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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이나 Mar 19. 2024

if...

만약에 그때 그랬다면... 좀 달라졌을까.

신데렐라는 어려서...

옛날에 신데렐라는 아버지를 여의고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더랬다. 얼마나 울었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아무에게도 돌봄을 받지 못한 신데렐라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래도 요정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왕자님이 연 파티에 갈 수 있었다. 그녀의 예쁜 외모와 고운 마음은 왕자님의 마음에 들었고, 달콤한 시간을 보내었다. 신데렐라가 아버지를 여의고 오랜 고립에서 벗어나 빛을 본 유일한 날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급히 도망갈 수밖에 없었지만 유리구두를 놓고 가는 바람에 왕자님이 찾아내었다. 암울한 신데렐라의 삶에 환한 빛이 찾아온 순간은 읽는 사람이든, 듣는 사람이든 행복감이 젖어들게 만든다.


새로운 어머니를 맞이하다.

초등학교 2학년 초 무렵 부모님이 이혼을 하고 아빠가 새엄마를 맞아들였다. 정말 얼마 되지 않아 새엄마가 들어왔고 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새엄마와의 생활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어색했다. 하지만 그녀는 의외로 허물없이 다가왔고 나도 거부감 없이 지냈던 걸로 기억한다. 뭐... 다른 방법이 있나. 그때는 아이의 의견을 묻고 일을 결정하는 일은 드물었다. 아빠는 우리를 위해 새엄마를 들였다고 재차 이야기하고 있다. 글쎄 과연 그랬을까.


어른들의 결정에 나의 감정과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만들어졌다. 아이들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은 시절이기도 했다. 내가 5살 딸아이에게 놀이를 물어보고, 마음이 어떤지 물어보고 하는 건 부모를 보고 배운 게 아니다. 나의 생각을 물어보지 않고 그림자 취급당했던 그 시절이 기억날 때마다 서러웠기 때문에 노력한 것이다. 


그랬더라면... if

나는 어릴 때 아빠도 감당하기 어려운 말괄량이였다. 새엄마가 들어왔을 때 말썽을 부리지 않았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놀이터에서 다치는 건 일상이고 동생이 높은 곳에 떨어져 이마가 찢어지기도 했다. 온 동네 아이들과 몰려다녔다. 그렇다고 딱히 사고를 친 건 없었다. 성당 같은 조용한 곳에서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녀 동생과 함께 무릎을 꿇고 혼났던 기억은 난다. 


나의 새엄마는 신데렐라의 혹독한 계모처럼 굴지 않았다. 언제부터였더라... 아! 그래 매운 라면을 처음으로 먹고 코끼리가 먹는 물의 양을 마신 다음 날 이불에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새 엄마는 관대했다. 누구나 한번쯤 하는 실수가 아닌가. 다른 집에 가서 소금을 얻어오라고 시킨게 다였다. 


그 시절 새엄마는 발로 이불을 밟아 세탁을 했었다. 물론 집에 세탁기가 있었다. 무거운 이불솜을 감당할 수 없는 오래된 통돌이 세탁기가 말이다. 딸 둘을 혼자 돌보는 건 예나 지금이나 쉬운 일이 아니다. 나 9살 동생 6살쯤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나나 동생은 장난감 사달라고 떼쓴적이 없었다. 피곤하고 배고프다고 칭얼대지 않았다. 단지 하나는 내가 아침에 실수를 하고 난 뒤부터 동생과 내가 번갈아 아침에 실수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말썽이 반복되자 그게 불씨가 되었는지 불씨가 커지기 시작했다. 하필 그 불의 불똥은 내가 아닌 동생에게 날아갔다. 고작 6살밖에 되지 않은 동생은 벌거벗긴 채로 추운 날 집 밖에 쫓겨나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지금 내 딸아이가 6살인데 아기 같은 아이를 추운 밖에 옷도 입히지 않고 내 보낸 것이다.


이유가 뭐였냐고?? 친엄마를 만난단다.. 도대체 6살 아이가 어디서 친엄마를 만난단 말인가. 동네 시장에서 만나는 걸 봤단다. 막 1990년 초반이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6,7살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놀 수 는 있었다. 요즘이야 6살 아이가 혼자 놀러간다는 건 생각 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래도 동생은 항상 나와 동행했었다. 우리 말은 믿지도 않고 자기가 봤다고 아이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새엄마는 의심과 불신, 분노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때 우리가 밤에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육아가 힘들어 우리를 함부로 대하기 시작한 것인지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가정 안에서 폭언 폭력은 한 번의 행동이 힘들 뿐이지 그다음은 쉽다는 것이다.


참.. 좋은 습관을 만들기란 죽을 만큼 어려운데 약자를 누르려는 악한 마음은 왜 그리 빨리 커지는지... 새엄마는 자신의 자리가 사라질까 봐 두려웠던 게 아닐까. 끊임없는 의심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우리를 괴롭히는 악순환은 곧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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