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 '디디의 우산'
상식이란 '사유의 무능'에 가깝다고 이 책의 주인공은 정의했다. 생각 없이 굳어져버린 믿음, 혹은 습관을 말할 뿐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실. 이를테면 결혼은 남녀가 하는 것 같은.
그러니까 상식 같은 건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다 안다고 생각하니까.
점자의 반대말로 '묵자墨字'라는 말이 있지만
'한 번도 그 말을 들어본 적 없고 본 적 없으며 말해본 적이 없는 이유에 대해'
주인공은 생각한다.
우리는 그것을 말할 필요가 없었다
'보는 이는 보지 못하는 이를 보지 못한다. 보지 못하는 이가 왜 거기 있는가? 그는 고려되지 않는다.'
주인공이 대학생이던 1996년, 연세대 시위대에서 고등학교 친구 서수경과 마주친다. 그리고 현재까지 함께 산다. 자신들의 관계를 궁금해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잘 설명하지 못한다. 진실을 말하면 상식에서 벗어나니까. 그냥 친구라고 말한다.
'디디의 우산'에는 두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첫 번째 작품 'd'는 2012년에 발표한 '디디의 우산'을 2014년 가을에 다시 쓴 작품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주인공 d가 나온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깊은 상실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세상은 앞으로 전진하는데 그는 진공 속에서 부유한다.
두 번째 작품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에서는 2017년 탄핵선고가 있던 날을 얘기한다. 사람들이 혁명이라고 말하는 그날.
작가는 묻는다. 혁명은 완성되었는가. 질문을 던지고 책은 마무리된다.
두 개의 소설을 묶어 '디디의 우산'이란 제목으로 2019년 1월에 출간되었다. 소설가 50인이 선정한 2019년 최고의 책이 되었다.
황정은은 작가의 말에서 '빚을 갚은 심정으로 'd'를 쓰고,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를 썼다고 말했다.
여기까지 걷는데
사 년 하고도 반년이 걸렸는데
세상은 변한 것처럼도 보이고
변하지 않은 것처럼도 보인다
내가 소설을 다시 읽은 지금
상식이라고 묻어버린 생각이나 행동들이 얼마나 몰상식했는지를 말하는 세상이 되었다. 미투 운동처럼.
단단한 세계를 깨뜨리는 것은 아주 작은 씨앗이라고 생각한다. 2017년 3월 탄핵을 함께 보았던 우리 모두는 그 씨앗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아닐까.
그 씨앗을 소중하게 키워가는 것 또한 우리들의 몫일 것이다.
우리가 겪었던 상처와 분노가 단단했던 상식의 세계를 깨뜨리고 틈을 벌려주었던 것처럼 황정은의 책을 읽고 더 많은 사람들이 부당한 것에 대해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본다.
작품 속에서 인용된 바르트의 말처럼
다음을 살아갈 누군가가 우리의 말과 생각을 '먼저 존재했던 삶의 형태'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