
한 CEO의 표현이 적절하다. "저는 변신 로봇 같아요. 평소에는 친구 같은 CEO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장군이 되고, 비전을 제시할 때는 예언자가 되고, 갈등을 중재할 때는 재판관이 됩니다. 하지만 기본 모드는 항상 공감형입니다."
21세기 리더십의 본질
2025년 6월, 서울의 한 컨퍼런스 홀에서 '미래 리더십 포럼'이 열렸다. 국내외 유명 CEO들이 모여 리더십의 미래를 논의했다.
토론이 끝날 무렵, 사회자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한 문장으로 21세기 리더십을 정의한다면?"
답변들이 흥미로웠다.
"리더십은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명령하는 리더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공감하는 리더의 시대다."
"카리스마는 당신을 리더로 보이게 하지만, 공감력은 당신을 진정한 리더로 만든다."
"권위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만, 영향력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흐른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답변은 한 스타트업 대표의 것이었다.
"과거의 리더가 답을 주는 사람이었다면, 현재의 리더는 함께 답을 찾는 사람입니다. 과거의 리더가 앞에서 끄는 사람이었다면, 현재의 리더는 옆에서 함께 걷는 사람입니다. 과거의 리더가 완벽한 사람이었다면, 현재의 리더는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시대가 변했다. 일의 성격이 변했다. 사람들의 가치관이 변했다. 리더십도 변해야 한다.
카리스마형 리더십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시대에 맞지 않을 뿐이다. 마차가 나쁜 것이 아니라 자동차 시대에 맞지 않는 것처럼.
공감력이 만능이라는 것도 아니다. 상황에 따라 카리스마도 필요하다. 하지만 기본은 공감력이어야 한다. 공감력 위에 필요할 때 카리스마를 얹는 것이지, 카리스마 위에 공감력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다.
왕관을 쓰지 않는 왕. 그것이 21세기 리더의 모습이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따르는 리더. 명령하지 않아도 함께하고 싶게 만드는 리더. 완벽하지 않지만 진정성으로 신뢰받는 리더.
그래서 카리스마는 옵션, 공감력은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