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
독창적이고 새로운 해석은 어떻게 가능한가. 진부하지 않은, 그렇지만 탄탄한 논리와 풍부한 사례로 설득당하고야 마는 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리베카 솔닛의 책을 읽어 보면 다른 사람들은 눈여겨보지 않는 사실들, 잊혀진 역사적 사건들, 그래서 글로 전달되지 못한 무수한 이야기에 솔닛은 더 집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폴레옹이 식량 저장법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면서 이후 전쟁의 양상을 바꿔버렸다는 그녀의 시선이 흥미로웠다. 솔닛은 박물관 유리관 안에 전시되어 있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자료들을 분석하여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낸다. 그녀의 책을 읽다 보면 사고의 틀을 깨고 정화된 눈을 얻는 기분이 든다. 솔닛의 책, ‘멀고도 가까운’에서 ‘프랑켄슈타인’에 관한 글을 읽었다. 그녀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말보다 괴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집중한다. 창조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괴물을 진짜 파괴자로 몰고 간다. 박사는 괴물에게 이름도 주지 않았고, 괴물의 존재를 부정했다. 솔닛은 박사를 바라보는 괴물의 심정을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의 마음에 비유했다. 괴물의 파괴적 행동의 뿌리에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냉정함, 사랑받지 못한 존재의 괴로움이 있었다. 솔닛 자신 또한 어머니와의 관계를 떠올렸을 거라 짐작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부당한 대우, 어머니의 불합리한 행동들이 떠올라 작가를 괴롭혔을 것 같았다. 솔닛은 어린 시절 자신의 금발을 질투했던 엄마, ‘아들은 곱셈, 딸은 나눗셈‘이라 믿었던 엄마에 대해서 썼다. 솔닛은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건조한 문체로 썼지만 그녀의 프랑켄슈타인에 관한 글 곳곳에서 상처 받은 아이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녀가 그리스 신화를 읽는 시각 또한 매력적이다. 솔닛에게 페르세포네는 하데스로부터 납치당한 후 데메테르와 생이별한 가련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엄마의 품을 벗어나 하데스와 곁에서 지하세계의 여왕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얻는다. 우리는 언제나 하데스의 폭력성, 데메테르의 모성애에 주목하지만, 솔닛은 페르세포네가 주체적 여성임을 떠올린다. 대지의 여신인 데메테르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벗어난 것이라 시각이 매우 신선했다. 데메테르와 하데스의 싸움은 무승부로 끝난다. 페르세포네는 어느 한쪽에만 속하지 않고 일 년의 반은 지상에서 데메테르와 보내고 나머지 반년은 하데스의 지하세계에 머문다. 우리는 언제나 페르세포네가 지상에서 봄과 여름을 보낼 때만 행복했을 거라고 상상하지만, 솔닛은 페르세포네에게 주어진 지하세계의 시간을 생각했다. 엄마와 딸 사이에 사랑과 지지, 포용과 관대함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페르세포네는 어디에서 더 행복했을까. 신화를 해석하거나 감춰진 역사적 사실들을 분석하여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었던 건 역시 그녀의 풍부한 독서와 철저한 자료조사 덕분일 것이다. 나 같은 평범한 독자나 아마추어 작가들이 그녀처럼 날카로운 시각을 갖출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솔닛처럼 읽기’에 도움이 되는, 당장 실천 가능한 방법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다시 읽기’다.
몇 번이고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다 보면 지나쳐버린 문장 속에서 보석 같은 생각들을 건져 올릴 수 있을지 모른다. 너무 잘 알고 있는 말이지만 새삼 다시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겨본다. 당장 '제인 에어' 읽기부터 실천에 옮겨야겠다. 강화길 작가가 추천해준 대로 제인의 어린 시절에 집중해서 읽어볼 참이다. (이미지출처:경향신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