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오늘
막상 오고 나니 아, 아름답다!라는 말보다
저 많은 불빛 중에 내가 누울 곳 하나 없구나
이 많은 건물은 다 누구의 것인가 등등
내 마음과는 다른 생각들이 먼저 떠올랐지만
정말 오고 싶었던 곳이었다.
남산타워. 이제는 서울 N타워.
바뀐 지도 수년이 지났지만 익숙지 않은 이름이다.
라떼는 말이야. 남산타워 가서 사랑의 자물쇠도 걸고 영원을 맹세하고 야경을 보고 그랬는데 말이야.
요즘은 온통 중국어만 들리고 말이야. 낭만 따위 사라진 미세먼지 경고 타워 같은 느낌이지만 말이야.
여전히 남산에 오르니 기분은 좋다.
작년 한 해 종로와 을지로를 내 집 삼아 다닌 탓에
건물만 봐도 알겠다.
저 코너 돌면 그 포차가 있지
저 모퉁이에 장기 천막농성이 하나 있었지
이정표 없어도 한눈에 알아볼 만큼 어느새 눈에 익어
묘한 성취감도 일었다.
혼자였으면 절대 안 탈 케이블카도 눈 딱 감고 타봤다. 올라갈 땐 고소공포증 때문에 다리가 후들거렸는데 내려올 땐 달 보느라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냥 즐기면 되는 거였다. 몸을 맡기고 즐기는 것. 살짝 찌부된 노오랗게 뜬 달 아래 골목골목 은은한 가로등 불빛들. 어차피 영원하지 않을 순간인데 난 그동안 그 잠깐의 영광을 단 한 번도 제대로 누려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이 자리에 올라와도 되나. 내가 운 좋게 이걸 가져도 되나.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어떻게 보여질까. 운도 실력인데 나는 나에게 다가와준 행운을 매번 겸손하겠다며 주저주저했었다. 거금 7000원 준 케이블카 타고 바닥만 보며 덜덜 떠는 꼴이다. 그동안 얼마나 수많은 케이블카를 타 왔던가. 얼마나 밤하늘을 놓쳐왔던가. 언제든지 오는 기회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말이다.
사실 남산타워는 생일인 어제 오고 싶었던 곳이었다. 생일을 앞두고 하루에 한 번꼴로 뭐하고 싶냐는 남자 친구에게 "스케이트장 가고 싶어" "남산타워 가고 싶어" 번복하다 일주일 전에 정해진 코스였다. 당일날 미세먼지가 많았고 날이 추웠다. 남자 친구는 살짝 가기 싫어하는 내색을 비쳤다. 그래, 다음에 가자.
퇴근길, 하루 동안 잊고 있었던 서운함이 몰려와서 그냥 혼자라도 가자, 오늘은 가야겠다, 싶어 오게 된 남산.
춥지 않냐는 남자 친구의 카톡에 여기선 다들 팔짱이란 걸 끼는 것 같은데, 안 파는 것 같아서 살짝 춥긴 하다며 결국은 내색을 하고야 말았지만. 생각보다 나의 마음은 평온했고 기분이 좋아져 선물로 줄 열쇠고리도 하나 샀다. 행복하다. 지금 이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