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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은 Sep 10. 2020

‘Alias Grace (일명 그레이스)’ 책 리뷰

예쁜 여자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들


* Title: Alias Grace

* Author: Margaret Atwood

* Publication: McClelland & Stewart (1996)

* Genre: Historical Fiction

* Award: Giller Prize / shortlisted for the Booker Prize

(번역본:’그레이스’/민음사)


그레이스 마크스 Grace Marks. 흥미로운 것은 그레이스 마크스는 책 제목과 다르게 가명이 아닌 주인공의 본명이다.  범행 후 미국으로 도주하면서 쓴 가명은 메리 휘트니이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 책의 모티브는 1843년 캐나다에서 발생한 실제 살인사건에서 가져왔다. 범인 제임스 맥더못은 교수형을 당했고 그레이스 마크스는 체포 당시 16세임을 감안하여 사형은 면했다. 집주인 Kinnear Montgomery과 그의 내연녀 Nancy Montgomery 두 사람이 하인들에 의해 살해된 사건에 대하여 당시 신문들은 자극적인 기사들을 쏟아냈다. 치정관계와  돈문제로 얽혀있던 제임스가 범행을 계획했고 집주인을 사랑했던 그레이스 또한 질투심에 눈이 멀어 살인을 도왔다는 기사들이었다. 실제로 그레이스는 미모가 매우 빼어났고 너무나 어렸기 때문에 더욱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작가 애트우드가 이 사건에서 주목한 점은 바로 그레이스를 바라보는 이러한 사회적 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린 여성, 그것도 빼어난 미모를 가진 여자에게 대중들이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은 둘 중 하나다.


성녀 아니면 성적으로 타락한 악녀.


그러나 그레이스가 들려주는, 즉 작가가 직조해낸 그레이스의 내면의 이야기들은 가십처럼 성적 호기심을 끌만한 것들을 찾아볼 수 없었고, 매우 평범한 그러나 하층민 여성이면 겪을 수밖에 없었던 위태롭고 강퍅한 삶뿐이었다. 북아일랜드에서 캐나다로 이민오던 배안에서 엄마를 잃었고 학대를 일삼는 아버지를 견디며 어린 동생들을 건사하는 12살 소녀 그레이스. 우연한 기회에 귀족의 집에서 하녀로 일하게 된 그레이스는 유일한 친구였던 메리 휘트니를 만나게 된다. 고된 일과 속에서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나름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중 메리에게 불행한 일이 벌어진다. 그 뒤로부터 그레이스의 삶 또한 메리가의 겪었던 그 위태로움으로부터 그다지 멀리 있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그녀가 마지막으로 일했던 그 집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터지고야 만다. 사형은 면했지만 그레이스의 감옥생활은 끔찍했다. 감옥보다 더 끔찍한 건 정신병동이었다. 시설은 열악했고 환자들은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다. 여자 수감원들의 처지는 더욱 끔찍했다. 정신과 의사 사이먼이 찾아온 것은 그레이스가 수감된 지 16년째 되던 해였는데 그레이스는 이미 30대를 넘긴 성숙한 여인이 되어 있었다. 사이먼은 정신과 치료를 통해 그레이스가 겪었던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자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그레이스가 얼마나 불합리한 재판 과정을 겪었는지 알게 되고, 정신과 상담을 통해 그레이스가 지금까지 차마 말하지 못한 것들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그녀의 마음이 사이먼에게만은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사이먼의 정신분석학적 분석들, 죄수들의 복지를 개선하려는 진보적인 지식인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레이스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  역시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듯하다.   소설에서는 퀼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레이스는 바느질에 능숙했기 때문에 수감 중에도 교도소장의 딸을 위한 퀼트를 만드는 임무를 받는다. 소설의 마지막에 그레이스는 고백하듯 자신이 만들고 싶은 퀼트의 제목을 말한다. ‘천국의 나무 Tree of Paradise’ 삼각형 모양의 나무에 넣고 싶은 것 세 가지를 설명할 때 그레이스는 자신을 포함하여 두 사람을 언급한다. 유일한 친구였던 메리, 그리고 낸시. 각자에게 의미 있는 물건들로 꾸미겠다고 다짐한다. ‘But three of the triangles in my Tree will be different. One will be white, from the petticoat I still have that was Mary Whitney’s; one will be faded yellowish, from the prison nightdress I begged as a keepsake when I left there. And the third will be a pale cotton, a pink and white floral, cut from the dress of Nancy’s that she had on the first day I was at Mr. Kinnear’s, and that I wore on the ferry to Lewiston, when I was running away.

I will embroider

around each one of them

with red feather-stitching,

to blend them in

as a part of the pattern.’

소박하고 평범한 삶을 바랐던 젊은 여성들. 그들을 그토록 비참한 삶으로 내몰았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레이스는 그들의 삶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걸 느낀다. 서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면 살아남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고도 느끼는 게 아닐까. 애트우드의 다른 책들, ‘The Handmaid’s Tale’이나 ‘The Testaments’ 등을 읽으면서 같은 생각이 들곤 했는데,

그녀의 책들이 노골적으로 여성의 지위에 대해 다루거나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 읽고나면 한동안 여성 문제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 같다. 1800년대 캐나다에서 살았던 하녀의 이야기는 조각천을 이어서 직조해낸 퀼트처럼 21세기를 사는 여성의 삶과 연결되어 있고 어쩌면 미래의 여성들과도 이어져 있기에 현재의 우리들은 여전히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끊임없이 고민하고 깊이 들여다봐야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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