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녀이야기 by M. Atwood
기존 정부를 전복하고 들어선 ‘길리어드‘는 17세기식 청교도적 독트린을 가진 사회다. 환경 오염으로 인구가 급감했고 여성의 출산능력은 사회에 주요한 기능이 된다. 여성의 신체는 오직 생식 기능으로서만 의미를 가진다. ‘국가적 자원’으로서 충실히 자기 역할을 다해야 한다. 여성은 직업은 물론 자기 명의의 자산도 가질 수 없다. 반드시 남자에게 위임해야 한다. 글을 읽어서도 안된다. 여자에게 복잡한 사고 따위는 필요없다.
임신 가능한 여성들은 시녀 Handmaid 라는 계급이 되어 사령관의 가정에 배치된다. 2년간 한 집에 머무르며 사령관의 아이를 생산한다. 그들은 오직 빨간 옷을 입는다. 빨간색은 출산을 의미한다.
시녀가 입는 옷을 ‘의복 Habits’라고 부른다. 마치 습관처럼 시녀와 한 몸이 되어 늘 함께 한다. 습관은 한번 생기면 깨기 어려운 것. 시녀는 자신의 유니폼에 맞는 적절한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눈(Eye)이 모든 시간과 공간을 관찰한다. 의심받을 수 있는 말은 자제한다. 하녀들은 사람들과 되도록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여성의 기능 하나만을 위해 사는 삶. 주인공 오프레드는 탈출을 꿈꾼다. 죽음이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죽음마저도 자유 의지로 선택할 수 없다. 자살 도구가 될 만한 것들은 모두 제거된 환경에 둘러싸여 있으니 말이다.
참으로 기괴한 세상이다. 책을 읽는 내내 숨을 죽였고 왠지 나도 속삭여야 할 것만 같았다. 마치 어깨에 큰 짐을 얹고 있고 것 같은 갑갑함이 느껴졌다. 극도로 통제된 청교도 사회.
흔히 이 소설을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설명하곤 한다. 작가는 서문에서 그런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다고 한다. 성차별이 제도화된 사회, 그것이 종교의 이름으로 강화되는 사회가 배경이니 너무 당연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소설이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한쪽 성에 대한 차별이라기보다 인간 모두가 겪을 수 있는 비극이었다고 생각했다.
잉태를 위한 사령관과의 성관계는 시험관 아기를 만들기 위해 정자를 뽑아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인은 마치 자신이 성관계를 하는 것처럼 시녀의 머리맡에 앉아 시녀의 양팔을 잡고 있어야 한다. 하녀는 사령관의 정자가 자신의 몸으로 들어갈 때까지 기다린다. 오프레드는 생각한다. 부인과 자신 중에 누가 더 끔찍한지를.
어느 날 사령관 자신의 방으로 오프레드를 은밀하게 부른다. 아무 설명도 없다. 방에 들어가자 의자를 내주며 앉으라고 한다. 의식을 통해서만 만났으나 이번 만남은 사령관이 부인 몰래 따로 마련한 것이다.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 모른채 오프레드는 사령관의 아주 작은 몸짓, 언행 하나하나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온몸의 감각이 일제히 솟아올라 주체할 수 없는 기분이었지만 극도로 자제한다.
이제까지 오프레드의 감각이 이토록 드러난 적이 없었다. 사령관이 원했던 것은 고작 스크래블 낱말게임을 같이 하고 싶다는 것이었지만 사령관의 방을 나서기 전 오프레드에게 진짜 키스를 원하는 장면은 어떤 성적 묘사보다 짜릿하게 읽혀졌다. 오프레드는 아마도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살아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자기 방으로 돌아온 오프레드는 방금 느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어쩔 줄을 모른다.
I cram both hands over my mouth as if I’m about to be sick, drop to my knees, the laughter boiling like lava in my throat. I crawl into the cupboard, draw up my knees, I’ll choke on it. My ribs hurt with holding bac, I shake.
사령관은 길리어드가 체제 전복 이전의 사회가 가졌던 병폐를 해결했다고 믿는다. ‘여자들은 잘 보호받고 있고 평화롭게 생물학적 운명을 수행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사회가 간과한 것이 있냐고 묻는 사령관에게 오프레드는 답한다.
Love, I said.
Love? said the Commanders. what kind of love?
Falling in love, I said.
길리어드 사회의 치명적인 약점이란 결국 사랑의 부재라고 오프레드는 말한다. 사랑이란 다시 말하면 ‘사랑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하는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이 단순히 아이를 낳는 기능뿐이라면 인간으로 존재해야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인간다움이란 기능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무엇이지 안을까.
감각할 수 없는 사회란 얼마나 끔찍한가.
모든 것을 통제하여 효율성을 높이고 쓸모로 가치를 판단하는 사회.
그곳에서 간과한 것은
아주 사소한 감각들, 일상적인 기분들,
그것들이 중쳡되면서 ‘빠져들 수 있는 사랑’이라고 오프레드는 말하고 있다.
결국 성차별과 권력관계에 희생되는 여성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런 사회에 사는 모든 인간들은 다 희생을 감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에게 끔찍하게 굴면서도 그런 줄도 모르고 사는 사회.
나는 그런 사회에서 살고 싶지 않다.
결국 작가는 여성을 하나의 도구로 전락시키므로서
인간성 전체를 위협하는 사회가 될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싶었던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