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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Jan 09. 2023

사랑의 모양을 보여주세요

넷플릭스 시리즈 <러브 온 더 스펙트럼 : 미국> 

“I’m on spectrum”


데이트 중 여자가 자기 소개를 한다. 아임 온 스펙트럼. 낯선 표현이다. 아래에 ‘나는 자폐 장애가 있어요’라는 한국어 자막이 뜬다. 두 표현에서는 거리가 느껴진다. 그 거리감을 나는 잠깐 곱씹는다. 


‘눈과 눈의 시선, 표정, 몸짓 등의 비언어적 행동의 사용’에 어려움을 겪음. 

다른 사람들과 즐거움, 관심사를 공유하려는 자발적 행위가 부족함. 

사회적 또는 감정적 공감의 부족.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 기준에 써있는 문장들 중 일부다. 


몸짓의 해석, 적절한 언어를 사용한 대화, 타인을 향한 깊은 관심과 공감. 


이런 것들은 사랑의 필수 조건처럼 보인다. 극적으로 말하면 사랑과 동의어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런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어떻게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그 사랑의 모양은 무엇일까? 



넷플릭스 시리즈 ‘러브 온 더 스펙트럼’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이들이 사랑을 찾는 이야기다. 솔로지옥, 환승연애를 포함해 연애를 소재로 다양하게 변주되는 여느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이 많다. 연애라는 소재는 같지만 재미 포인트는 정반대 지점에 있다. 


비키니 데이트, 휘날리는 머릿결, 슬로우를 건 등장씬 같은 건 없다. 연애 시장의 상위 포식자들끼리의 싸움 구경 같은 건 더더욱 아니고. 패널들이 같이 해석을 더하며 눈짓, 몸짓 하나마다 연애의 ‘시그널’을 맞추는 재미도 아니다. ‘내 연애’와 대비하며 과몰입하는 재미도 없다. 다 뒤집어라. 그러면 그게 ‘러브 온 더 스펙트럼’이다. 


과몰입은 절대 불가. 내 예측은 계속 빗나간다. 첫번째 데이트가 끝날 때까지 서로 눈을 한 번도 맞추지 않은 커플. 나는 생각한다. 이게 끝이겠네. 이윽고 둘은 두번째 데이트를 기쁘게 약속한다. 아니, 대체 왜? 상대 남자가 ‘소개팅에서 해야 할 52가지 질문’ 책을 읊듯 질문을 던진다. 여자도 질세라 보이지 않는 탁구공을 받아내듯 남자의 관심사를 묻는다. 나는 생각한다. 대화가 안 통하네. 둘은 대화 중에 허니문 여행을 언급한다. 아니, 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의아함은 계속 된다. 첫 번째 만남에서부터 열렬히 사랑을 표현하며 키스를 한 커플이 있었다. 둘은 예술에 대한 열정을 공유한다.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여자와 예술을 사랑하는 남자. 둘은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어린 아이처럼 사랑을 고백한다. 아, 저런 불꽃 튀는 감정이 사랑이지,라고 내가 섣부른 결론을 내리려는 순간, 여자는 핸드폰을 든다. ‘당신은 좀 더 자기 앞날을 설계하는 데 집중해야 할 것 같아요.’ 여자는 두번의 만남과 두번의 키스를 뒤로 직업적 비전이 기대에 못 미치는 남자를 찬다. ‘마음이 아프지만, 나아가야죠.’라고 말하는 그녀. 대체 사랑은 무엇인가. 



수많은 연애 프로그램에서 포착하는 연애는 독해의 난이도가 훨씬 낮다. 연애의 뉘앙스를 보여주는 사회적 ‘시그널’에 이제는 거의 분명한 공식이 있는 듯 싶다. 숨긴 듯 하지만 들키기를 이미 의도한 몸짓과 손짓. 카메라는 줌을 당겨 슬로우를 걸어 그 장면을 반복해 보여준다. 연애 프로그램에 나오는 그 어느 출연자도 직접적으로 ‘나는 삼십년 동안 연애를 못 했어요. 나에겐 사랑이 정말 필요해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사랑 없이도 난 괜찮지만 난 사랑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 그런 메시지로 치장하고 사랑을 원하지 않는 척 사랑을 원한다. 


‘러브 온 스펙트럼’엔 ‘난 정말로 사랑을 원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서로를 해석하는 일에 자주 실패하면서도 서로의 곁에 가기 위해 노력한다. 거의 어긋 나고 가끔 만나는 그 순간들이 아름답다. 사랑을 정의하는 스펙트럼이 넓어진다. 어긋남과 만남 사이 그 모든 노력의 파형. 그러니 이것도, 이것도. 사랑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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