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년의 서울살이를 회상하며
6년동안 머물렀던 왕십리, 그리고 그 동네가 품고 있었던 집을 떠날 채비 중이다. 새 주인을 만날 것이다. 애초에 내 것에 속하지 않은 집이었다. 그러나 온전히 내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만약 '고향'이라는 단어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처음 생긴 곳이 아니라 마음속 깊이 그리워 잊을 수 없는 곳을 뜻한다면, 내 고향은 더더욱 서울, 왕십리가 된다. 가장 많은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 내 시간의 고향은 스무 살 이후였으니, 나의 공간적 고향과 시간적 고향은 적지 않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장소는 늘 그 자리에 있으니 원한다면 나는 언제든 다시 이곳에 돌아올 수야 있겠지만, 이미 흘러간 시간은 되잡을 수 없어서 그때 그 시절 만났던 사람들과, 우리가 나누었던 철없던 이야기들은 그저 흐릿한 회상으로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순간으로 끝나버리는 것이 더 아름답다고 배운 지난날이었다. 영원하지 않은 순간들에 가치를 부여하는 연습을 했다. 그러다 보니 이곳에 머물렀던 하루는 점차 길어지곤 했는데, 뒤돌아보니 여전히 6년은 참 짧다.
어쨌거나, 이 모든 유한한 것들이 오늘의 나를 형성해냈다. 모두들 엇비슷한 패턴의 삶을 사는 이 도시에서 이곳은 나만의 작은 우주가 있다고 자랑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였다. 이 문 밖을 나서서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로 향하는 나는 도시를 구성하는 일상적 풍경에 불과했겠지만,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나는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었다.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에게 이곳은 조금 비효율적으로 살아도 된다는 용기를 준 곳이었다. 단번에 눈앞의 목적지로 향하지 않아도 괜찮음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차이를 만들어내기 위해 공부해야 함을, 공통의 의견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견고한 시선을 고집해야 함을, 멈추어 서서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함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는 믿음을 길러 준 곳이었다.
이곳은 누군가가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가 아니었고, 오히려 다른 세계로 이끌 수 있는 생명력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단지 이전의 내 무능력이 이를 체득하지 못했었으나, 순전히 이 장소의 인내심이 내가 이곳과 소통하고 있음을 깨닫도록 나를 길러내주었다. 부디 다음 주인에게도 그러한 집이 되어주기를. 아니, 부디 다음 사람도 이 집과, 이 도시가 주는 경험을 체험하고 또 다른 겹과 색채를 그려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