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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Jan 02. 2024

듣는 귀와 보는 눈

1.

소리는 정보를 가지고 있어요. 드라마 <또 오해영>에 재밌는 에피소드로 나온 적이 있는데요. 동해와 서해의 파도 소리가 다르다며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동해와 서해의 파도 소리는 정말로 달라요. 해가 뜰 때의 바람과 해가 질 때의 바람 소리도 다르고, 뜨거운 물을 부을 때와 찬물을 부을 때의 소리도 다릅니다. 같은 소리라도 공간에 따라 조금씩 소리가 다르게 들리기도 하죠. 지금 여기가 어딘지, 저 사람이 어떤 감정인지 소리를 통해 알 수 있는 거예요. -북시티, 홍윤성 블루캡 실장 인터뷰 중에서- 


2.

소리의 원근감은 카메라의 거리와 기본적으로는 같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시노자키 씨에게 배운 저는 <원더풀 라이프> 이후 소리와 영상의 조립을 중시하며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40쪽)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고레에다 히로카즈-


3. 

다도를 배우러 다니고 계절이 몇 번 바뀌었다. 어느 날, 더운물을 따르고 이어 찬물을 따르는데 소리가 다르게 들렸다. 더운물은 뭉근한 소리, 찬물은 경쾌한 소리. 아, 다른 소리였구나! -영화 <일일시호일>-


어쩌다 보니 결이 비슷한 이야기들을 요 며칠 사이 모으게 되어 반가운 마음에 기록해 본다. 대부분은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넘어갈 법한 소리, 톤, 뉘앙스, 점 하나의 차이들... 일지라도 누군가는 알아차리는 걸 목도한다. 머리로 이해해야 가능한 일들이 있는 것처럼 세상엔 몸의 감각만이 할 수 있는 일들도 있다. 끝없는 훈련으로 몸이 익숙해질 때 비로소 드러나는 감각. 듣는 귀와 보는 눈은 영겁의 시간을 동반한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한없이 반복해야만 얻어낼 수 있는 감각. 그 미세한 차이를 알고도 넘어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아무도 모른다 한들 끝까지 지켜내고야 마는 고집들도 있다. 후자이고 싶은 나의 위치는 지금 어디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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