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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키 Jan 03. 2024

죽어라 이 배추벌레야

작물의 잎에 구멍이 송송 났다면 배추벌레의 소행일 확률이 가장 높다. 잎 한장 쯤이야 하고 방치해둔다면 배추벌레는 작물 하나를 통째로 먹어치울 수 있다고 한다. 한편 애석하게도 자존감을 깎아먹는 우리 마음속 배추벌레 있다.


9명이 한 자리에 모인 어느 카페 안, 나를 제외한 8명이 모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도 다른 의미로 몹시 울고 싶었다.


학원 일은 출근이 늦기 때문에 출근 전 낮 시간에 무얼 할지 고민이었다.

낮 시간을 활용해 독서모임활동을 해볼까, 뮤지컬 동아리에 가입해 볼까 하며 오래전 졸업한 모교 홈페이지 게시판을 기웃거리던 중 '자존감 향상 프로젝트' 참여자 모집글을 보게 됐다. 젊은 대학생들에게서 에너지도 받을 수 있겠다, 전북대학교 심리학 박사님이 직접 맡아 진행하신다 하니 짜임새가 있겠지? 나들이나 다녀오자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서를 작성했다.


모임 당일, 인근 카페 미팅룸에는 박사님 한 분과 나를 포함한 참여자 8명이 자리했다. 간단한 자기소개 시간을 가지고 나서 실시한 자존감 지수 TEST. 곧 각자의 채점결과를 공유했다. 그리곤 낯 뜨거운 상황의 서막이 열렸다.


"85점입니다."

"저는 70점 나왔네요..."

"헉, 저는 105점이요. 하하"

"우와~ 100점대? 고득점이시네요!!"

"그러게요. 왜 이렇게 높게 나왔지?"

"높을수록 자존감이 높은 거예요."

"저... 저는 65점..."


이제 내 점수를 말할 차례가 왔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그렇게나 좋아하는 나, 이 순간만큼은 쉽사리 입을 뗄 수가 없었다.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 같았다.

내 점수는 무려 200점이었다. 당연하다. 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니까.

생각이라는 걸 해야 했다.

이 프로그램의 이름은? 자존감 향상 프로젝트.

나는 여기에 왜 왔나? 나들이.

그럼 다른 참여자들은 여기에 왜 왔을까?

그제야 뇌가 일을 했다. 그렇구나...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 왔겠구나.

나조차 여기에 온 나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가 원래 이렇게 생각이 짧은 사람이었나.

절대 200점이라는 점수를 말할 수 없었다. 낮은 자존감을 지니고 모인 사람들에게 뜬금없는 상처가 될 것 같았다.

다들 나를 바라보며 내 점수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나는 조심스레 양해를 구했다.

"저는 비밀로 하고 싶습니다. 이유는 묻지 마시고 양해 바랍니다."

그러곤 티 안 나게 눈알을 굴리며 눈치를 살피는데 65점을 받은 참여자가 말했다.

"에구... 그럴 수 있죠. 다 비슷비슷해요. 저는 65점인걸요."

구세주...


그 후 두 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나는 최대한 말을 아꼈다. 도망쳐 나올까 고민도 잠깐 했으나 이제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점점 이 참여자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우리는 살면서 기뻤던 일과 슬펐던 일들을 골라내 각자의 인생그래프를 그리고 그것을 발표하는 식으로 서로의 속사정을 나눴다. 따로 지침은 없었지만 다들 자신들의 낮아진 자존감에 영향을 줬던 사건들을 꺼내놓았다.

어떤 사람은 중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의 인신공격성 폭언에 크게 상처받았던 경험을, 다른 어떤 사람은 술취한 아버지의 습관적 폭력에 아버지와 떨어져 사는 지금도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음을, 또 어떤 사람은 열심히 공부해도 절대 오르지 않던 학교 성적때문에 이제는 아예 노력이라는 걸 하지 않게 됨을.

그리고 그들은 하나 둘씩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 모임을 주최한 교수님도 따라 울었다. 오직 나만 빼고 다 운다. 나도 분명 그들의 사정이 공감되고 슬펐다. 그러나 슬픔보다 당황스러움이 앞섰다. 이 자리에 나온 내 자신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나는 쭈욱 묵비권을 행사했다.


이들의 사정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오래전 어릴적에 일어났던 일이다. 그런데 기억이라는 건 세월이 지나면서 잊혀질만도 하지 않나? 아니다. 기억과 상처는 별개의 존재다. 이들의 기억은 가물가물해졌을지 몰라도 아직까지 상처는 아물지 않았고 그것이 지금의 위태로운 자존감을 만든 것이다. 자존감이 무럭무럭 형성되어야 할 어릴적 일들이라 더 그렇다. 작물도 다 자란 놈은 배추벌레의 공격에 그럭저럭 버티지만 심은지 얼마 안 된 모종이나 어린 식물들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것처럼.

'아니 과거를 이겨내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데 마음이 그렇게 약해서 어따 써?'라고 한심하게 바라볼 일도 아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유형의 자아가 있으며 내가 상대방으로 살아보지 않은 이상 그 사람의 낮은 방어력을 탓 할 수 없다.


200점 맞은 나에게도 당연히 힘들었던 과거가 있고 상처도 있다. 심리적 자학도 자책도 수도 없이 해봤다. 나는 다만 어느정도 나이를 먹고나서부터 쓸데없는 과거와 소중한 현재 사이를 차단하는 노하우를 깨달았다. 간단하다.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릴 때 '그때 그랬는데' 가 아니라 '그땐 그랬지'로 떠올리는 것.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 일들은 이제 나한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아. 와 같은 마인드컨트롤.

그때는 죽을 것 같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게 이제와서 감히 내 행복을 침범해? 와 같은 고집스러운 마인드컨트롤.

나의 마음이 건강해지리라는 기대는 내가 투자한 주식이 내일은 오를거라는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다. 나는 정말로 불행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찬 채로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마음을 얼만큼 먹느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우리 마음속 배추벌레를 그대로 살려둘 것인가.



"지옥길을 걷고 있다면 계속 걸어 나아가라. 왜 지옥에서 멈추려 하는가."
- 윈스턴 처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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