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한 알], 장석주 글, 유리 그림, 이야기꽃
글을 잘 쓰기 위한 100일간의 챌린지
'그림책에서 첫 문장을 빌려오다'
오늘은 [대추 한 알]에서 첫 문장을 빌려왔습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에 갔을 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사진이 있었다. 줄무늬 옷을 입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팔짱을 끼고 있는 여자 아이의 사진이었다.
흑백사진임에도 불구하고 얼굴과 팔에 얼룩덜룩 때가 묻어있어 있다는 게 뚜렷하게 보였다. 손목엔 아이의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알이 큰 손목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아이의 눈빛이 향하는 곳엔 무엇이 있었을까? 텅 빈 눈동자가 의미하는 것은 증오일까. 체념일까. 슬픔일까. 오기일까? 아이는 그동안 무엇을 보았던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던가. 당당하고 꼿꼿한 자세를 갖추기 위해 무슨 생각을 했던가.
아이의 뒤에 선 희생이 보인다. 누군가의 사랑이 보인다.
‘너는 소중해.’
‘너는 할 수 있어.’’.
‘너는 멋진 어른으로 자라날 거야.’
‘너에게 무례하게 구는 이들에게 저항하렴.’
대추 한 알이 붉어지고 둥글어지기까지의 시간을 꿰뚫어 본 시인의 눈을 빌어 사진 속 아이의 사정을 가늠해 본다. 더불어 사물의 뒷모습을 볼 수 있도록 단련된 나의 눈동자에게도 위로를 건넨다. 태풍, 천둥, 벼락을 견디고 둥글어지기 위해 깎여나갔던 살점들을 기억한다.
지평선 너머에 기척이 없더라도 모든 걸 삼켜버릴 듯 활활 타오르는 붉은 태양을 볼 수 있도록 숱한 초승달의 밤을 지나왔음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