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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은 Sep 27. 2019

교육받는 다는 것

Educated  by Tara Westover


 타라 웨스토버 Tara Westover는 1986년 아이다호주 몰몬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학교교육을 받지 않았다. 17세에 독학으로 대학입학 자격시험에 통과하여 브리햄 영 대학교에 입학했고 2008년 학사학위를 취득한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2014년에는 같은 대학교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2010년에는 방문연구원으로 하버드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인가 고민해보았다. 특히나 교육열 높은 우리나라의 실정을 생각했다. 학교교육만으로는 부족하여 선행학습을 하거나 반복, 강화하는 시간을 또 가져야 하는 우리 아이들. 지나치다고 할 만큼 과도한 교육 환경에 둘러싸인 우리들에게 교육이란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에게 교육은 갈망하고 쟁취해야할 무엇이었다.


작가의 아버지는 몰몬교도 중에서도 광신도에 가까웠다. 교회 밖의 모든 사회조직은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의 집단으로 기피해야할 대상이었다. 병원을 가지 않았고 제약회사의 약은 먹지 않았다. 어머니는 산파였다. 또한 약초로 천연약을 만드는 능력과 사업가적 수완도 있었지만  아버지의 뜻을 충실히 따르는 순종적인 아내였다. 부모의 신앙심은 깊었고 종교적 세계관 안에서 자식들지을 키우고자 했다. 타라는 그런 집안의 7형제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타라 웨스토버는 이 작은 세계를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앞서간 형제들의 삶을 보면서 느꼈다. 자신이 갈망하는 자유를 얻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 아니 유일한 방법은 ‘교육’밖에 없다는 것을. 


몰몬교도로서 내면화된 강력한 도덕관념이나 가치가 대학교에 들어가 새로운 학문의 세계를 접하면서 깨지는 과정은 감동적이면서도 한편 가슴 아프기도 했다. 절대적 권위자인 아버지의 세계와 학교를 중심으로 한 지성의 세계 사이를 위태롭게 오갔다. 박사 학위 논문을 쓰는 동안 가족과의 갈등 때문에 작가는 글을 한자도 못 보며 괴로워했고 공황장애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타라를 더욱 괴롭힌 것은 그녀에게 명백한 진실이었던 오빠 숀의 폭력성을 부모는 전혀 믿으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오히려 숀을 두둔했다. 그녀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고 죄에 빠진 사탄처럼 취급했다. 


신성불가침의 영역 같았던 아버지 앞에서 당당히 서서 자신의 신념을 드러낸다는 것은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 일인가. 사탄에 마음이 빼앗겼기 때문에 회계하고 온순한 딸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아버지 앞에서 타라는 용기내서 말한다. 


‘사랑해요, 하지만 난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 아빠.’


결국 그녀는 부모와의 결별을 선택한다. 결별이 일시적일지 영원할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분명한 것은 결별 덕분에 자신에게 평화가 찾아왔다고 말했다. 


자신을 둘러싼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하기를 바랐을지 모르나 가족과의 결별은 어쩔 수 없는 결과처럼 보인다. 그녀가 역사서와 철학 서적을 보면서 학문을 탐구하면 할수록 자신이 속했던 세계는 스러져가는 쇠잔한 왕국에 불가할 테니 말이다. 


타라에게 교육은 어린 시절 자신이 속했던 작은 공동체를 벗어날 수 있도록 인도했다. 껍질을 벗고 우아한 날개 짓으로 하늘 높이 날아가는 나비가 되도록 도와주었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아이다호 산골의 막내딸이 아니었다. 배우겠다는 강렬한 욕구와 의지하 로 캠브리지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따낸 멋진 여성으로 거듭났다. 

You could call this selfhood many things.
Transformation, Metamorphosis, Falsity, Betrayal.

I call it an education.


(이런 자아를 여러 가지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변형,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고 부른다.)



작가가 교육을 통해서 내적 자유를 얻어가는 시간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상적인 교육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기 위한 수단이 되거나, 패배감을 무기삼아 폭력적 지식만을 쌓도록 강요하는 그런 교육이 아니라

 진정한 탐구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마땅히 교육이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앞에 적힌 문구들이다. 교육의 과정과 목표가 하나여야 한다는 존 듀이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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