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의 미디어 9 > 북저널리즘
조선 비즈에서 텍스트 기반 미디어 아홉 곳을 취재했고, 북저널리즘이 이를 책으로 엮었다. 국내외 스타트업이 골고루 있다. 플랫폼 스타트업부터 종이잡지의 명문가까지, 폭넓다. '새로운 시도에 나선 이들의 문제의식과 해법'을 전한다는 책 뒷면의 소개말을 유념하며 읽었다.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미디어의 미디어 9를 관통하는 질문을 4가지로 정리해보았다.
스팀잇, 쿼츠, 퍼블리, 악시오스, 모노클, 북저널리즘, 업데이, GE리포트, 카카오 루빅스
x=열망, f(x)= 수익모델, y= 기업에겐 이익, 사용자에겐 사용자 가치
모노클은 종이 잡지를 판다. 모노클을 들고 카페에 앉아있는 것은 독자들에게 일종의 뱃지 같은 거다. 문화 집단으로서의 자부심. 모노클의 수익은 유료 잡지 판매, 세련된 기사의 네이티브 애드에서 나온다. '종이로 읽는 일'에서 돈을 얻기 때문에 '종이로 읽는 일=깊이 있는 아날로그 경험'을 고수하는 사람들을 향해 기업 전략이 세팅 되어 있다. 프린트 퍼스트 전략을 고수한다. SNS로 기사를 퍼뜨리는데 안달내지 않는다. 대신 오프라인 모임을 연간 60회 가량 열고 라디오,이메일을 활용한다.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고집스러운 문화 집단으로서의 멤버십.
미디어는 열망을 모은다. 사람들은 비슷한 열망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어 미디어를 찾는다. 어떤 집단의 대화에 끼어들것인가? 어떤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은가? 미디어 사업을 설계하는 사람은 커뮤니티를 먼저 설계해야 한다.
바이스는 자신들을 '힙스터의 왕국'이라고 스스로 칭했었다. MIC는 미국 엘리트 밀레니얼의 미디어. 미디어의 미디어9에 나온 텍스트 기반 뉴미디어들은 대부분 '지적인 커뮤니티'를 지향하는데 좀 더 좁히자면 '일 잘하고 싶은 집단의 열망'을 타겟팅하는 곳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퍼블리. 퍼블리는 단순히 출판 콘텐츠를 유료화하는 곳이 아니고, 일 잘하고 싶은 집단의 열망을 건드리는 곳이다. 직장 내에서 유능한 선배(롤모델)를 찾을 수 없는 사회초년생이 우여곡절 끝에 찾아내는 자습서이자 동문회. 이런 열망을 가진 이들이 기꺼이 자습서(디지털 콘텐츠_보고서와 유사한 느낌의)에 돈을 지불하고 기꺼이 동문회(저자-독자 커뮤니티, 오프라인 모임)에 회비를 낼 것을 간파한 것이다.
퍼블리, 악시오스, 쿼츠, 북저널리즘은 비슷한 범위의 독자를 타겟으로 하고 있으나 이기는 전략은 저마다 다르다.
미디어 = 사용성 + 디자인 + 기술 + 비즈니스
기성 미디어와 차별화된 카테고리를 갖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 어떻게 다른 콘텐츠를 설계해야 하는가? 사용자가 원하는 특성을 극대화한 상품 (=기사,콘텐츠)를 만들되, '기자 정신'으로 무장하지 말 것. 사용성, 디자인, 분량, 기술적 요소를 모두 고려한 '상품'으로 기획하기. 스타트업의 접근 방식은 그런 것이라고 느꼈다.
버즈피드는 페이스북이라는 사용 환경을 고려해 플랫폼에 맞춰 극단적으로 '버즈(buzz)'하는 콘텐츠에 대해 연구하고, 그에 따라 버즈피드 서브 채널, 버즈피드 에디터 채널을 디자인하고 '공유'시에 자주 나타나는 반응들 (omg,wtf...)등을 콘텐츠 갈래로 만들었다. 흥하는 콘텐츠 키워드를 분석하는 기술이 이를 뒷받침하고, 버즈피드에 내면 '흥한다'는 공식을 만들어 광고 비즈니스로 먹고 산다. 모든 것은 연결된다.
악시오스(Axios)는 폴리티코를 공동 창업했던 짐 반더하이가 창업한 미디어다. 똑똑함과 간결함을 무기로 내세우며 엘리트를 공략한다. 악시오스 콘텐츠는 아래와 같이 '특별하다'고 말한다.
악시오스가 내세우는 스마트함은 '최소의 분량과 최대의 정보'를 지향하는 데서 온다. 악시오스의 기사는 전형적인 스트레이트 기사와는 구성이 조금 다르다. 오히려 보고서에 가깝다. 리드의 요약에 이어 기사의 성격에 따라 상세내용 (The details), 배경 (Background), 행간 (between the lines), 전체 상황 (the big pictures), 수치 (by the numbers), 결론 (the bottom line)으로 시작하는 단락이 착착 전개된다.
- 미디어의 미디어 09, 악시오스, p75
특별한가? 특별하다.이 특별함은 어디서 오는가. 디지털 환경의 '사용성' 때문이다. 사용자 경험이 '똑똑함'인 것이지 만드는 사람이 유별나게 똑똑한 게 차별점이 아니다. 사용자 경험이 '간결함'인 것이지 글자 수가 적은 것이 본질이 아니다. (똑똑한 제작자 없이는 아무 것도 안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 우리가 보는 기사가 중언부언 복잡한 것은 원래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신문 편집으로 얹어놓았을 때 '똑똑하고 효과적'인 형태로 애초에 설계한 것이다. 역피라미드 구조의 기성 언론 기사도 '신문 편집'에는 원래 최적화된 구조인 것이다. 역피라미드 구조가 신문이란 플랫폼에 맞춘 콘텐츠의 혁신이었듯, 이메일과 엄지 스크롤에 맞춘 콘텐츠의 혁신을 고민해서 악시오스는 결과물을 내놓았다.
한편, 고민해보자면 제목 장사를 하는 쓰레기 언론 인사이트나 위키트리 또한 플랫폼에 맞춘 혁신을 잘 이뤄낸 사례이다. 버즈피드와 격이 초기에 확장한 전략 또한 비슷한데, 버즈피드의 리스티클, 격의 미스테리한 생활 정보와 현대전설 성격의 미담 같은 것은 공유에 최적화된 콘텐츠다. 세상을 이롭게 하진 않아도 페이스북은 이롭게 할 수 있는 언론들이 한동안 쑥쑥 컸다.
사용성을 고려한 콘텐츠 포맷 개발은 큰 경쟁력이 된다. 그렇지만 알맹이 없이는 디지털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몇 톤의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소유에서 구독으로, 온라인에서 오프라인 또는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로컬에서 글로벌로, 잡지에서 라디오로. 종횡으로 미디어는 확장을 꾀한다. 한 사람의 독자를 분석했을 때 유사하게 연결될 수 있는 사용자 경험을 파악하고, 확장한다. <콘텐츠의 미래>에선 '콘텐츠라는 제품의 경계를 좁은 범위로 설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긴 텍스트 콘텐츠를 즐기는 사람은 토론도 즐기고 싶어할 수 있다. 잡지를 들고 카페에 가는 사람은 차에서 라디오를 듣는 것도 좋아할 수 있다. 똑똑하고 간결한 기사를 찾는 사람은 큐레이션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모아보기를 즐겨할 것이다. 모노클은 라디오로, 퍼블리는 모임으로, 쿼츠는 뉴스픽스로 확장한다. 욕망의 갈래가 확장의 방향이 된다.
전문가의 기자화, 그리고 AI의 뉴스 편집
북저널리즘과 퍼블리는 기자 없이 에디터와 기획자만 있는 조직이다. 필자가 더 중심이 되고 에디터는 사용자 경험을 고려해 콘텐츠를 필자와 함께 설계하며 돕는다. 쿼츠 또한 '전문 영역'에서 충분히 뾰족한 커리어를 쌓은 사람을 기자로 만든다고 자랑한다. 기자 중심 조직이 가진 여러 폐해를 없앤다. 기자가 깊이 있는 의견을 낼 수 있고, 이런 전문가는 다른 사람이 다 쓸 수 있는 소모적인 기사를 쓰지 않으며, 독자와 '대화'할 수 있는 것을 경쟁력으로 한다. (** 에디터만 존재하는 조직일 때 에디터가 어떤 역량을 가져야 경쟁력이 생길까? 외부 필자에게 의존적인데 에디터가 별 경쟁력 없는 경우 한계가 있지 않나)
업데이와 카카오 루빅스의 사례는 완전히 다르다. 인공지능이 편집하는 미래? 직접 아무것도 만들지 않고도 마치 무언가 만들어낸 것과 같은 효과를 내고 돈을 번다. 네트워크 효과. 정말 '좋은' 큐레이션의 진정한 가치를 나는 아직 경험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스타트업 위클리 뉴스레터 정도?
딴 소리.
상상해보건대, 개인에 맞춘 알고리즘이 만들어낼 뉴스판에 인간이 만족할까? 어떨까나. 긍정적으로 보자면 가치 지향 커뮤니티를 만들기 쉬워지고, 필요한 정보를 더 효율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그런 거겠지만, 그런데 이거 일종의 착각이지 않은가 싶다. 유튜브가 만들어둔 세계를 보라.
인간은 자기가 '추구하는 것'만 보지 않는다. '유익한 것'만 골라 보지 않는다. 오히려 킬링타임이 본능에 가깝다. 80% 정도는 유익이나 내가 추구하는 가치랑은 거리가 먼 것들을 소비하고 그래놓고 나서 내가 소비한 20%를 두고서 '내가 이걸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사람의 습성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이런 인간의 이중성을 그대로 반영해야할지 보정해서 더 수준 '높아 보이는'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좋은 것일지 모르겠다.
+
work.qz.com. 퍼블리. 등등. 충분히 지불능력이 있는, 정제된 관점의 콘텐츠가 중요한 것을 알고, 돈을 낼 의사가 있는. 자신의 사회적 취향이 상향조정될 수 있는 커뮤니티에 속하고 싶어하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기획되는 미디어 서비스가 늘어나는 것,이 아쉽다. '복제되기 쉽고, 화제 되기 쉽고, 적당히 자극적인 이야기들로 알고리즘의 상위 순서를 차지할만한' 콘텐츠를 주로 소비하게 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서문에 있는 말이 좋았다.
미디어란 단순히 신문과 방송, 뉴미디어를 뜻하지 않는다. 공학과 예술, 비즈니스 분야의 총체로 여겨진다. P8 미디어의 미디어09
미디어는 재밌고 골치 아픈 비즈니스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모든 '실행하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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