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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jjung Nov 19. 2020

여행이란 그런 것

[사내북클럽] 여행의 이유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두 번째 사내 북클럽의 주제는 "여행"이었다. 코로나로 올해 많이들 계획한 여행들이 무산되고 우리의 일상과 여행의 모습이 달라진 요즘, 우리는 왜 여행을 가는 걸까에 대해 이 책을 통해 되돌아보고, 가볍게 여행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왜냐면 여행에 대해 말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언제나 설레니까.


시국이 시국인지라-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국내 여행으로 발길을 돌리고 그동안 몰랐던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구석구석을 여행한다. 여행 스타일도 많이 바뀌어서 한 달 살기, 스테이케이션 등 한 장소에서 오래 머무르며 낯선 동네에 천천히 스며들어보거나 캠핑을 다니며 자연과 함께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을 보낸다. 어떤 형태의 여행이던 우리는 왜 항상 떠나고 싶어 하는 걸까?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으로부터 달아나기]

보통은 안정적으로 살다가 새로운 자극을 주고 싶을 때 여행을 떠나는 데, 작가는 반대로 삶의 안정감을 낯선 곳에서 찾는다. 흔히들 말하는 역마살이 있는 걸까 싶기도 하지만 그가 낯선 곳에서 안정감을 찾는 이유를 보고 공감이 갔다.

오래 살아온 집에는 상처가 있다. 지워지지 않는 벽지의 얼룩처럼 온갖 기억들이 집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다... 그래서 가족 간의 뿌리 깊은 갈등을 다룬 소설들은 어김없이 그들이 오래 살아온 집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잠깐 머무는 호텔에서 우리는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다.


작가가 말한 '상처가 켜켜이 쌓인 오래 살아온 집'을 떠나 아무 흔적도 없는 낯선 공간으로의 입장은 언제나 설레고 기대되는 순간이다. 여러 번의 여행으로 깨달은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삶의 안정감을 낯선 곳에서 찾는 사람은 아니지만. 낯섦을 즐기지만 사실 나는 짐도 반쯤만 풀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둥둥 뜨여진 상태로 돌아다니다가 집에 와서야 비로소 다 내려놓고 펼쳐놓는 사람이다. 하지만 지나간 이의 흔적 없이 깔끔하게 정리된 호텔에서 느끼는 왠지 모를 안도감, 그리고 실컷 어질러놓고 떠날 수 있는 자유로움은 여행자들이 한 번쯤은 다들 느껴봤을 것이다. 내 기억에서 자유로운 새 물건, 벽지, 침대. 내 상처를 들추지 않는 공간에서 느끼는 아이러니한 편안함. 호텔이 주는 럭셔리함보다 사실은 이 것 때문에 호텔을 좋아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한번 높아진 눈은 낮추기 힘들다고 좋은 곳을 가보면 더 좋은 곳을 가보고 싶어 지지)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작가가 출연한 예능을 비행기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각 분야의 사람들이 한 공간을 각자 여행했다가 저녁에 다시 모여 술 한잔 하며 썰을 푸는 포맷이 꽤 재미있었는데, 음악가의 관점, 과학자의 관점, 소설가의 관점이 층층이 쌓여 여행이 재구성되는 느낌이었다. 사실 우리의 여행 경험도 그렇다. 일상으로 돌아온 후 여행의 기억이 점점 바래다가 우연히 TV에 나오는 여행지를 다시 보다가, 유튜브의 브이로그를 보면서 내 경험에 다른 이의 경험을 얹고 또 그 위에 다른 관점을 보태는 것이다.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모호한 감정이 소설 속 심리 묘사를 통해 명확해지듯,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 더 명료해진다... 내가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 아닌 이유다.



[노바디의 여행]

북클럽에서 나온 이야기 중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 부분이 있었는데, '노바디의 여행' 중 사람들은 어디로 여행하느냐에 따라 자신이 현지인처럼 그 도시에 동화될 것인지 혹은 한걸음 떨어져서 바라만 보는 입장을 취할 것인지를 정한다고 한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이러한 선택은 원주민의 힘과 위계에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것. 우리가 베네치아나 뉴욕, 바르셀로나 같은 곳을 가면 현지인들만 찾는 맛집, 로컬이 추천하는 장소 등 관광객들이 잘 가지 않는 곳을 찾아가 동화되려고 하고 그 나라의 언어를 배워서 쓰고자 노력한다(Nobody). 반면에 원주민의 위계가 우리보다 낮은 위치라고 인식되면 (현지인들이 지나치게 여행자에게 친절하고 잘해주고 우리가 떠나온 나라를 부러워한다면) 우리는 굳이 그들에게 동화되려고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Somebody)이다. 우리는 모두 이 부분에 깊게 공감하였고 약간의 반성.. 혹은 나는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되돌아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어떤 행동이 올바르고 그르다는 것은 아니지만 여행에서조차 우리는 위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여행으로 돌아가다]

이주와 여행을 둘 다 경험한 나는 이 챕터가 아주 와 닿았다. 이주자와 여행자가 보는 풍경은 명백히 다른 것, 이주자는 일상을 살아가는 반면 여행자는 정제된 환상을 경험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라고.

이주와 여행의 관계는 마치 현실과 소설의 관계와 같다. 현실은 어지럽고 복잡하고 무질서하다.


나도 그랬다. 여행자로 왔으면 그저 행복하기만 했을 것 같은데 막상 깊게 살아보니 구석구석 거리의 쓰레기들, 경제적인 부분, 나를 지키기 위한 각종 보험과 행정 문제, 그리고 어두운 길에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으며 다닐 수 없는 것 등 온갖 문제가 나를 둘러싸고 어지럽고 복잡하고 외국 땅에서의 환상을 즐길 시간을 주지 않았다.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닌 작은 소동들이지만 그 당시는 어찌나 혼자 힘들었는지-. 하지만 그 시간들이 지나면 그곳이 나의 일상이 되고 또 나는 그 일상에서 벗어나려 타지에서 또 다른 곳으로의 여행을 꿈꾼다.


행복한 여행을 길게 하다가도 어느 순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때가 있다. 너무 좋지만 이젠 집에서 쉬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늘 일상을 벗어나서 여행을 가고 싶어 하지만 언젠간 이 어지러운 일상으로 복귀하고 안도와 편안함을 느낀다. 다시 일상의 소중함을 기억하며, 또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으며.



여행을 훌쩍 떠나기 어려운 지금 우리는 왜 그토록 여행을 갈망하고 그다음 비행기표를 끊고 그 날만을 기다리며 사는지, 막상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가면 왜 그렇게 느끼는지를 작가가 짚어줌으로써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던 두 번째 북클럽 이야기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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