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MMER Jan 09. 2023

생각이 많아 괴로운 사람에게

책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감상 

어떤 능력은 이미 자신에게 그 힘이 있다는 걸 자각해야만 쓸 수 있다. 얻어 내기 위해 애써 노력할 게 아니다. 능력을 자각하고, 씀으로써 능력이 주어진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의 저자 나티코는 우리가 이미 가진 몇 가지의 능력을 일깨운다. 생각을 바라볼 힘. 생각을 내려 놓을 힘. 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지 않을 힘. 이것들은 우리가 자유에 가까워질 수 있는 도구다. 고통에서 벗어날 길이다. 


“우리는 누구나 생각을 내려놓을 능력이 있습니다. 관심을 어디로 돌릴지 또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일엔 얼마 동안 관심을 기울이지 선택할 능력도 있지요. 여러분에게도 당연히 그런 능력이 있습니다. 다만 약간의 연습이 필요할 뿐입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죽음을 맞이하는 그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글을 통해 만난 그는 편안함에 다다른 듯 하다. 그는 한 번의 인생에 세 사람의 생애를 살았던 것 같다고 회고한다. 그중 첫째론 괴롭고 번뇌했던 젊은 그가 있다. 스웨덴에서 태어나 다국적 기업의 최연소 임원이 되기 직전이었던 이십대 중반. 분주히 성공에 가까워보이는 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 그는 모든 것을 멈춘다. ‘가만히 있어도 불편한 삶’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그는 첫번째 삶을 떠난다. 


나티코란 법명의 뜻은 ‘지혜가 자라는 자’이다. 그는 머리를 깎고 태국 밀림의 사원으로 들어간다. ‘나티코로서의 삶’을, 수련을 시작한다. 이후 17년 간 승려로 살다 마흔 여섯에 사원을 떠난다. 다시 속세로 돌아온 그는 우울과 방황의 시간을 보내다 다시 삶의 자리를 찾는다. 명상 수련을 설파하며 아내와 가족과 중년의 시간을 보낸다. 그는 이 책을 쓸 무렵 그는 근육의 힘을 잃어가는 루게릭병에 걸려 있었다. 책의 마지막 장은 죽음을 맞이하는 그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글을 통해 만난 그는 편안함에 다다른 듯 하다. 


나티코는 말 거는 저자다. 번뇌하고 어설펐던 스스로를 그대로 드러내며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명상 수련을 할 때 얼마나 잡생각이 들었는지, 새벽 수련을 할 때 졸다가 몇 번이나 머리를 박았는지, 하루 한 끼만 먹으라는 규율에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이야기한다. 자신을 죽어라 미워하던 다른 수도승과 그에게서 배운 것에 대한 이야기도 재밌다. 승려로서의 삶을 끝내고 속세에 나왔을 때, 그가 얼마나 스스로를 ‘뒤쳐지고 쓸모 없다’고 느꼈는지 말할 때는 그 고통과 불안에 공감이 간다. 그리고 그 시간들 안에서 자란 나티코의 지혜를 책을 읽으며 우리는 함께 구하게 된다. 


이 책은 끊임 없는 생각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스스로에게 어떤 ‘기분’을 강요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유용할 수 있다. 나의 마음을 가장 쓸어주었던 건 ‘우리는 생각을 선택할 수 없다’는 저자의 말이다. 생각은 통제할 수 없다. 다만 그 생각을 믿을 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우리는 생각을 바라볼 수 있다. 거리 두어 바라보면 안개 같던 생각이 물화 되어 그 자리에 남는다. 정확히 남겨두고 떠나보내면 자유로워진다. 그러면 그 자리에 우리의 진심이 운신할 공간이 생긴다. 


나는 나티코가 쓴 문장을 여러번 곱씹는다. ‘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을 필요가 없다. 나는 틀릴 수 있다. 나는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다.’ 나는 과거에 대한 회한, 죄책감을 내려놓고, 미래에 대한 예측과 불안을 내려놓고 지금 현재 내가 있는 곳에서 더 존재하기를 택할 수 있다. 충분히 더 존재하기. 그것으로 충분하다. 



+ 책 리뷰를 쓰려고 시작했는데, 마음 공부에 대한 글들을 좀 더 쪼개서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밑줄 


우리는 생각을 선택하지 못한다.

“ 우리는 생각을 선택하지 못합니다. 그 생각이 어떤 양상을 취할지도 통제하지 못하지요. 다만 어떤 생각은 더 오래 품으며 고취할 수 있고, 어떤 생각에는 최대한 작은 공간만을 내줄 수도 있습니다. 마음 속에 불쑥 떠오르는 생각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믿을지 말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미 벌어진 일을 수용한다.

이미 벌어진 일을 수용해야 하는 것은 단지 더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수용의 태도가 우리의 마음에 어떤 감정이 머물게 할 것인지, 그리하여 우리의 정신을 어떻게 건강하고 온전하게 지킬 것인지 결정합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알 수 없다.

우리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직감을 현실이라고 믿습니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다고, 다 간파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상황이 옳고 그른지,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다고 믿지요. 

 우리는 걸핏하면 삶이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우리가 계획한 방식대로 마땅히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좀처럼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막연한 관념과 의지대로 삶이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극히 무지하다는 것을 이해할 때, 지혜가 싹틉니다. -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의 모습으로서 존재한다.

이 우주는 마구잡이로 흘러가는 무심한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존재는 공명합니다. 우주는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 이면에 있는 의도에 반응합니다. 우리가 내보낸 것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세상은 세상 그 자체의 모습으로서 존재하지 않지요. 세상은 우리의 모습으로서 존재합니다. 그러니 그 안에서 보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우리가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의 모양을 보여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