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승민 Oct 19. 2023

밤마다 들려오는 소리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됐다. 분명 어느 날엔가 아버지는 전립선으로 인한 통증을 호소해 왔을 것이다. 자기 전 화장실에서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새벽에도 몇 번씩 화장실에 다녀가는 일이 잦아졌다. 수년이 지난 오늘날엔 화장실 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이 드물 정도로 일상이 되었다.


대부분의 날들은 내가 더 늦게 잠이 든다. 보통 하룻밤 사이 적에는 한두 번 많게는 서너 번씩 화장실에 오가는 그에게도 나름의 기준은 있다. 엄마가 잠든 안방 화장실을 쓰느냐, 현관과 내 방에 가까운 공용화장실을 쓰느냐. 안쪽 침실은 큰 나무에 가려져있어 꽤 어둡다. 북향이라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어두운 밤길-비록 실내이지만 잠결에 걷는 짧은 길 역시 그에겐 밤길일 것이다-을 아버지는 안경 없이 벽을 더듬어 간다는 걸 알게 됐다. 그날로 야광 테이프를 사서 복도 양옆에 놓인 책꽂이에 줄줄이 붙여놓았다. 그러자 엄마는 안방 화장실의 불을 켜놓고 잠에 들었다. 자는 동안에도 켜져 있는 불이 혹여나 엄마의 수면에 방해가 될까 봐 아버진 공용화장실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어렸을 땐 머리만 대도 잠들던 나는 점점 잠귀가 밝은 아버지를 닮아갔다. 덕분에 공용화장실에 아버지가 드나들 때마다 깨곤 했다. 잠에서 깨어났다 하여 화장실 가는 아버지에게 말을 건다거나 한 적은 없지만, 찰나의 뒤척거림이 신경 쓰였던 모양인지 아버지는 또다시 안방 화장실을 이용했다. 어느 날은 안방, 어느 날은 공용화장실로.


불이 꺼진 방 안, 침대에 누워 잠에 들기 전의 고요함 속에서 아버지의 발소리를 듣는 건 이제 익숙해졌다. 맨발로 나뭇바닥을 슥슥 걷는 그 희미한 소리가 점점 멀어지면 안방으로 향하고 있음을 짐작했다. 슥슥 거리는 소리가 가까워지면 나는 최대한 자는 척을 하기 위해 숨소리를 죽였다. 요즘 들어 인기척만 느껴도 깨다 보니 아버지의 밤 여정은 다시 안방 쪽으로 향하는 중이다.


아버지의 속을 꽤나 썩여온,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질 기미가 없을 전립선의 고통이라지만 이제 내겐 들려야 마음이 편해지는 소리가 되어버렸다. 그 소리는 이따금씩 내 방안으로도 들어온다. 미처 못 끄고 잠든 작은 스탠드 조명을 꺼주기 위해서다. 귀뚜라미 소리가 좋아 활짝 열어놓고 잔 창문을 닫아주기 위해서다. 가끔은 내 발치까지 내려가있는 이불을 살포시 올려주기 위함이다. 그 발소리가 집안 이곳저곳을 슥슥 소리 내며 오가는 동안 숨죽이고 있는 내 안의 정적이 이젠 따뜻하고 짠한 사랑으로 느껴지는 탓이다.


오늘도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한 나는 정적 속에서 수백 마리에 가까운 양을 한 마리씩 세고 있었고, 아버지는 어김없이 슥슥 소리를 내며 벌써 두 번째 화장실을 다녀온 모양이다. 계절 따라 달라지는 새소리며 저녁때면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들처럼 어김없이 들려오는 작고 희미한 발소리가 여느 밤보다 저며오길래 기록해 본다. 세 번째 발소리가 들리기 전에 어서 노트북을 닫아야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