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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즁 필름 Mar 29. 2023

너와 나라는 작은 전쟁

<이니셰린의 밴시> 리뷰


그냥 안 맞는 사람이 있다. 근데 어떻게 친해졌는지 모르게 친해질 수도 있다. 우리는 이성적으로만 관계를 맺는 게 아니기 때문에 많은 부분은 감성에, 또는 상황에 가려지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것 자체가 시간낭비로 느껴지고, 다시 나로 돌아갈 수 있기를 희망할 때가 있다. 그건 자고 일어나 어느 날 아침일 수도 있고, 너무나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관계에 끝자락에서 발견해 낸 결말일 수 있다.


그런 결말을 발견했다면, 그 뒤는 어떤 이야기가 될까? 그걸 정말 영화적으로 표현해 낸 영화가 바로 <이니셰린의 밴시>이다.

이 이야기의 두 주인공인 파우릭과 콜름은 서로 너무나 다른 사람이다. 콜름은 앞으로 남을 것에, 파우릭은 지금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대화를 통해 도달할 수 있는 공통의 무엇으로부터도 한참 반대의 지점에 두 사람이 1920년대의 아일랜드의 작은 섬 이니셰린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콜름이 파우릭에게 절교를 선언했고, 그것에 당황한 파우릭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느냐 이유를 묻지만, 사실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일방적인 단절은 결국 수많은 갈등의 갈래로 뻗어나간다. 그것에 내가 느낀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우리가 겪는 모든 관계의 어려움을 끊어내고 싶을 때. 내 안에서 그 상대방을 끊어내는 방법이 떠오른다. 한없는 충돌과 생각도, 그렇다고 그전의 만남과는 달라질 것을 기대하기 어려울 때. 막다른 골목 같은 느낌일 때가 생각난다.


콜름처럼 자신의 존재가치를 현재에 두지 않는다. 앞으로 남아있을 것에 집중하기 위해 그는 어쩌면 현재의 것을 버리기로 선택한 것이다. 극단적인 방법이더라도


두 번째는 우리가 관계를 정리당할 때다. 우리는 가끔 어리둥절하게 누군가 멀어지는 경험을 한다.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하는 수많은 답을 찾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마치 길을 잘 가고 있다가 갑자기 하늘에서 돌들이 날아와 길을 막아버린 것 같은 느낌


파우릭은 현재가 중요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 현재에 갑자기 이유 없이 벽이 생겼고, 그래서 그는 자신의 현재를 지키기 위해 그 벽을 허문다. 그게 설령 상대방이 만들어낸 마음의 벽일지라도 자신의 현재가 소중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내 마음속에 두 자아다. 나의 현재의 관성과 미래의 원심력의 싸움. 현재까지의 쌓인 것들이 나임과 동시에 버리고 싶은 나이기도 하다. 그 갈등은 누구와의 갈등보다도 첨예하고, 스스로를 괴롭힌다.


미래에만 치중한 나 자신은 스스로에게 가혹할 수 있다. 극 중 콜름의 미래의 것을 위해 스스로 손가락을 자르는 선택을 하는 것처럼, 내 현재와의 이별은 스스로를 깎아서 만드는 경우가 많을 때가 있다. 스스로의 자기부정을 통해 달라지는 미래를 꿈꾸는 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너무 익숙한 풍경이다.


현재만을 살아가는 나 자신은 발전이 없을 수 있다. 극 중 파우릭이 현재의 모든 것들을 사랑한 나머지 선 없이 자신이 사랑하는 가축들을 집에 들이고, 동생이 떠나가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의 현재에 비어버린 그 무엇에 다른 많은 것들을 던져버리기도 하듯 말이다.


다정함이라는 것은 그만큼 사실 어려운 일이다. 현재에 있을 어떤 관계를 얻어내려 거짓말을 하고, 심지어 분노해 불까지 지르는 그의 행동들에서 현재의 것들을 지켜내는 것에 힘겨워, 미래가 어떨지 보지 못하는 우리가 보이기도 한다.


극 중 배경이 본토의 아일랜드 내전이라는 점. 섬에 있는 주민들은 고립된 환경 속에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모를 상태로 나온다는 점들은, 그만큼 외부의 누군가와 싸우는 것보다 안에서 싸우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타내는 것들이기도 하다.


내전은 그래서 잔인하고, 더욱 가혹하다. 스스로와 싸우는 자신은 누구에게도 다정할 수도, 솔직할 수도 없다. 내가 지금 머물 것인지, 나아갈 것인지의 고민은 스스로가 가진 가치의 희석이나 붕괴처럼 받아들일 때도 있다. 그런 고민의 순간들에 주위 누구라도 개입할 수 없기도 하다. 스스로의 안에 다른 나 자신 고민에 지쳐 오히려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을 때나 되어서야, 그때 내 안에서의 모종의 합의가 생겨난다.


손가락을 자르고, 불을 지르는 와 중에 경관에게 맞은 파우릭을 챙겨 돌아와 말없이 갈림길에서 헤어진다던가, 키우는 강아지에겐 죄가 없다며 챙기는 모습 등에서 스스로 납득할 순 없지만 스스로를 지키는 그 어떤 것이 느껴진다.


이 영화를 보며 그 전쟁 같은 순간들이 화면에 나와 이상한 힐링을 느끼게 해 준다.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군? 하면서 느낀 뜻밖의 위로 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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