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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은 Nov 27. 2019

다시 쓴 ‘로빈슨 크루소’

The Sign of the Beaver

* 제목: The Sign of the Beaver

* 작가: Elisabeth George Speare

* 출간일: 1983년

* Lexile: 770L (Gr. 4-7)

* 번역서: 비버족의 표식



인디언은 표식을 만들어.
길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항상 표식을 만들지.
매트도 그렇게 해야 해.
숲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그제야 매트는 아틴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아틴은 숲을 걷는 동안 자신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나뭇가지를 부러뜨리거나

발끝으로 돌멩이를 슬쩍 밀어 넣었다.

아틴은 세심하게 숲길 위에 표식을 남겨놓고 있었다.

칼로 나무에 새기는 매트의 아버지의 방법은

사냥꾼들에게 비버의 위치를 노출시키기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아틴에게는 인디언만의 방식이 있었다.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매트에게 백인의 언어를 배우러 왔다. 그러나 아티는 오히려 매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매트는 자신을 ‘로빈손 크루소‘로, 아틴을 프라이데이라고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주인과 노예 관계가 아니었다. 늘 앞장서서 매트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 아틴을 노예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It was the brown savage
who strode ahead, leading the way,
knowing just what to do and
doing it quickly and skillfully.


하지만 아틴으로부터 존경을 얻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He wanted Attean to look at him
without that gleam of amusement
 in his eyes.
He wished that it were possible
 for him to win Attean’s respect.


총 대신 덫을 놓아 사냥하는 법, 활과 화살을 만드는 법 등등 아틴으로부터 인디언의 지혜를 배운다. 매트는 아틴에 대한 우월감이나 불필요한 자존심 대신 깊은 우정을 쌓아간다.



1719년에 나온 ‘로빈슨 크루소’가 백인 우월주의라는 한계를 벗어났다면 이런 소설로 거듭나지 않았을까. 엘리자베스 조지 스피어는 로빈슨 크루소‘라는 작품을 좋아했지만 주인공과 원주민이 주종관계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믿었으리라.


나는 두 인물이 서로를 존중하면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는 없을까 하는 작가의 고민과 상상이 이 소설을 쓰게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13세 소년 매트가 가지고 있을 백인의 시선을 서서히 거둬들이고, 그 마음속에 인디언들에게 대한 존중과 사랑을 쌓아가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두 소년이 함께 한 시간과 같은 평화로운 공존하는 시대는 영영 오지 못했다는 것을.


땅은 공기와 같은 것. 소유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믿는 인디언들. 하지만 매트에게 오두막 주변의 땅은 분명 아버지가 돈을 지불하고 산 것이다. 매트는 아틴에게 그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 둘의 우정은 서로에게 서로의 삶을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다. 각자의 운명을 담대하게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두 소년을 통해 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How one man own ground?"

Attean questioned.

"Well, my father owns it now. he bought it."

How can man own land?
Land same as air.
Land for all people to live on.
For beaver and deer.
Does deer own land?



다 읽고 난 후 책을 훑어보니 밑줄 그은 부분이 정말 많았다. 그만큼 좋은 문장이 많았다.


챕터마다 긴장감 넘치는 에피소드가 이어졌고 감동이 뒤따랐다. 작가는 아틴을 비롯한 인디언들의 대화를 인디언의 언어로 기록했다. 짐작컨대 작품을 위해서 작가가 직접 인디언말을 조금이나마 배우지 않았을까. 또한 인디언들이 무엇을 먹었고, 집안 구조는 어땠으며, 어린아이들은 어떤 놀이를 했는지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작가의 인디언 문화에 관심과 애정이 느껴졌다.


나는 문득 아주 오래전에 봤던 영화가 떠올랐다.

‘늑대와 춤을’

그 영화에서는 백인 남자가 인디언 부족을 따라 떠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이 소설의 결말이 더 멋지다고 생각했다. 매트가 보여준 행동은 그보다 몇 배의 용기가 더 필요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매트를 주인공으로 하여 엘리자베스 조지 스피어가 다시 쓴 ‘로빈슨 크루소’는 정말 근사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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