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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즁 필름 Jul 04. 2022

왜 제목이 <헤어질 결심>일까?

헤어지지 못하겠는 이 영화에 대하여 #1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브런치에 글을 발행한 기억은 참.. 멀군요. 어색해서 소개하자면, 저의 본업은 개발자입니다. 영화보기를 너무 좋아하며, 또 비정기적으로 글을 토해내야지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시작은 굉장히 잘하지만, 마무리를 못하는 성격 탓에 시작했다가 중도에 멈춘 글이 참 많습니다. 이번에는 끝까지 잘 쪼개서 글을 내볼까 합니다. 그리고 이 글은 제가 개발자로 참여하고 있는 카페노노에도 같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가장 먼저 밝혀둘 것은, 이 리뷰는 제가 사랑하는 영화에 대한 가장 개인적인 감상이며, 문제시 당신 말이 맞습니다. 부디 친절한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포스터 아래로는 이 영화의 강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잠든 해준. 손가락 위에 손가락을 얹은 서래. 그리고 수갑. 하... 나참.

<헤어질 결심>이라고?


처음 박찬욱의 새로운 영화가 개봉한다는 얘길 들었을 때의 나의 반응이다. 뭐지? 그 답지 않은 제목 선정 같은데.. 그가 붙인 영화 제목들은 대부분 이것과는 달랐다. 대표작들만 봐도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박쥐> <아가씨> 등등.. 


극 중의 캐릭터의 속성을 그대로 가져온 간결한 제목. 복수라는 소재를 가져온 제목. 영화의 배경의 가장 간략한 설명의 제목. 대충 그랬다. 근데.. <헤어질 결심>이라고?


그의 6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 매우 기대도 되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불안했다. 왜 그런 마음 있지 않은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계속 잘 나갔으면 하는 마음. 뭔가 발을 헛디디면 차라리 내 발목이 부러지는 게 낫지. 왜 당신같이 잘나고 고귀한, 영향력 있는 사람이 헛디디고 그래. 하는 그런 마음.


하지만 이런 마음은 영화가 끝나자마자 화면에 나온 <헤어질 결심>이라는 이 영화의 제목과 함께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와... 이런 거라고? 6년 만에 돌아온, 우리의 배운 변태가. 이렇게 로맨틱했단 말인가? <아가씨> 때에 알아보긴 했지만, 사랑에 이렇게 진심이라니.


그래 감탄은 그만하고, 왜 이게 제목이 될 수밖에 없는지 이야기해보자.


언급한 것처럼, 박찬욱 감독의 영화 제목들은 나쁘게 말하자면 조금은 무미건조하다. 단어가 주는 느낌도 그렇고, 감성적인 마음이 들기보다는 소재나 주인공의 속성에 가깝다. 그런데 <헤어질 결심>은 이 영화 안에서 살아가는 서래와 해준에게 있는 마음이다. 영화를 만들어 낸 것은 감독이지만, 오롯하게 캐릭터가 소유하고 있는 마음. 그것도 이런 이야기의 시작점과 끝점에 있는 마음이다. 너무나 멋지고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나는 이토록 좋은 영화 제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헤어질 결심이 무엇을 뜻할까. 그건 사랑이다. 정말 너무나 역설적이게도 '헤어질 결심'으로 표현한 '사랑'이다. 보통 우리의 언어에서 헤어진다는 것은 사랑의 끝을 말할 때 사용한다. 하지만 이 영화 속 이야기에서는 사랑이 시작될 때 헤어질 결심을 한다. 그게 이 제목이 가진 대단한 점이다. 그리고 전혀 다른 뜻을 가진 것으로 생각한 사랑과 이 영화 제목은 마침내 동의어가 된다. 그리고 헤어질 결심이 다시 헤어질 결심으로 이어지고, 놀랍게도 그건 사랑이 사랑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이 제목은 너무도 놀랍고, 완벽한 제목이다.

붕괴되어 버린, 해준.

자세히 얘기해보자. 해준의 사랑은 이별통보와 함께 전해진다. 모든 단어와 표현 하나하나를 사전적으로 뜯어보면, 그 안에 사랑은 없다. 하지만 그걸 들은 서래는 그것을 사랑한다라고 너무나 당연히 이해한다.


"여자에 미쳐서.. 수사를 망쳤죠.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트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해준은 서래가 정말 남편을 죽인 진범인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헤어질 결심을 한다. 하지만 그 헤어질 결심에는 형사로서의 자신은 없다. 이미 붕괴되어버린 것이다. 그곳엔 서래를 사랑하는 해준만 남았다. 그 해준은 그녀가 훗날이라도 잡히지 않도록 폰을 아무도 못 찾게 버리라 한다. 그래. 그건 "무너지고 깨어진" 해준의 사랑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안에서 자부심 있는 형사를 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해준. 그게 그의 사랑이다.


"당신 목소리요. 나한테.. 사랑한다고 하는, 너무 좋아서, 자꾸 들었어요."
"내가 언제 사랑한다고 했어요. 언제요?"


그리고 그 녹음을 계속 들으며, 서래의 사랑이 시작된다. 그리고 너무나 역설적이게도, 그렇기에 헤어질 결심을 한다. 산에 올라가 유골을 뿌리는 해준에게 버리라던 폰을 건네주며, 다시 재수사를 하라 한다. 붕괴된 자신을 다시 찾으라 한다. 


서래는 해준이 재수사를 하리라 생각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익숙한 곳에 있는 그의 주머니 속 립밤을 꺼내어 바르고, 구취제거 캔디를 꺼내어 입속에 넣으며 키스한다. 그리고 마침내 서래는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한다. 

따지는 해준. 눈물 흘리는 서래. 이미 서래는 미결이 되기로 결심한 지 오래다.
"난 해준 씨의 미결 사건이 되고 싶어서, 이포에 갔나 봐요. 벽에 내 사진 붙여놓고, 잠도 못 자고, 오로지 내 생각만 해요"


영화를 보면 이 이어진 사건 사이에 일부러 간격을 두고 있다. 키스라는 행위로 끝이 나고, 갑자기 해준은 집으로 운전해 돌아온다. 그녀의 저 이야기는 훨씬 뒤에 나온다. 그래서 관객들은 만조 속 깊은 바다에 폰 대신 자신을 빠트리는 서래를 뒤늦게 이해하기 시작한다. 몰아치는 파도 위에 서있는 해준도 그제야 그게 이것을 뜻하는 것이구나. 알아챌 것이다.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할 때,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내 사랑이 시작됐다"


이 영화의 비극적 엔딩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서래의 사랑고백. 정말로 사랑하는 둘이었지만, 결국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 자체로 전달되지 않는다. 왜냐면 마지막 서래가 하는 말은 중국어이기 때문. 초급 회화를 공부하던 해준은, 아마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알게 될 거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영원히 미결로 남기 위해 남편을 또 죽일 결심을 한 서래였고, 그것을 알게 될 해준이지만. 둘은 서로에게 사랑한다 말하지 못한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더 아름다운 사랑이다.


서래는 <헤어질 결심>을 딱 한 번 해준에게 언급한다. 임호신(서래의 두 번째 남편)이 죽고 다시 용의자로 취조실에서 해준이 서래를 취조하면서 말이다.


"하... 왜 그런 남자랑 결혼했습니까"
"다른 남자 하고, 헤어질 결심을 하려고.. 했습니다"


처음 봤을 때의 이 장면은, 물론 당연히 서래가 임호신을 죽게 만들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해준을 잊기 위해서 만난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아마 해준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다시 볼 때 서래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알게 된다. 아 여기서 말한 이 결심은, 해준과 헤어지지만 영원히 미결로 남을 결심을 말한 것이구나. 영화가 끝난 뒤. 그리고 영화 내내 울리던 정훈희의 안개처럼. 사람들이 이포를 떠나는 이유가 되는 그 안개가 되기 위해서, 서래는 이포에 왔구나. 하고 말이다.


여러 번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이 미결로 남을 결심은 말이다. 사랑은 원래 좀 그런 면도 있다. 결정되지 않았을 때에 가장 사랑 다울 때가 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이 있는 반면, 물에 잉크가 퍼지는 것처럼 느끼는 사람도 있다. 의심받을 때 가장 사랑스러웠을 수 있다. 다 알지 못했을 때에 사랑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헤어질 결심을 했을 때, 가장 사랑하고 있을 수 있다.

이보다 더 완벽한 제목이. 어디 있겠는가?





헤어지지 못하겠는 이 영화 #2

<헤어질 결심> 연쇄 리뷰 - 이 영화는 왜 그리 웃길까?

는 7/7 (목)에 발행됩니다.  이미 발행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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