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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진 Mar 27. 2017

다시, 런던 / Ep. 01

[ 쇼디치로 가는 버스는 언제오는가 ]


아주 멀리까지 가보고싶어.
- 김동률, <출발> -






세인트 폴 대성당으로 걸어가는 길



동행인



시차 덕분에 잠에 폭풍우처럼 휩싸여 어떻게 잤는지도 모르게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세인트 폴 대성당을 보러 갔다가 '아는언니'를 만나기위해 쇼디치(Shoreditch)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잠은 늘 넉넉하게, 준비는 미적대면서하는게 미덕이다. 멍한 상태로 앞 침대와 옆 침대의 여행객들과 소소한 대화로 여행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인터넷보다 더 신통할 때도 많다. 그렇게 여유로운 아침을 보내고 세인트 폴 대성당을 함께가겠다는 무계획의 앞침대 여행객과 오전 동행을 시작했다.


내가 있는 코벤트가든에서 세인트 폴 대성당까지는 거리가 제법 되는 편이었는데, 주변도 살펴볼 겸 걸어가기로 했다. 런던은 따뜻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었다. 올 해 유독 런던이 추웠다는 점은 나의 예상을 벗어나는 것이었고 심지어 내가 머무는 기간동안 런던에서 근 4년동안 내린 적이 없던 눈이 갑자기 내렸다는 것 또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날씨가 이만한데 사진에 최적화된 나의 팔랑한 옷차림은 단순히 춥겠다는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덜덜 떨면서 세인트 폴 대성당 앞에서 입구에 들어가려는 찰나, 문 앞에 붙어있는 기부판넬이 눈에 들어왔다. 입장료를 기부금으로 전환하여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문화재를 관람함에 있어 별로 아낄 생각이 없었던 나는 상관이 없었지만, 동행인의 취향은 아닌듯 했다.

런던에는 대영박물관을 비롯한 거의 모든 박물관과 미술관이 무료인데 이 많은 무료 전시를 뒤로하고 성당을 보는데 돈을 내야하다니 좀 아까운 부분도 있을 것이었다. 아쉬운대로 남는건 사진뿐이니 성당의 큐폴라가 잘 나올만한 곳으로 최적의 촬영장소를 물색해본다. 갑자기 동행인이 특정위치에서 세인트 폴 대성당을 모두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바로 세인트폴 대성당 옆 여행 인포데스크를 찾았다. 인포데스크 직원의 말로는 성당 뒤편 One New Change Shopping Center 옥상은 무료로 개방되어 있어, 누구든 올라가서 세인트 폴 대성당을 감상 할 수 있다고 했다.



원 뉴 체인지 쇼핑센터에서






세인트 폴 대성당


이래서 정보는 중요한 것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곳은 배우 전지현이 네파 브랜드 광고를 촬영한 곳으로도 유명했다. 쇼핑센터의 탁 트인 옥상에서 세인트 폴 대성당의 큐폴라를 감상하며 사진을 찍어본다. 참 대단한 곳이다. 야경처럼 화려한 불빛도 없고 청아한 파란하늘이 있는 것도 아닌데 성당의 외관 하나로 모든 풍경이 정리되는 곳, 이 쇼핑센터 근처의 현지사람들도 이런 매력에 이곳을 자주 찾는 것 같았다.


세인트 폴 대성당은 1666년 런던 대화재 이후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에 의해 35년간의 재건과정을 거쳤다. 이는 세계 최대 큐폴라를 자랑하는 성 베드로 성당에 이어 2번째의 규모라 한다. 재건과정에서 성당의 마스코트인 큐폴라(돔)는 로마 바티칸시국 내 성 베드로 대성당의 영향을 받았다. 실제로 두 개를 비교 해 보면 유사하게 생겼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큐폴라는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 외 파리의 앵발리드(Invalid, 군사학교)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성 베드로 대성당의 영향을 받은 세인트 폴 대성당은 또다시 워싱턴의 국회의사당과 파리의 판테온 건축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각 건물 별로 연결고리를 이어보는 것도 나름 흥미로운 일이다.
 
이 크고 웅장한 성당에서 단순히 미사만 올리기엔 뭔가 아쉽겠다는 생각이 들 찰나, 새로운 정보가 눈에 들어왔다. 이 성당의 지하에는 유명인들의 묘가 함께 있다는 것이었다. 영국을 대표하는 화가 터너, 피터팬의 작가 제임스 매튜 배리, 나이팅게일, 세인트 폴 대성당을 재건한 렌 등 200 여명의 유명인사가 이곳에 안치되어 있다.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둘러보는 것도 또다른 재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세인트 폴 대성당은 유명인사의 납골당 외에도 국가행사를 거행하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불독이 생각나는 윈스터 처칠의 장례식과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결혼도 이곳에서 치뤄졌다. 이런 큰 행사들과 더불어 제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공습까지도 버텨낸 세인트 폴 대성당은 오랜시간 영국 국민들의 자부심으로 자리매김 한 듯 하다.

내부에 들어가보진 않았기 때문에 몇 가지 사진으로 내부를 접할 수 밖에 없었지만 성당 내부의 장식이 호화스럽고 화려하며 모자이크의 벽화가 어우러진 모습은 아마 관람객들의 정신을 아득히 만들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가지 더, 크리스토퍼 렌이 이 건물을 지을 당시 첨탑을 원했던 교회(고딕이었던 걸까?)와 거대한 큐폴라를 반대했던 왕족들에 의해 3차 재설계 및 수정을 거듭한 후에야 이 세인트 폴 대성당을 지을 수 있었으며, 왕족과 교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마스코트인 큐폴라를 만들기 위해 교묘한 속임수를 써서 공사현장을 가림막으로 가린 뒤 현재의 큐폴라를 완성했다는 이야기는 아직 팩트체크 전인 이야기이다.





쇼디치로 가는 버스는 언제오는가



어쨌든 나와 일행은 세인트 폴 대성당을 나와 쇼디치(Shoreditch)로 넘어가기 위해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튜브(지하철이다.)로 이동할 수도 있었지만 버스를 선택한 이유는 런던에 왔으니 2층 버스를 한번 타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날도 춥고 옷은 팔랑하고 기다리는 버스 23번은 또 왜이렇게 안오는지 알 길이 없었다. 전광판에 몇 분 후 도착이라는 표시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기약없는 기다림이 계속되었다.


결국 다른 노선을 타서 쇼디치(Shoreditch) 인근에서 내려, 목적지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근데 이것도 여의치 않았다.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사람을 안태우는 것이었다. 앞에 한대는 어리버리하게 있다가 놓치고, 이후 두 대는 버스기사들의 "Finished!"라는 소리만 연신 듣고 탈 수가 없었다.(엄밀히 이야기하면 안태웠다. 교대시간이었을까..) "그럼 시작하는 녀석은 언제오냐!?" 묻고 싶었지만, 나의 짧은 영어가 그렇다시피 "Why!?" 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나의 Why에는 분노의 소울이 듬뿍 담겨있었다. 그 중 한 기사가 나의 마음을 읽었는지 다음 차는 확실히 간다고 했다. 그래서 또 믿고 기다렸다. 나의 맹목적 신뢰를 받은 다음차는 이동하는 차였고 우리는 리버풀스트리트(Liverpool Street)에서 내려 쇼디치(Shoreditch)로 이동했다. 동행과는 헤어졌고, 나는 '아는언니'를 만나기 위해 이동했다.

런던 거주자인 언니는 얼마 전 임신을 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언니는 가슴팍에 'Baby on the Board'라는 배지를 착용하고 있었다. 저 배지를 착용하고 있으면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이 산모에 대해 배려를 해주는 듯 했다. 우리나라도 핑크의자 같이 서로 무안한 아이템 대신 이런 배지를 착용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물론 한국에 이 산모배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있긴 있으나 사이즈도 매우 작고 가방에 착용하는건 보이지도 않고 하는게 문제일 뿐이다. 임산부의 날에만 나눠준다나 뭐라나.. 어쨌든 그렇다.

언니와 언니의 동생 그리고 나, 우리 셋은 Bake Bagle로 이동했다. 잘 구운 베이글에 연어, 치즈, 고기등을 끼워 파는 곳인데 아주 맛있다고 하여 한번 들러봤다. 나는 연어크림치즈를 선택했는데 쫄깃한 연어와 크림치즈, 베이글의 조합이 잘 어울렸다. 언니 말로는 별로 특별한 걸 넣는 것도 아닌데 맛있다고 했다. 나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베이글 가게는 'CASH ONLY'라는 안내문구가 눈길을 끈다. 아하, 현찰을 착착 챙기시겠다는 것이군. 이유가 궁금했지만 넘어가기로 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이렇다 할 테이블도 없었다. 모두가 다 서서 음식을 먹어야 했다. 어쩌면 불친절하기도 투박스럽기도 한 이 공간이 그렇게 낯설지는 않다. 이미 런던의 상점들을 일부 접해봤기 때문이다.  여행하며 느낀 점이지만 가끔 런던 사람들은 '물건을 팔 생각이 없는건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게 했다. 손님이 와도 나가보지 않고, 항상 그들끼리 바쁘다. 점원을 부르는건 실례가 되고 눈을 마주쳐야 주문을 받으러 온다. 런던을 여행하는 동안 답답함을 뒤로하고 눈을 부릅뜨며 나의 주문을 알리는 일은 익숙해져야 할 나만의 숙제였다. Bake Bagle도 그랬다. 장사가 잘되면 스탠드 테이블 군데군데 편의상 냅킨을 둘 법도 한데, 문 앞 작은 테이블에 딱 한 개만 두고 나갈때 알아서 집어가란 식이다. 심지어 테이블엔 의자도 없다. 알아서 빨리 먹고 가거나 테이크아웃 하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해장국보단 툴툴대는 욕쟁이할머니 해장국이 더 정겹듯, 퉁명스런 런던의 가게들은 사람을 다시 찾게하는 오묘한 매력이 있다.



사전에 현금이 필요하다.






쇼디치에서 뱅크까지



우리 일행이 돌아다닐 쇼디치(Shoreditch)는 런던의 홍대같은 곳이다. '힙스터들의 천국'이라는 별병도 있을 정도로 특이한 빈티지 샵들과 개성있는 카페들이 즐비한 곳이다. 매주 일요일에 열리는 브릭레인마켓(Brick Lane Market)은 다양하고 특색있는 패션아이템들을 구하기에 적합하다. 꼭 무언갈 구입하지 않더라도 눈으로 즐길 수 있으니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한번쯤 가볼만 하다. 쇼디치를 지나 리버풀스트리트로 내려오다보면 스피탈필즈마켓(Spitalfields Market, 다른 말로는 올드 스피탈필즈마켓)이 나온다. 내가 갔을 때는 고객의 성향을 파악하지 못한 고교생들이 물건들을 팔고 있어 딱히 살 것은 없었지만 날을 잘 잡아가면 쇼디치의 브릭레인마켓(Brick Lane Market)과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스피탈필즈마켓(Spitalfields Market)에서는 정말 '이것저것' 판다. 다양한 상점이 즐비한 이 마켓은 들어서면 음식판매대가, 더 들어가면 미니가방, 스카프, 스웨터, 인테리어 소품 등 다양한 컨셉의 상점들이 있었다.


우리는 한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런던에선 커피를 달라하면 아메리카노를 달라 하지 않는 이상 '필터커피'로 준다. (런던에서 스타벅스는 안가봤으므로 거긴 제외다.) 필터커피에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지만 이것은 언제든 마음먹으면 먹을 수 있으므로 플랫화이트로 눈을 돌린다. '플랫화이트(Flat White)'는 카푸치노도 라떼도 아닌 애매한 음료다. 에스프레소 기반으로 음료의 양이 적고 우유대비 커피의 비율이 더 높다. 이 음료가 아주 괜찮다. 왜냐하면 여행 중에는 계속 뭘 먹기때문에 라떼 한잔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는데, 플랫화이트는 그런 면에서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다. 이게 괜찮은 이유가 되는건 나뿐일지도 모른다. 오랜 고민을 거쳐 나는 엉뚱하게 페퍼민트 티를 시켰다. 커피보단 따듯한 물이 마시고 싶었다. 추웠으니까...
 
언니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뱅크(Bank)쪽으로 걸어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다이애건앨리'로 촬영되었던 레든홀마켓(Leadenhall Market)이 보인다. 영화에서처럼 붐비는 곳은 아니라서 한적하니 걷기 좋았다. 사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본게 언젠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내용이 아직 기억난다는 것 만으로도 천만다행일지 모른다. 레든홀마켓(Leadenhall Market)을 지나 뱅크로 왔다. 쇼디치-스피탈필즈마켓-레든홀마켓-뱅크로 걸어오는 긴 여정동안 두번의 티타임을 가졌지만 임산부 보호차원에서 한번의 티타임을 더 갖기로 했다. 언니가 장시간 걸음에 무리를 할 수도 있으니 세번, 네번이라도 얼마든지 필요하면 가지려고 했다. 우리가 자리잡은 곳은 Le Pain Quotidien(르 뺑 코티디앵, 레스토랑 체인이랄까.. 그렇다.)이라는 곳이었다. 이 곳은 특이하게 밥그릇에 음료를 줬다. 유럽에선 이런 동양적인 디자인이 유행인듯 했다. 인테리어 상점들에서도 동양미가 느껴지는 제품들이 종종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스피탈필즈마켓
다이애건앨리, 레든홀마켓
커피는 밥그릇에
뱅크 인근의 르 뺑 코티디엥






인생스콘



갑자기 스콘이 궁금해졌다. 런던에서만 이렇게 먹는건지 모르겠지만 런던 스콘은 조금 특이하게 생겼다. 보통 한국에서 먹었던 스콘은 삼각형의 퍽퍽하고 비스킷 같은 질감인데 런던의 스콘은 둥근 원형에 겉은 퍽퍽하게 생겨서 속은 촉촉했다. 그리고 보통은 크림치즈나 잼을 발라 먹는데 여기에선 휘핑크림과 잼의 조합으로 먹었다. 이건 흡사 서울에서는 순대를 소금에, 부산에서는 순대를 쌈장에 먹는 것만큼 충격적이었다.


맛은 더 충격적이었다. 이곳에 나의 인생스콘이 있었고나. 잘 구워진 스콘과 크림과 라즈베리 잼의 조합은 각각의 풍미를 더욱 배가시키기에 충분했다. 나중에 이 맛이 생각나 코벤트가든(Covent Garden)에 같은 Le Pain Quotidien을 찾았지만 맛은 조금 떨어졌다. 지점 별로 스콘을 굽는데 차이가 있는 듯 했다.

사실 휘핑크림보다 런던 현지인들은 클로티드크림(Clotted Cream)을 선호한다. 클로티드크림(Clotted Cream)은 저온살균을 거치지 않은 우유를 가열하여 기존 휘핑크림보다 훨씬 뻑뻑한 질감의 크림이다. 스프레드용으로 사용되는 클로티드크림(Clotted Cream)과 라즈베리 잼을 함께 먹으면 휘핑크림보다 더 진한 우유의 향과 잼이 섞여서 훨씬 맛이 좋아진다. 한국에 들어와서 이 크림을 사려고 알아보았으나 마트나 이런 곳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건 아닌 듯 했다. 런던에서는 M&S나 세인스버리(마트다.)에 가면 아마도 많이 있을 것 같다. 운명적인 스콘과의 만남 후 저녁 무렵이 되어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첫 날 치고는 여기저기 많이 다녔고 시차적응도 제대로 안되어 다소 피곤했다.



크림과 라즈베리 잼, 나의 인생스콘





                                                                                                                

런던에서 여행하는 동안 뮤지컬을 관람한 3일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6시 안에 들어와 휴식을 취하려했다. 체력도 체력이었지만 손끝 발끝이 뻗뻗해질 정도로 추운 런던의 날씨도 나의 6시 수면을 부추겼다. 숙소에서 좀 자고 있으면 어느 새 룸메이트들이 들어와 있었다. 그들과 나의 오늘의 이야기들을 주저리 늘어놓으면 하루가 기울었다. 다음 날에는 위키드를 관람해야했다. 저녁공연인데다 자막없는 오리지널 공연이므로 졸 수도 있으니 체력관리는 필수였다. 코벤트가든 근처를 한 번 돌아보고 전에 갔던 네셔널 갤러리를 다시 한번 가본 뒤 일찍 숙소에 복귀하여 쉬다가 관람을 갈 예정이었다. 관련 글은 또 올리는 걸로, 기대해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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