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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게 모욕감을 줬어' 심리적 갈등에 대하여

감정을 이해하면 갈등 관리가 가능하다

by 추영준

감정은 내 안에서 시작해 밖으로 드러나는 에너지다. 마치 여행을 떠나듯, 내 마음이 움직여 상대방에게까지 전해진다.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에서 ‘모욕감’이라는 단어는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모멸’이나 ‘모욕’처럼 남을 무시하거나 깎아내리는 행동과 그로 인한 감정을 설명한다. 이런 감정은 단순한 기분 상함을 넘어 분노를 폭발시키는 방아쇠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모욕감이 폭행이나 범죄의 동기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법률에서는 모욕죄, 폭행죄와 연결해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 '달콤한 인생'에 나왔던 유명한 대사를 기억한다. "너는 내게 모욕감을 줬어." 영화에서 강 사장(김영철)이 하인처럼 부리던 건달 조직의 부하 김선우(이병헌)에게 자기 분노를 억누르며 던진 말이다. 조직의 보스인 강 사장이 자기가 내린 명령을 감히 어겼다면서 화가 나서 뱉은 대목이다. 매서운 눈초리에 굳은 표정은 분노한 감정 그대로 험악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아마 그 장면이 인터넷에 화제가 되어 유행처럼 번졌던 기억이 난다. 과연 모욕감이란 어떤 감정일까 하는 궁금한 생각이 든다.



감정 또는 정서(Emotion)라는 단어는 라틴어 'Emovere'에 뿌리를 두고 있다. 어원으로 접근하면 'E(ex)+movere(move)'로 바깥으로 움직이는 에너지를 표현한다는 의미다. '움직이다. 이동하다, 교란하다, 뒤흔들다'로 풀이한다. 감정은 내 안에서 시작해 밖으로 드러나는 에너지다. 마치 여행을 떠나듯, 내 마음이 움직여 상대방에게까지 전해진다.


감정은 생존을 위한 원초적 기능이다. 뇌에서 감정을 담당하는 번연계(limbic system), 특히 편도체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작동한다. 어린아이가 위험을 느끼면 바로 울거나 도망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이성적 판단과 자기 조절을 담당하는 전전두피질(전두엽 앞부분)은 20대 중후반, 즉 25세쯤에야 완전히 발달한다. 청소년기 감정 기복이 심하고 충동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감정이란 자극부터 출발한다. 생리적 반응이라는 눈높이로 감정을 느끼는 원리를 살펴본다. 가령 귀신이 나오는 공포 영화를 보았다고 치자. 무서운 장면에서 귀신이 눈에 들어오면 뇌의 시각피질이 그 이미지를 처리하고, 곧바로 편도체가 반응해 ‘공포’라는 감정을 만든다. 도파민,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고, 심장이 뛰거나 손에 땀이 나는 등 몸이 반응한다. 결국 무서워서 소리를 지르거나, 눈을 가리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를 정리하면 ①자극 정보 입력(귀신: 눈 망막) ⇨ ② 자극 정보 가공(번연계 편도체) ⇨ ③ 감정 출력(신경전달물질: 공포) ⇨ ④ 행동 명령(근육변화:눈가림), 이렇게 단순화할 수 있다.


사람 감정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편도체(amygdala)다. 대뇌 피질 속 변연계의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편도체에서 감정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편도체는 여러 감정을 관장하는 복잡한 구조로 '감정의 관문'이라 불린다. 기쁨과 슬픔, 분노와 행복 등 다양한 감정을 관장하는 신경망이 고리처럼 번연계에 모여있다. 그래서 어떤 자극에 반응하면 자물쇠가 열리듯 이곳에서 여러 감정 반응이 일어난다. 이러한 반응에 따라서 신경전달물질이 작용한다. 기분을 좌지우지하는 도파민, 세로토닌, 옥시토신 등 호르몬 분비를 시작하면서 얼굴 근육이 변화한다. 웃거나 찌푸리는 등 표정이 바뀌고 손사래를 치거나 도망가는 등 특정한 행동 표현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은 감정을 조절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게 돕는 역할을 한다. 전전두피질은 보다 복잡한 감정 자극인 동정심이나 죄의식 등 사회적 감성까지 관여한다. 전전두피질은 자기를 인식하고, 행동을 계획하고, 불필요한 행동을 억제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전략을 수립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등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이성적 능력에 관여한다.


편도체가 감정을 관장한다면 전전두피질은 이런 감정들을 조절하면서 상호작용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불안이나 분노, 우울과 같은 불쾌한 감정을 느낄 때, 편도체와 오른쪽 전전두피질이 활성을 나타낸다. 반대로 낙천적이고 열정에 차 있고 기력이 넘치는 긍정적 감정 상태에 있을 때는 편도체와 왼쪽 전전두피질이 활기를 띤다. 즉 오른쪽 전전두피질이 활발해지면 불행과 고민이 많아지고, 왼쪽 전전두피질이 활발해지면 행복감과 열정이 넘치는 것이다. 이 두 뇌 부위가 서로 잘 협력하면 감정을 잘 다스릴 수 있지만, 균형이 깨지면 감정에 휘둘리거나 충동적으로 행동하기 쉽다.


만약 극단적으로 오른쪽 전전두피질 쪽만 활성화되면 어떨까. 우울증이나 불안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 간혹 우울증・조울증 환자에게 자살 충동이 생기는 이유가 바로 전전두피질과 편도체의 연결망이 빈약해지면서 두 기관의 상호작용에 오류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자극을 정확히 인식하기도 전에 편도체가 먼저 반응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그래서 때로는 나도 모르게 화를 내거나, 겁을 먹게 된다. 사람마다 감정에 대한 반응이 다른 이유도 편도체의 민감도와 유전적 차이 때문이다.


과거 대형 사고를 경험한 뒤 극심한 공포를 겪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자'의 경우 이성적 판단을 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진 반면 감정을 관장하는 편도체의 반응이 높게 나타나 공포감을 더욱 크게 느낀다. 편도체가 손상되면 공포영화를 봐도 겁먹지 않지만, 편도체가 발달한 사람이라면 감정이 풍부해지면서 사회적 네트워크에도 더 많은 관심을 보일 수 있다.


갈등 상황에서는 뇌의 이 두 부분이 특히 부딪힌다. 누군가에게 모욕을 당하면 편도체가 먼저 분노를 느끼고, 전전두피질이 ‘참아야 할까, 아니면 대응해야 할까?’를 고민한다. 이때 갈등이 생긴다. 심리학자 쿠르트 레빈(Kurt Lewin)은 이런 목표 사이의 갈등을 “인지적 부조화”라고 불렀다. 그는 목표의 우선순위를 정하거나, 현실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갈등을 푸는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감정 패턴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공격과 방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방어'란 무엇인가? 정신분석에서 방어란 위험들과 그에 수반하는 불쾌한 정동들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자아의 분투라고 설명한다.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억압, 투사, 합리화 같은 ‘방어 기제’를 사용해 불쾌한 감정이나 갈등을 피한다고 봤다. 하지만 이런 방어 기제를 너무 자주 쓰면 오히려 문제를 키울 수 있으니,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감정 지능 분야의 대니얼 골먼(Daniel Goleman)은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능력이 갈등 관리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화가 날 때 10초간 심호흡을 하거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연습을 권한다. 실제로 미국 UCLA의 매튜 리버먼 교수 연구에 따르면, “나 지금 화났다”처럼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뇌의 감정 중추인 편도체 활동이 줄어들고, 이성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전두피질이 더 활발해진다고 한다.


감정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다. 뇌의 깊은 곳에서 시작되어 우리 행동과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힘이다. 감정이 먼저 반응하고, 이성이 그 뒤를 따라 조절하는 뇌의 구조를 이해하면,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더 건강하게 대처할 수 있다. 갈등 상황에서는 내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며 숨 고르기와 같은 간단한 방법으로도 감정이 조절된다. 여기에 내 생각의 틀도 조금만 바꿔보는 연습이 도움이 된다. 감정의 과학을 이해하고, 그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연습이야말로 자기 돌봄과 건강한 인간관계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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