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종은 May 21. 2020

황홀한 죽음의 색: 흰색

윤대녕의 '천지간(天地間)' 을 읽고

이 단편소설은 1996년 4월 『문학동네』에 실렸고 그해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여자를 본 것은 오후 세 시쯤이 되어 광주 종합터미널에 도착해서였다. 보았다, 라는 말은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버스에서 내려 나는 택시승강장으로 가던 길이었는데,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가다 툭 하고 서로 어깨가 부딪쳤던 것이다.
좀 세게 부딪쳤던 것 같기도 하다.
순간 여자의 몸이 휘청하니 흔들렸고
 어어 아!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귓전에 날아와 박혔다.'


주인공은 검은 양복, 검은 넥타이, 검은 구두까지 갖추고 서눌에서 광주로 외숙모 문상을 가는 길이었다. 그러나 광주 종합터미널에서 우연히 스친 여인을 따라 자신도 모르게 완도까지 내려가가 된다.


‘어쩌면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일인지도 모른다. 슬픔이 슬픔을 알아보고 사랑이 사랑을 알아보듯 죽음 또한 죽음과 만나면 별 수 없이 서로를 알아보게 마련인가보다. 하여 길을 가다보면 예기치 않은 일로 행로가 바뀌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이제 알겠다. 하지만 지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는 아무도 모르고 있다. 물론 나 자신마저도.’


완도까지 가는 버스 안에서 주인공은 아홉 살 무렵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사건을 떠올린다. 대합을 잡으러 민물과 바닷물이 겹치는 곳에서 잠수를 했는데 거센 물살의 힘에 버티지 못하고 휩쓸려버리고 만다. 허우적대며 떠내려가는 동안 그는 각양각색의 색들을 본다.


‘삶과 죽음이 벌거벗은 남녀처럼 엎치락뒤치락하는 가운데 마침내 날숨이 코까지 올라왔고 이어 실크 커튼처럼 부드러운 비치 내 손과 발을 조여묶기 시작했다. 짙은 푸른빛이었던 실크 커튼은 점점 보랏빛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보랏빛이 흰빛으로 바뀔 즈음 나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주인공은 왜 여자를 따라가고 있을까. 작가는 설명대신 죽음의 고비를 넘었던 주인공의 과거 경험들을 들려준다. 주인공은 죽음의 순간 마주했던 색, ‘흰빛’을 생각한다. 이후 우연히 박물관에서 조선백자를 마주한 주인공은 흰색의 황홀감에 빠진다. 완도로 오는 길에 눈이 계속 내렸다. 여자는 버스에서 내린 후 인가도 없는 산 아랫길을 따라 한없이 걷기만 했다. 주인공 또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여자를 따라간다.


‘아무튼 무려 한 시간 반을 걸어 정도리에 도착했을 때는 서서히 눈도 그치고 있었다. 나는 몇 시간 만에 서른두 해를 몽땅 다시 산 기분이었다.’


주인공은 여자를 따라 작은 횟집 겸 여관에서 투숙을 한다. 신비로운 분위기의 여관주인 남자는 주인공과 여자에게 나란히 붙은 방을 배정한다. 그리고 주인공에게 여자를 지켜보라는 은근한 신호를 보낸다. 여관주인 또한 여자에게서 죽음의 그림자를 본 것일까. 여관주인은 모든 상황을 이해하는 것 같은 말과 행동으로 교묘하게 주인공을 여자 옆에 붙들어놓는다. 그는 눈이 녹기 전에 동백꽃을 보라고 주인공에게 말한다. 눈 속에 피어 있는 동백이 진짜라면서. 주인공은 자의반 타의반 혹시라도 여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나 않을까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옆방의 동태를 계속 살피며 완도의 바닷가 여관에서 머물게된다.


주인공이 여자에게 드리워진 죽음을 감지하고 그것을 막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왜 그는 여자를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을까. 여자가 주인공을 경계하거나 혐오스럽게 바라보지 않고 그가 주변에 머물도록 했는데 어째서 그 이유를 왜 묻지 못했을까. 소설은 투명하게 인물들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은 채 금방이라도 불행이 닥칠 것 같은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이어간다.


살다보면 어떤 사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인생에 관여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마포대교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을 목격한 택시기사가 차를 멈추고 실랑이 끝에 자살을 막는 그런 경우처럼. 택시기사는 그가 왜 죽으려 하는지, 얼마나 괴로운 삶을 살아왔는지 모르지만 차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으리라. 남자도 비슷한 심정이 아니었을까. 그 여자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모른 척 할 수 없는 심정. 결국 남의 일이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고 푸념하던 그날 밤, 주인공은 벽 너머로 여자가 밤새 흐느껴 우는 소리를 듣는다. 차마 외면할 수 없도록 절박하게 도움을 구하는 소리였으리라.


이름도 모르고 ‘어디서 온 여자인지 무얼 하는 여자인지도’ 모르지만 주인공은 황홀한 흰색에 홀리듯 여자를 따라와 그녀가 가장 연약했던 한 순간을 함께 보낸다. 여자의 노란 트렌치코트가 주인공의 머리에 잔상을 남겼던 것처럼 목숨은 쉽사리 스러지지 않고 펄럭펄럭 생명을 이어간다. 소설은 주인공과 묘령의 여인 사이의 우연한 인연을 검은 상복과 조선 백자, 흰 눈과 동백꽃이라는 색의 대비를 배경으로 훌륭하게 이끌어간다. 그들이 그렇게밖에 할 수 없으리라는 공감을 끌어내는 작가의 능력이 정말 탁월했다. 나 또한 그들의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정처 없이 헤매다 돌아온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살았달 수도 없고 죽었달 수도 없이’ 접시에 놓인 감성돔의 살점을 보면서 주인공이 그 ‘흰색’을 떠올리는 장면은 과연 압권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