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팀장, 스타트업 대표로 살아남기 (20)
휴가 시즌이라 텅 빈 거리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고, 사무실 안의 공기는 에어컨을 풀로 가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눅눅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내 책상 위에는 Sunny가 정리해둔 '최종 런웨이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8월 14일. 그날이 데드라인이었다.
"대표님, 오늘 오후 2시 기술보증기금 상담입니다. 서류는 제가 다 챙겨뒀어요. 청람도서 미수금 500만 원은... 아직 감감무소식이고요."
Sunny의 목소리엔 피로가 묻어 났다. 디자인 업무가 본업인 그녀에게 이런 살얼음판 같은 자금 관리를 맡기는 내 마음도 편치 않았다. 나는 땀에 젖은 셔츠를 고쳐 입고 서류 가방을 챙겼다.
"다녀올게요. M, J. 서버랑 마케팅 지표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어 줘. 기보에서 실시간 데이터 보여달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
지하철역에서 기술보증기금(이하 기보) 지점까지 걷는 10분, 아스팔트의 열기에 숨이 턱턱 막혔다. 사실 스타트업에게 기보는 '최후의 보루'와 같다. 일반 은행은 '과거의 실적(재무제표)'을 보고 돈을 빌려주지만, 기보는 '미래의 기술 가치'를 담보로 보증서를 끊어주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당장 적자뿐인 초기 기업이 수억 원을 빌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지점 건물이 보이는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 섰을 때였다. 낡은 은색 양복을 입고 서류 가방을 든 중년 남자가 내 곁으로 슬그머니 다가왔다.
"저기, MiriBook 강진우 대표님 맞으시죠?"
초면인 남자가 내 이름을 부르자 나도 모르게 가방끈을 꽉 쥐었다. 그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XX 정책자금 컨설팅 본부장'.
"기보 들어가시는 길이죠? 거긴 담당자들 눈이 높아서 강 대표님 같은 초기 스타트업은 서류에서 다 잘라버려요. 매출도 청람도서 하나뿐이라면서요? 근데 우리랑 하면 '작업'이 좀 됩니다."
그는 내 주변을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대출 실행 금액의 10%만 수수료로 떼주세요. 우리가 기술평가서부터 매출 채권 증빙까지 깔끔하게 손봐서 'A등급' 나오게 해드립니다. 지금 8월 넘기기 힘든 거 다 아는데, 안전하게 가시죠? 우리 손 거쳐서 3억 받고 살아난 팀이 한둘이 아니에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10%의 수수료. 1억을 빌리면 1,000만 원을 떼준다는 소리다. 그 돈이면 8월의 공포에서 해방될 수 있고, M이 원하는 서버 사양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작업'은 결국 허위였다.
내가 믿고 있는 5,420명의 서평단, 그들이 남긴 진심 어린 텍스트들을 거짓의 진흙탕에 처박는 짓이었다. 무엇보다 이런 '제3자 개입'은 적발 시 향후 모든 정부 지원 사업에서 퇴출당하는 중죄였다.
"필요 없습니다. 저희 데이터는 제가 직접 증명합니다."
나는 그의 명함을 건네받지도 않고 건물 안으로 발을 들였다. 등 뒤로 "나중에 피눈물 흘리며 찾아오지나 마쇼! 젊은 친구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네!"라는 비아냥이 들렸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상담 창구에 앉은 기술평가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 사업계획서를 훑어내렸다.
"플랫폼 서비스군요. 서평단 5,000명... 지표는 좋습니다만, 재무제표가 너무 빈약하네요. 당기순손실이 이 정도면 일반 금융권 대출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기술보증을 받으러 온 겁니다. 저희 리포트의 독자 이탈 분석 알고리즘과 실제 유료 결제 전환율을 봐주십시오. 이건 단순한 리뷰 사이트가 아니라, 출판 시장의 고질적인 정보 비대칭을 해결하는 데이터 솔루션입니다. 청람도서와의 마찰도 역설적으로 저희 데이터가 너무 정확해서 생긴 일입니다."
평가사는 안경을 고쳐 쓰며 나를 빤히 쳐다봤다.
"대표님, 사실 요즘 브로커들 끼고 서류 꾸며 오는 팀이 많아요. 그런데 강 대표님 서류는... 좀 투박하네요. 실패한 수치랑 유저 이탈 구간까지 가감 없이 적어놓으셨고."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실패한 데이터도 저희 플랫폼의 자산입니다. 저는 제 미래가 아니라, 저희 플랫폼이 쌓아온 이 5,420명의 진심을 담보로 잡히고 싶습니다."
평가사의 입가에 아주 작은 미소가 번졌다. 그는 서류에 무언가를 메모하더니 고개를 들었다.
"그 투박함이 기술력만큼이나 중요하죠. 연대보증이 폐지되었다고는 하지만, 경영상 책임은 무겁습니다. 정말 이 사업에 대표님의 인생을 거신 건가요?"
"제 인생은 이미 3,000명에서 5,000명으로 넘어가는 그 밤에 다 걸었습니다. 실패를 생각했다면 브로커의 명함부터 받았을 겁니다."
한 시간 넘게 이어진 압박 면접 같은 상담이 끝났다. "현장 실사를 나가보고 최종 결정하겠습니다"라는 답변을 듣고 나오는 길, 다리가 풀려 로비 의자에 주저앉았다. 브로커의 유혹을 뿌리친 내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사무실로 돌아오자 M이 서버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형, 대출 잘 될 것 같아요? 서버 쪽 이번에 사양 안 올리면 진짜 8월 휴가 시즌 트래픽 못 버팁니다."
"노력 중이야. M, 조금만 더 버텨줘."
기보 상담을 마치고 돌아온 지 일주일, 사무실의 공기는 습한 8월의 기압만큼이나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현장 실사단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긴장감과, 당장 열흘 뒤면 다가올 급여일의 압박이 우리를 옥죄었다. 나는 매일 아침 통장 잔고와 AWS 비용 리포트를 번갈아 확인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대표님, 저 사고 좀 쳤어요. 아니, 정확히는 '대박'을 쳤는데... 감당이 안 돼요."
오전 10시, J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내 자리로 달려왔다. 그녀의 모니터에는 평소보다 10배는 가파르게 치솟은 트래픽 그래프가 그려져 있었다.
스타트업이 자금난(Death Valley)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검토해야 할 것이 '보증기금'입니다. 일반 은행 대출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기보(기술보증기금) vs 신보(신용보증기금)
ㅇ기보 (KIBO): '기술력'이 핵심입니다. 특허, 독창적인 알고리즘, R&D 능력을 중점적으로 봅니다. IT 스타트업이나 제조 혁신 기업에 유리합니다.
ㅇ신보 (KODIT): '사업성'과 '신용'이 핵심입니다. 기술력보다는 매출 성장세, 시장성, 기업의 전반적인 신용 상태를 봅니다. 유통이나 서비스 업종이 많이 찾습니다.
ㅇ공통점: 두 기관 모두 재무제표가 나쁜 초기 기업에게 '보증서'를 발급해주어,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게 해줍니다.
브로커 유혹의 위험성 (제3자 개입 금지)
정책자금 시장에는 '성공보수'를 요구하는 브로커가 많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제3자 개입 금지' 원칙을 엄격히 적용합니다. 브로커를 통해 서류를 조작하거나 청탁한 사실이 적발되면, 대출금 회수는 물론 향후 수년간 모든 정부 지원 사업 참여가 금지되는 '블랙리스트'에 오릅니다.
심사의 핵심: 기술평가와 창업자 역량
초기 기업은 숫자가 없으므로, '기술사업화 계획서'가 전부입니다. 평가사는 이 기술이 진짜인지, 그리고 창업자가 이 사업을 끝까지 완수할 의지와 역량이 있는지를 봅니다. 강 대표가 실패한 데이터까지 보여준 것이 오히려 '신뢰'라는 점수를 딴 비결입니다.
강팀장의 관점: "정책자금은 빚이 아니라, 국가가 빌려주는 '시간'이다"
강진우 대표는 오늘 브로커의 유혹을 뿌리치고 정공법을 택했습니다. 10%의 수수료는 단순한 돈이 아니라 회사의 도덕적 파산을 의미합니다. 정책자금 대출을 받을 때 꼭 기억하십시오. 이 돈은 갚아야 할 '빚'임이 분명하지만, 적절한 시기에 조달된 1억 원은 스타트업에게 6개월의 '생존 시간'을 벌어줍니다.
그 시간 동안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이자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단계인 '투자 유치'나 '정부 출연금(R&D)'을 받을 수 있는 지표를 만드는 것입니다. 강 대표가 1만 명 달성이라는 명확한 마일스톤을 세운 것처럼, 빌린 시간 안에 반드시 다음 포인트에 도달하십시오. 그것이 정책자금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