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보내는 또 다른 방법
내일부터 긴 추석 연휴가 시작된다.
10월 3일 개천절까지, 아니 그다음 일요일까지 연달 아 5일 동안. 연초 설 연휴가 짧았기 때문에 이번 연휴는 직장인이라면 더욱 손꼽아 기다렸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언젠가부터 공휴일을 기다리던 설렘, 기대감이 예전만큼 크게 느끼지 못한다. 아마도 직장 생활을 할 때와 아닐 때라는 이유가 큰 것 같다. 월급을 받고 있었다면, 휴일이란 일을 안 해도 누군가 돈을 주기로 약속한 날이지 않나.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공부 안 하고 실컷 놀아도 된다고 허락받은 아이처럼 들뜨겠지. 그렇지만 나에게 연휴란 식당이 문을 닫고, 약국, 병원 가기 힘든 날이란 생각이 먼저 든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더욱 차분하고 고요한 연휴가 되겠지.
그래도 어쨌거나 휴일이니까. 평일과 다른 느낌적 느낌은 있다. 신선한 계획 하나 세워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서울 5성급 호텔에서 호캉스를 즐겨볼까, 인터넷 쇼핑만 했으니 백화점 쇼핑 나가볼까. 하지만 뭘 생각하던 이 시국에 이걸? 하면서 주저하게 되었다.
결국 최대한 안전하고, 거리두기가 가능한 옵션을 생각해 냈다. 이번 연휴 동안 나는 우리 집 책장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2년 전, 이삿짐을 열심히 포장하던 사장님의 말이 생각난다.
‘책이 너무 많아요. 좀 버리지 그랬어요.’
웃으면서 한 말이었지만 나는 일하는 분들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이사업체 기피대상 1호가 책 많은 집이라던가. 사실 이사 전에 많이 정리한 상태였다. 차마 그 말은 못 하고 괜히 미안한 마음에 수고비를 조금 더 챙겨드린 기억이 난다.
나는 책을 버리는 게 제일 힘들다. 진짜 정리해야지 맘을 먹었다가도 버리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내고 다시 책장을 꽂아두곤 했다. 안 입는 옷가지들은 과감하게 버리는데 책은 잘 안된다. 너무 재밌게 읽어서, 아직 다 못 읽어서, 절판될 것 같아서, 책 표지가 예쁘니까… 버리지 못하는 이유를 찾자면 끝도 없다. 그래서 내 책장은 항상 자리가 모자란다.
최근엔 리디북스 페이퍼나 아이패드에서도 책을 많이 읽는다. 요즘은 대부분 책들이 전자책을 같이 출간하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선택하면 된다. 그렇지만 종이책과 전자책 구매 비율을 생각해보면 종이책이 70%, 전자책이 30% 정도인 것 같다. 아직 전자책이 모든 종이도서를 대체하지 못할뿐더러, 겉표지 디자인이나 인쇄된 글자체가 주는 시각적 만족감은 월등히 종이책이 좋다. 손에서 느껴지는 종이 촉감도 대체 불가다. 어쩌면 전자책이 효율적인 측면에서 훌륭한 장점이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밑줄 긋고, 메모 쓰기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밑줄 그은 문장, 메모들을 한꺼번에 모아서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왠지 종이 위에 연필로 쓱쓱 뭔가 적을 때 기분이 더 좋다.
그러니 여전히 나는 다량의 종이책을 구매 중이고 그때마다 새 책들을 꽂을 자리를 찾아 헤매야 한다. 자리가 부족하다 보니 점점 마구잡이식으로 공간이 있는 곳에 욱여넣게 되었다. 겹겹이 쌓인 책들 때문에 뒤쪽으로 밀려난 책들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이제는 오래된 책들이 자리를 내줄 시간이 된 것 같다. 헤어지기 너무 아쉽지만 떠나보낼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니까.
정리의 순서를 생각해 보았다. 먼저 선물할만한 좋은 책부터 고를 것이다. 그다음, 알라딘 중고서점에 판매할 책을 선별해야지. 나머지들은 재활용 박스에 담아 버리면 된다. 책을 버린다고 말하면 마음이 아프다. 이렇게 헤어지기 싫기 때문에 오히려 전자책을 사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암튼 이렇게 마음먹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니 반드시 실천에 옮기려고 한다.
이번 추석은 집안에 머무르며 잡채와 전을 먹는 대신 먼지를 맞으며 책을 정리할 생각이다. 코로나 때문에 여행도 못 가고 친지 방문도 조심스러운 시기다. 책과 함께 조용한 연휴를 보내는 것도 꽤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