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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은 Nov 18. 2019

아는 것이 힘이다

The Testaments by  Margaret Atwood


The Testments(증언들)은 Handmaid’s Tale(1985)의 후속편이다. 전편이 나온 지 35년만이다. 나는 올 여름 Handmaid’s Tale(시녀이야기)을 읽었다. 다 읽을 즈음 후편이 나온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기뻤다. 마지막 장면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들을 따라 집을 나서는 오브프레드의 미래가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전편에 비해 수월하게 잘 읽혔다. 등장인물들의 생각이나 감정이 쉽게 이해되었고 그들의 상황이 머릿속에 잘 그려졌다. 잘 읽혔던 이유 중 하나로는 사건을 중심으로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 덕분이 아닐까한다. 전편이 Offred 오브프레드의 내밀하고 억압된 심리묘사가 많았다면 이 작품에서는 다양한 사건 사고들이 펼쳐졌고 마치 추리소설을 읽듯이 숨어있는 단서들을 찾는 재미가 있었다.  Aunt Lydia, Agnes, Daisy(Jade) 이 세 명의 화자가 각자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차츰 그 인물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과정이 흥미로왔다.


잘 읽혔던 두 번째 이유로는 영어 어휘나 문장 구조가 좀 더 쉬웠던 이유도 있었던 것 같다. 화자 중 2명은 십대 여자이다. 길리어드에서 여자가 문자를 배우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Agnes가 높은 수준의 언어 구사력을 갖지 못할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또 다른 십대 소녀 Daisy - Jade(길리아드에서의 이름) 또한 청소년 특유의 거칠고 투박한 말투를 가졌다. 전직 판사 출신이자 길리어드의 설립자인 Aunt Lydia의 언어와는 사뭇 다른 결을 보여주고 있다. Aunt Lydia의 증언 문장들은 고색창연한 어휘들, 문어체적 표현들이 넘쳐났으나 단순한 어휘의 문제일 뿐 그녀가 보여주는 세계를 상상하는 데는 문제가 거의 없었다.


가독성이 좋았던 또 다른 이유는 작품의 세계관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편이 그리는 세계에서는 출구가 없어 보였다. 기존 정부를 전복시키고 들어선 길리어드는 총과 무력으로 지탱되는 세계다. 그 힘에 대항하는 자는 잔혹하게 죽임을 당한다. 자비란 없다. 더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현재의 끔찍한 삶을 감내는 사람들. 그것이 전편에서 시녀 Offred 오브프레드가 사는 세계였다. 자살도 허용되지 않는 닫힌 사회.

반면 후편에서는 그 견고한 세계에 미세한 균열이 보인다. 사실 전편에서 최고 권력자들의 부패한 모습이 나온다. 청교도적 교리가 길리어드적 삶의 원칙이나 권력자들이 그 원칙을 무시하더라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 무소불위의 권력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사회의 기본 원칙을 스스로 깨뜨리고 있었다. 그것이 균열의 시작이라는 것을 모른 채.

출구가 막힌 세계의 Offred 오브프레드의 시선과 작은 균열의 목격자들로서의 세 사람의 시선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시선이 작품의 문체를 바꿔놓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The Testaments는 맨부커상 수상작은 너무 철학적이어서 읽기 어려울 거라는 편견을 시원하게 깨 주는 작품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사건 전개와 살아 숨 쉬는 듯한 인물 묘사가 정말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Aunt Lydia가 길리어드 세계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겪었던 끔찍한 수모와 고통의 장면들은 너무나 생생하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리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을 작가는 너무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자신의 용변을 처리할 수 없는 환경, 굶주림, 빛도 없는 독방에 갇힌 채 시간을 견뎌야 하는 괴로움 등등. 이 과정을 거치고 난 후 Aunt Lydia는 열렬한 길리어드 신념의 실천가로 변신한다. 그리고 Ardua Hall의 가장 상층부 핵심 권력자의 지위를 누린다.


Aunt Lydia는 자신의 권력이 기록에서 나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말한다. 지식은 힘이다. 신뢰할 수 없는 지식일수록 더욱 그렇다.

Knowledge is power, especially
discreditable knowledge.
I am not the first person to have
recognized this, or to have
capitalized on it when possible:
every intelligence agency in the world
has always known it.


Aunt 계급이 모인  Ardua Hall의 심장부에는 아카이브가 있다. 아카이브 안에는 Aunt Lydia 자신만의 개인 서고가 있다. 거기에는 제인 에어, 안나 카레니나, 잃어버린 낙원과 같은 금서를 모아놓은 구역이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비밀 파일들이 보관된 곳이다. 거기에는 길리어드의 비밀스러운 역사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오랜 시간 꼼꼼하게 축적한 기록들. 이것이 길리어드 사회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가 이 소설의 백미라 하겠다.

(이미지출처: theguardian.com)


후속 작품을 이만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었나 싶다. 전편의 오브프레드가 아닌 전혀 새로운 인물들의 세계를 보여준 것도 좋았던 것 같다. 작가는 길리어드에 균열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 균열을 기록하는 과정, 또한 그 기록이 어떻게 강력한 힘을 갖게 되는가를 보여주고자 했다. 여성을 가장 낮은 위치로 추락시켰던 그 세계가 어떻게 몰락하는가를 목격하는 것은 짜릿했다. 강력 추천하고 싶다.


(상단 이미지출처: Penguin Random House Canada Home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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