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을 유영하는 천사들이 있다면 바로 여기에]
- 웨딩케이크
베네치아 광장에 도착한 일행은 맞은편에 있는 통일기념관을 바라봤다. 빅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의 기념관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건물은 '웨딩케이크'라는 별명이 있단다. 로마 시민들이 붙인 별명이라는데 제법 깜찍하면서도 한편으로 비아냥대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진다. 왜 비아냥대는가 보니 건물이 아름답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또 그렇게 보니 정말 웨딩케이크같이 생겼다. 가이드도 낮에 보면 별 감흥이 없을 수 있다는 말을 보탰다. 흔히들 말하는 조명빨(?)이 여기에도 적용되는 모양이었다. 사람이나 건물이나 조명은 중요한가 보다.
건물이 아름답든 말든 의미 없이 생겨난 건 없는 법이다. 비석 하나, 나무 하나에도 의미가 있건만 건물은 오죽할까. 이 건물은 이탈리아를 통일한 빅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를 기념하며 건축한 것이라 한다. 참 세상사 알 수 없는 것이다. 2000년 역사의 로마 심장 언저리에 새로운 국가 이탈리아가 들어선 것을 기념하는 건물이라니, 약간의 비약을 보태자면 국민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역시, 영원한 것은 없다.
사연이야 어찌 되었건 이 건물은 온몸으로 승리를 표현하고 있다. 가령 니케의 청동상, 네 마리의 말이 이끄는 승리의 여신, 빅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의 기마상, 이탈리아 통일 당시 전쟁에 참여했던 병사들의 청동상 등 승리를 의미하는 것들이 다채롭게 건물을 장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건물의 코린트 식 기둥과 거대한 계단들이 각종 청동상과 어우러져 웅장함도 자아냈다.
맞은편으로는 과거 베네치아 공화국의 궁전이 있었다. 이 때문에 베네치아 광장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무솔리니는 이 궁전을 본인의 집무실로 사용하기도 했다. 고대 로마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했던 그는 로마의 유적지를 발굴, 복원하는데 힘썼다. 그가 발굴 및 복원한 유적지 중에는 콜로세움도 포함되어 있었다. 무솔리니는 콜로세움을 특히 좋아했는데, 본인의 집무실에서 베란다로 나오면 콜로세움을 바로 볼 수 있도록 시원하게 길을 뚫어 황제의 거리(Via dei Fori Imperiali)라고 명명하기도 했단다. 이탈리아를 2차 세계대전에 참전시켜놓고 한편으로는 이런 업적이 있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 천사의 성
베네치아 광장에서 산탄젤로 성으로 향했다. 천사의 성(카스텔 산탄젤로, Castel Sant'Angelo)으로 불리는 이 곳의 꼭대기에는 대천사 미카엘의 동상이 우뚝하니 서 있다. 6세기에 흑사병이 창궐하자, 그레고리오 대교황의 꿈에 대천사 미카엘이 나타나 흑사병의 종말을 암시했다는 이야기를 모티브로 제작했다고 한다. '산탄젤로 성(Castel Sant'Angelo)'이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기인한 것이다.
흑사병이라고 하면 14세기에 유럽 전역을 흔들어놓은 전염병으로 유명하지만 이미 6세기에도 유럽에 창궐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6세기의 의료기술로 흑사병을 막는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한참 지난 14세기에도 별다른 치료법이 없어 유럽 전체 인구의 1/3이 줄었다 하니 그 전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답이 없는 상황 속에서 미카엘이 환영으로 보여준 암시는 누구에게나 의지가 되었을 법하다. 작금의 상황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믿음에 기대는 법이니 말이다. 그러니 여섯 차례나 다시 만들어져 성 꼭대기에서 위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성은 원래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영묘로 건설 이후 황제들의 묘지로 쓰이다가 요새로 변해 전쟁 중에 장식품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가고(혹은 약탈당하고) 현재는 전쟁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여기저기 약탈의 흔적이 있다 하더라도 건물의 원형과 그 주변 장식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성 입구인 아엘리우스 다리 위 천사들의 동상은 당장이라도 승천할 듯 생동감이 느껴졌다.
금방이라도 밤하늘을 날 듯한 이 조각상은 미켈란젤로와 함께 천재 조각가로 손꼽힌다는 베르니니의 작품이란다. 로마를 다니다 보면 베르니니 부자의 작품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에도 베르니니(피에트로 베르니니, 아버지 베르니니다.)의 성모승천 부조가 있고 스페인 광장에도 베르니니 부자가 설계한 분수대 조각이 있다.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베르니니는 아들인 '잔 로렌초 베르니니'를 말한다.
천사들의 조각 사이로 테베레 강에 넘실거리는 가로등 불빛이 천사의 성과 어우러져 운치를 더했다.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아엘리우스 다리 아래로 영롱하게 조명이 흩뿌려져 있었다. 꼭 미카엘이 성 꼭대기에서 지키고 있지 않아도 이 곳은 '천사'라는 이미지에 충실한 곳이었다. 다리 위의 천사들이 어두운 창공을 가르고 그 발아래를 찬란하게 받치는 강가의 불빛들을 보고 있노라면 현실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의 감동이 밀려드는 것이었다.
- 분수대 앞에서 로마식 농담을
일행은 서둘러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골목을 굽이굽이 지나며 아기자기한 카페와 레스토랑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일행이 도착한 곳은 큰 광장이었는데 여기가 그 유명한 나보나 광장이란다. 광장을 둘러싸고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했다. 카페테라스 한켠에서는 다들 늦은 저녁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는 베르니니의 또 다른 작품인 콰트로 피우미 분수대가 있었다. 나일 강, 갠지스 강, 다뉴브 강, 리오 강을 형상화하여 표현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각 강을 대표하는 인물들은 특이한 포즈를 취하며 오벨리스크를 받치고 있는데 한 명은 천으로 눈을 가리고 있고 다른 한 명은 금방이라도 얻어맞을 듯 손으로 무언가를 막고 있다.
베르니니의 작품을 마주하고 있는 '성 아그네스 인 아고네 성당' 때문이란다. 당시 작품의 원숙함이 절정에 달했던 베르니니의 라이벌로 보로미니라는 작가가 있었는데(말을 하다 보면 이름이 쫌 비슷하다. 베르니니, 보로미니) 그의 작품이 바로 이 성 아그네스 인 아고네 성당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거장들의 작품을 둘러싸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베르니니가 보로미니의 성당을 폄하하기 위해 자신의 분수대에 여러 가지 장치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어떤 인물은 고개가 성당을 향하고 있으나 눈을 가리고 있고 다른 인물은 성당을 외면하는 등 다양한 동작을 통해 보로미니의 성당을 디스하고 있다는 것이다.
묘하게 개연성이 있는 이 이야기는 사실 모두 허구다. 성당이 분수대보다 훨씬 이후에 지어졌으니 저 이야기들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성당-1666, 분수-1651년 완공). 두 명의 거장을 사이에 놓고 이렇게 그럴듯한 농담이라니 로마인들의 재치가 남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행선지는 트레비 분수였다. 오른손으로 동전을 쥐고 왼쪽 어깨너머로 던져서 분수 안에 들어가면 로마를 다시 온다는 이야기가 있던 그 분수였다. 동전 한 번 던져보려는 인파로 분수 앞은 북새통이었다. 내가 서있는 위치에서는 투포환 선수가 온다 해도 불가능할 거리였다. '다시 온다'는 것은 동전을 던지는 행위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의지가 정하는 것이리라 위안 삼으며 빠르게 포기했다. 켜켜이 일렁이는 물결과 그 위에 근엄하게 서있는 넵투누스의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이마저도 길게 감상하긴 어려웠다.
기나긴 야경투어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 어김없이 피곤이 몰려왔다. 오늘 하루를 '하얗게 불태웠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아테네에서 넘어와 숙소 체크인을 하고 야경투어를 떠나 이 방대한 이야기들을 줄곧 입력만 했으니 피곤할 만했다. 숙소에 들어와서는 퓨즈가 나간 듯 어떻게 잤는지 기억도 없을 정도였다. 다만, 엉뚱하게도 나는 내일 꼭 젤라또를 먹겠다고 다짐했던 것만 기억에 남았다. 로마의 첫날밤은 그렇게 젤라또를 그리워하며 깊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