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사리를 쳐라

어쩌다 알게 된 일본

by 알로

별자리 운세를 챙겨본다. 아침밥을 먹을 때나 출근길처럼 하루를 시작할 때 찾아본다. 좋은 말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조언이 쓰여있다면 가급적 따른다. 오늘은 건강에 만전을 기여하라던가, 가급적 일찍 귀가하라는 말들이 쓰여있으니 들어서 안 좋을 것도 없다. 운세를 맹신한다면 그날 저녁 오늘의 운세가 맞아떨어졌는지 확인까지 하겠지만 그 정도까지 집착하는 수준은 아니다.


오늘은 생일. 내가 태어난 날이다. 다른 날보다 유난히 설렜던 건 사실이다. 오늘은 뭐라고 뜨려나 찾아보니 단사리를 치란다. 들어서 해가 될 게 없는 말만 쓰여있다.


일본어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말 '단사리'. 들어오는 필요 없는 것들을 끊어내고 (断), 집에 필요 없는 것들을 버리고 (捨), 물건에 집착하는 것으로부터 멀어지라는 (離) 뜻이다. 얼마 전 안 입은 옷들을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하려고 내놨으니 나름 지켜지는 중이다. 지나가다 할인하는 예쁜 옷을 봤을 때, 마음에 드는 귀걸이를 봤을 때, 무언가를 산다는 건 욕심이야! 아무리 되뇌어도 그래도 이건 좀 사두는 게 가성비상 괜찮네 싶으면 쟁여놨었다. 예전엔 주렁주렁 액세서리를 달고 다니는 걸 좋아했는데 요즘은 깔끔한 스타일을 선호한다. 원색을 즐겨 입었던 20대와는 달리 파스텔 톤 옷이 좋아졌다. 결국은 입는 옷만 입는다. 그럼에도 옛 미련을 못 버려서 쟁여둔 아이템들은 몇 년이 지나도 옷장 밖으로 한 번 나오지 못한 채 고스란히 간직되고 있는 것이다.


단사리를 몸소 체험했던 적이 있다. 머리로 생각하면서 이걸 버려야지 이건 놔둬야지 가릴 여유가 없었던 순간.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그랬다. 외출하려고 거울 앞에서 아이라인을 그리고 있었다. 몇 번의 흔들림을 감지했을 땐 지진이겠거니 넘어갔는데 기숙사 벽에서 콘크리트가 갈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무서워졌다. 아이라인 펜슬이고 거울이고 바로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아 문을 안 열었네. 다시 나와 현관문을 열어놓고 여권만 챙겼다. 혹시 물건에 맞을 수 있으니 침대에 있던 이불을 뒤집어썼다. 반만 그려진 아이라인을 한 채 책상에서 두려움에 떨었던 그 짧은 시간은 훗날 깨달음을 준다. 그렇게 사고 모았던 것들 막상 죽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면 안중에 없다는 걸.


근데 또 잊고 산다. 살다 보면 또 욕심도 생기고. 그래도 이젠 자질구레한 물건들, 사은품, 이벤트, 공짜로 생기는 물건들은 필요가 없으면 안 받고 산다. 받아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준다. 어차피 세상에 공짜란 없는 거고 다 가진다 한들 무덤까지 가져갈 수도 없는 거고. 많이 가진 걸 자랑하는 것도 참 부질없음을 느낀다. 그렇게 올 한 해도 잘 살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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